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끝낸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끝낸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고우현기자] '사법 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헌정 사상, 사법부 71년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사법부 수장이었던 그는 친청과 같은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구치소에 그대로 갇히는 운명을 맞았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배경을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혐의의 핵심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개입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헌법재판소 비밀 수집 및 누설 ▲옛 통합진보당 소송 등 헌재 견제 목적의 재판 개입 등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은 것을 넘어 직접 주도·행동했다고 봤다. 이에 검찰은 작년 6월 수사에 착수한 지 7개월여만인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첫 공개 소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첫 공개 소환을 포함해 14일과 15일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고, 2회 분량으로 피의자신문 조서가 작성됐다. 아울러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12일과 15일에 조서를 열람했고, 17일에도 출석해 나머지 열람을 끝냈다.

이후 검찰은 그동안 수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중대한 반 헌법적 범행의 최고 책임자라 판단했고, 지난 18일 260여쪽 분량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대표적인 혐의만 해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등이다.

검찰이 구속 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최고 결정권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달리,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편 사법 농단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62·12기) 전 대법관은 두 번째 구속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기각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차례 구속 위기에 놓였다가 법원의 기각 결정을 받은 바 있다.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심사를 맡은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종전의 영장 청구 기각 후 수사 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고, 현재까지의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에 앞서 검찰은 작년 12월 박 전 대법관을 상대로 첫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 결정을 받았다. '공모 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게 주요 기각 사유였다. 

이후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 소송 관련 재판 개입 등 새로운 범죄혐의를 확인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이번에도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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