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1970~80년대 호남은 민주화운동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다. 유신쿠데타와 신군부의 군사반란 이후 영남은 YS, 호남은 DJ가 선두에 섰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YS가 보수정당에 투항하면서 DJ와 호남만이 ‘민주화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호남이 중심이 되어 정권교체의 책무를 떠안았고 마침내 1997년 DJP연대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5년 뒤에도 호남인은 93.2%의 몰표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정부 10년을 이어갔다.

따라서 이제 호남도 더 이상 민주화의 성지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십년 민주화투쟁 과정과 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부터 받은 갖은 고통을 보상받아야 했다. 그것은 지역발전을 통한 경제적 보상과 공평한 인사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DJP연대를 통해 집권했기 때문에 인사에서 처음부터 호남 우대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진행돼온 호남홀대를 바로잡아야 했지만 단기간에 푸는 것은 욕심이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 기간 동안 임명된 국무위원 90명의 출신지 현황을 살펴보면, 영남 25명(27.8%), 호남 21명(23.3%), 충청 18명(20%), 서울경기 17명(18.9%), 강원 4명(4.4%), 이북기타 5명(5.6%) 등으로 영남이 가장 많았고 충청권도 적지 않았다. 흔히 국무위원 출신지 분포의 균형을 말할 때, 그 기준은 당시 국무위원들이 출생한 연령대의 지역별 인구분포를 고려한다. 그런데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실시된 최초의 인구센서스에서는 영남 31.4%, 호남 25.2%, 충청 15.7%, 서울경기 20.7%, 강원 5.6% 등 순의 인구 비중이었다. 따라서 국민의정부에서 영남 비율이 약간 줄긴 했지만 오랫동안 영남정권 아래에서 누려온 혜택을 감안하면 오히려 의외의 탕평이었다. 동진정책을 통해 영남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고자 하는 DJ의 뜻이 반영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4대 권력기관장(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은 호남 7명, 영남 4명, 충청 3명, 기타 2명으로 호남이 가장 많았지만(43.7%) 과반수는 넘지 않았다. 힘 있는 자리로 여겨지는 청와대 비서실장·수석 직위에도 호남 16명(42.1%), 영남 8명(21%), 서울경기 5명(13.1%), 충청 3명(7.9%), 강원기타 5명(13.1%) 등으로 4대 권력기관장과 비슷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예산배분도 총액 6800억원이 투입된 밀라노프로젝트를 비롯하여 동남특위를 설치하고 영남지역 현안들을 적극 챙기도록 독려했다.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김정길 행정자치부 장관 등 정부와 공기업 등 요직에서 일한 여권 인사 7명이 16대 총선이 나섰으나 경북 봉화울진에서 19표 차이로 석패한 김중권 후보가 최고의 성적표이다. 이에 반해 호남인들은 50년 만에 배출한 호남 대통령이었지만 ‘고향 출신’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으로 만족해야 했고 지역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2013년 말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광주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시도 단위별 생산액·물가 등 기초통계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의 총생산액을 추계하는 종합경제지표)은 1953만원으로 16개 시·도 중 15등이다. 이 순위는 통계청이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후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전국 평균(2842만원)의 68.7%에 불과하고, 1등 도시 울산(6042만원)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원, 제주 등과 함께 도 단위에서 꼴찌 다툼을 벌이는 전북 역시 2343만원으로 전국 평균 이하이다. 광양공단 등 공장이 조금 들어서 있는 전남이 그나마 3467만원이다. 우연하게도 광주와 전북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게 전승을 안겨준 지역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영남 공략을 위한 동진정책 때문에 고향인 호남 지역발전을 외면했다. 호남 몰표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또한 열린우리당의 과반수를 안겨준 큰 힘이 된 광주와 전북발전을 역시 눈 감아버렸다. 그 결과가 이와 같은 참혹한 호남의 경제 성적표이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포괄하고 있는 충남은 9개도 가운데 1등, 전국 2등인 3435만원이다. 권역을 기준으로 하면 충청권역의 1인당 GRDP는 1등이다. 새정치연합은 야당이 된 이후에도 여당 시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인사에 있어서도 호남을 홀대했다. 참여정부의 인사 4원칙은 적소적재, 공정투명, 자율투명, 균형이었다. 균형인사 원칙은 지역·성별·전공 등의 균형을 고려한 인사를 말함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2003년 1월 27일 대구경북 상공인들과 면담에서 “비서실 인사나 인수위 인사를 하면 어느 동네 사람 몇 사람 하는 식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농림부에 가도, 해양수산부에 가도 인구비율대로 맞출 수는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인사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는 인사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국무위원, 4대 권력기관장, 청와대 정무직 인사의 출신지 분포를 살펴보자.

