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체류자에게 실제로 인도적 체류할 조건을 만들어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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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내전으로 목숨을 잃는다. 얼마 전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세살배기 어린이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지구촌이 슬픔을 함께했다. 그럼 과연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실제로 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을까.

시리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소수종파인 알라위파 가문 출신의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인 바샤르 알아사드 현 대통령이 40년 넘게 철권통치를 휘둘러 왔다. 2011년 중동에는 튀니지의 재스민혁명, 이집트의 코사리혁명 등을 만들어낸 민주화 물결 ‘아랍의 봄’이 일어났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시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해 3월에 정부에 비판적인 낙서를 한 아이들을 정부가 체포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정부군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정부와 민간인들 사이의 대립이 시작된다. 처음 시작은 시리아의 민주주의와 독재의 투쟁이었지만 민간인들도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하여 반군을 형성하게 되고 이 반군을 미국과 유럽, 친미 아랍국가들이 지원하면서 시리아 정부군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내전'의 양상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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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는 이라크와 반미 국가의 핵심인 이란, 미국의 위성국가라 불리는 이스라엘, 다시 중동의 강자로 떠오르는 터키와 인접해 있는 중동 패권전쟁의 중심지다.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시리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는 중동과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을 포함한 친서방 아랍국가(수니파)들은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속내는 인접국가이며 강력한 저항국가인 이란을 견제하고 안전한 석유 수송로를 확보하는 등 다양한 이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정부군과 레바논의 강력한 반미 저항정치세력 헤즈볼라(시아파)는 이스라엘의 핵개발 의혹 등 여러 이유로 정권을 옹호하고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뺏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도 무기를 파는 등 여러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이렇게 시리아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들이 대립하고 있는 동안 시리아에서는 계속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난민이 되고, 수많은 생명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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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시리아인은 1994년 이후로 모두 713명(5월 말 기준)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터지며 급증했다. 2012년 146명, 2013년 295명, 지난해 204명이 난민신청을 했지만, 이 가운데 3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그 외에는 난민에 견줘 보호와 권리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는다. 지난 7월까지 누적된 국내 인도적 체류자는 876명이다. 이 중 621명이 시리아인이다. 지난 한 해에만 539명이 인도적 체류 자격을 받았고 502명이 시리아인이었다.

한국과 시리아 사이엔 수교 관계가 없지만 북한과 시리아는 1966년 수교했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리아 난민 신청자들을 전쟁유민으로 간주하여 그들에게 인도적 체류를 시혜적으로 허가해주면 된다는 내부 지침에 따라 인도적 체류 지위만 부여된다. 정부가 시리아인이란 이유로 엄밀한 난민심사 없이 무조건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해 난민 인정의 부담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인도적 체류자들의 삶은 인도적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비참하고 반인도적 삶인 것이 현실이다.

인도적 체류자는 1년마다 체류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난민 자격증’을 얻지 못한 그들에겐 G-1 비자가 주어진다. G-1 비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이 금지돼 있다. ‘포괄적 체류자격 활동허가’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으며, 사전 허가를 받은 사업장에만 취업할 수 있다. 허가받고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제한적이다. 체류 자격이 불안정한 사람을 쓰려는 고용주도 많지 않았다. 인도적 체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노동뿐이다. 해서 인도적 체류가 허가 없이 일하는 불법 난민 체류자가 양산되고 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7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난민법’이 시행됐지만, 정작 난민신청자를 대하는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8~2010년 300~400여명 수준이던 국내 난민신청자는 2011년 1011명으로 껑충 뛰더니 2013년에는 1574명, 지난해에는 2896명으로 폭증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자료를 보면, 올해는 7월까지 국내에 난민신청을 한 이들은 벌써 2669명이다. 법무부는 관행적으로 난민법 제정 이전의 지나치게 엄격한 난민 인정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본국의 ‘정치적 박해’가 아닌 ‘취업 목적’ 등에 심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전체 난민신청자 2896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이들은 3.24%인 94명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제69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시리아 참상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언급했다. 대통령 연설 전후로 정부는 시리아 출신 인도적 체류자의 급증 사실을 홍보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국제사회에 내보이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난민에 대한 또하나의 걸림돌은 우리 국민의 의식이다. 오랫동안 서방세계에 친숙한 국민들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 중동 사람들은 테러 집단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해 왜 우리 세금으로 그들을 도와주느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인권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려면 난민 인정은 마땅히 앞서서 해야 할 일이다.

난민들도 한국에 머물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사람들이다. 물질적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안전한 생활을 원할 뿐이다.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면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고, 가족을 데려와 같이 살 수도 없다.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병을 키우고, 자녀들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인도적 체류자들은 결국 한국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비인도적인 인도적 체류 과정에서 국내 난민은 빈민이 되고 있다.

일제치하에서선 우리민족도 난민이었다. 상해임시정부도 난민정부였다. 6.25전쟁 때 발생한 실향민도 사실상 난민이었다. 시리아는 아주 먼 나라처럼 보이지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자료를 보면, 한국전쟁 당시 ‘한국인 난민’들에게 물자를 지원한 40개 나라 중 하나다. 우리도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 시리아 인구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됐다. 시리아엔 미래가 없다. 그들이 다 죽으면 난민으로 인정할 것인가. 정부는 이제라도 인도적 체류자에게 실제로 인도적 체류할 조건을 만들어 줘야한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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