국무위원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지역균형을 맞추는 인사를 실시했다. 총 76명 중 영남 26명(34.2%), 호남 19명(25%), 서울경기 14명(18.4%), 충청 10명(13.1%), 기타 7명(9.2%) 등으로 일정한 지역안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4대 권력기관장과 청와대 정무직 인사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50년 만의 호남 권력인 국민의정부보다 더 심했다. 4대 권력기관장은 총 14명 중 영남 7명(50%), 호남 3명(21.4%), 강원 2명(14.3%), 서울 1명(7.1%), 충청 1명(7.1%) 등으로 영남에 치우쳤다. 영남비율은 국민의 정부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청와대 정무직의 경우에도 총 51명 중 영남 23명(45.1%), 호남 10명(19.6%), 수도권 10명(19.6%), 충청 6명(11.7%), 강원 2명(3.9%) 등으로 영남비율이 국민의 정부보다 더 높았다. 특히 4대 권력기관장과 청와대 정무직의 영남 집중은 대부분 임기 말에 나타난다. 유대의식이 강한 동향 인물들로부터 정권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식이 작용한 탓이었다.

그러나 정권 막판에 등용한 영남 출신 정무직들은 적지 않은 이들이 배신을 한다. 마지막 국정원장 김만복은 최초의 내부 출신 정보기관 수장이었다. 지난 8월 새누리당에 팩스입당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10·28 부산 재·보궐선거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를 지원한 사실이 알려져 여당으로부터 4개월 만에 제명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2013년 10월 경북 포항남·울릉 재선거에서 당선된 박명재 의원은 참여정부 마지막 행정자치부장관이었다. 2006년 4기 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경북지사 후보로 차출되어 참패한 직후 장관에 발탁됨으로써 야당이 보은 인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17대 대선 이후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무임소 국무위원으로서 이명박 정부에 적극 협력했다.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의 대외협력특보를 맡았고 2013년 재선거 공천과정에서는 NLL과 관련한 폭탄발언을 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기록물의 봉하마을 유출을 반대했지만, 당시 청와대측이 강행했다. 대통령기록물은 생산부서가 직접 국가기록원장에게 넘기도록 돼 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이걸 넘기지 않고 봉하마을에 갖고 갔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기 위한 황당한 주장이었다.

2006년 8월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김성호는 처음부터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지 앉았다. 그는 임명 직후부터 정부의 국정철학과는 다른 친기업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는 기업은 형사 처분을 면제해야 한다.”, “불법파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등의 언사로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 또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공직선거법의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 조항이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해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노무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대선 3개월을 앞두고 직을 물러난 그는 장관 경질에 앙심을 품기라도 하듯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초대 국정원장으로 임명이 된다. 2010년에는 한나라당 경남도지사 공천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했다.

한편,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은 영남에서 지역구 후보를 구하지 못해 68개 선거구 중 무려 46곳의 제1야당 투표용지가 공란으로 처리됐다. 위에서 언급된 국무위원, 4대 권력기관장, 청와대 참모 등 50여명의 정무직 장차관(급) 이상을 역임한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출마하지 않았다. 경력을 쌓게 해서 선출직에 도전시키도록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평소 지론과는 전혀 다른, 선거구도 불리에 따른 비겁한 ‘현실 도피’였다. 그나마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 전재수 前제2부속실장, 행정관 출신은 정영두·하귀남 등 3명이 출마했다. 16대 총선 당시와는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위의 데이터에서 보듯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초선 국회의원임에도 제1야당 대통령 후보에 오른 문재인 대표가 호남에서 끊임없이 ‘호남 홀대론’에 시달리는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최근 안철수 의원 탈당으로 호남 민심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 7·30 재보선 때는 광주전남에서 26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호남은 더 이상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며, 결코 민주화의 성지로만 남아서도 안 된다. 충청권처럼 투표한 만큼 떳떳하게 ‘내 몫’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정치는 지역의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로부터 출발한다. 지역이 더불어 잘 사는 것, 지역인재가 골고루 등용되는 것, 그것이 곧 지역 등권 정치이다. 내년 총선에는 호남인도 반드시 실리투표를 하자.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눈치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