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정의가 코로나19 극복과 포스트코로나 시대 준비다
탈세 온상 상품권 시장, 상품권법 부활하라

나라 곳간을 열라는 정치권과 곳간을 지키지 못할 때 더 큰 위험이 올 수 있다는 재정당국의 줄다리기가 4월 보궐선거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팽팽하다. 그 사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불황 경기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애타는 피눈물은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며 주렁주렁 차디찬 고드름이다. 민생을 살려야 나라가 있고, 곳간도 채울 수 있다. 지금은 꼭 써야 할 곳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동시에 혈세가 줄줄 새는 곳이 없는지, 빈 곳간을 채울 수 있는 묘책이 없는지도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라빚을 줄이는 혜지는 세금도둑을 잡아내고, 세금도둑의 편에 선 공범이 자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을 재정비, 조세정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로 모아져야 한다. <편집자 주>

<글 순서>

1. 사리사욕 채우는 의원 입법

2. 탈세 온상 상품권 

3. 원칙 어긴 재산소득 과세제도

4. 리베이트 천국 '세금도둑 마피아'

5. 기는 세무행정…나는 세금 도둑

6. 주택과세, 제대로 해라

[스트레이트뉴스] 올해 설연휴를 앞두고 시장을 보거나 선물 대용으로 상품권을 사용한 집과 기업이 하나 둘이 아니다. 상품권은 액면가격에 상당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는 증표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또는 구두회사 등이 발행한 상품권은 일종의 무기명 유가증권이다.

1999년 2월 5일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상품권법 폐지 이전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상품권 발행이 가능했었다.

상품권법이 폐지되었지만,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무기명 유가증권이 유통 중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15조 제1항에, ‘국가는 문화예술 창작 및 향유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도서(圖書)나 문화예술 재화ㆍ용역의 구입을 주된 사용 목적으로 하는 상품권을 인증(認證)하고, 그 사용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고, 동법 시행령을 통해 구체적인 인증기준이나 인증절차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또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26조의2 제1항,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시장등의 판매 촉진을 위하여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고, 동법 시행령과 ‘온누리상품권 사업 운영요령’을 통해 세부적인 사항을 관리하고 있다.

현행 인지세법 제3조에도 과세대상 상품권과 세액이 규정돼 있다.

강원도를 비롯한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상품권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상품권 탈세 원조 '바다이야기'

노무현 정부시절 바다이야기 등의 성인오락실에서의 상품권 환전을 통한 불법적 운용실태는 엄청났었다.

2006년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05년 8월부터 1년간 전국의 사행성 게임장에서 사용된 상품권의 규모가 최소 36조~63조원가량이었다’고 주장했다. 2006년 바다이야기를 포함한 전국 사행성 오락장 수가 1만5천개이었고, 이들의 1년 평균 매출액이 평균 2억~5억원 사이였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은 3조~7조원 정도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당시 상품권은 액면가액 1만원 이상이면 인지세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5천원권이 환전용 경품상품권으로 활용되었다. 오락실 상품권은 재화나 서비스로 교환되지 않고 10% 환전수수료를 부담하고 현금화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운용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인오락실은 천문학적 규모의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탈루했다.

당시 검찰은 2006년 8월부터 약 6개월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바다이야기 사건을 수사하고, 153명을 형사 처벌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당시 정권 실세개입설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채 의혹으로만 남아있다.

온누리상품권의 불법 거래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2009년 7월부터 전통시장을 살릴 목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2009년 온누리 상품권 발행액은 104억원에 불과했지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8월말까지 3조905억원의 온누리상품권이 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올해 온누리상품권을 2조5천억원어치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발행 규모가 두 배 수준인 5조원 규모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억800만원, 2017~2018년 2억1600만원 규모의 온누리상품권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도에는 폐기된 온누리상품권 114장이 다시 유통되는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부정 거래 적발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년 중 지난 8월까지 상인들에게 현금으로 돌아간 규모는 1조9375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체 발행액의 62.7%만 정상적으로 결제된 것이다. 발행후 미사용 상품권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부정사용 의혹이 크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온누리 상품권을 5~10% 할인 구매해 가맹점에서 현금화하는 수법이 대표적인 깡 수법이다. 상품권 구매자나 온누리 상품권 가맹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까닭에 처벌규정 강화만으로 은밀하게 거래되는 상품권 깡거래를 근절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대체로 상품권 깡에 개입하는 사업자들은 정육점이나 야채 가게 등의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이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들이 부가가치세의 신고 및 납부를 정상적으로 이행한다고 가정하면 불법적 깡 거래는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행 ‘과세자료제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선 세무관서의 장은 온누리 상품권 결제정보를 제공받아 부가가치세나 소득세의 탈루의혹을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일선 세무서장이 가맹점별 온누리상품권 결제정보라는 과세자료를 제출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누리상품권 발매와 가맹점 결제 등의 백오피스 업무는 금융결제원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이 의지만 있다면, 자료제출을 받아 상품권의 불법적 깡 거래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권 탈세 대표적 사례 '깡'

과거에는 법인카드로 상품권 무제한 매입이 가능했고, 상품권 구매 시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가 발행할 수 있는 ‘계산서’ 발급이 가능했다.

이런 세법의 허술한 구멍을 활용해 상당수의 사업자들은 탈세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 사채업자들은 대량의 상품권을 구매해 놓고, 고객들에게 법인카드 결제를 받고 상품권을 판매했다. 고객들은 ‘계산서’를 세무상 증빙으로 삼아 상품권 구입금액을 접대비로 회계처리했다. 구입한 상품권은 현장에서 깡 처리를 통해 현금화시키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들은 허위 손비처리를 통해 소득세나 법인세를 과소 납부하고, 비자금까지 조성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된 것이다.

상품권 시장은 무법천지다. 탈세는 물론 유통질서 교란 방지 및 불법적 비자금 조성 차단을 위해 당장이라도 상품권법 부활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상품권 시장은 무법천지다. 탈세는 물론 유통질서 교란 방지 및 불법적 비자금 조성 차단을 위해 당장이라도 상품권법 부활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당시 상품권 깡 거래를 하기 위한 고객들이 상품권 판매상 앞에 줄을 섰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어떤 상품권 사업자의 분기별 상품권 매출규모가 수 천 억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탈세 거래가 엄청났던 것이다.

물론 현재는 상품권 판매 시 ‘계산서’ 발급도 불가능하고, 법인카드 결제를 통한 상품권 구매 한도도 상당히 축소됐지만, 탈세경로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면세점 상품권 탈세

과거에는 항만 면세점에서 상품권으로 전자제품 등 구매가 가능했었다. 중국 교포 중 ‘따이공’들은 선박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양국을 왕래했다. 이들은 입국시 참깨나 고춧가루 등을 들여와 브로커에게 현금으로 팔고, 귀국 길에는 항만 앞 상품권 매장에서 상품권을 할인 구매해 면세점에서 화장품이나 전자제품을 구입해 본국으로 가져갔다.

중국산 농산물은 전통시장 등에서 무자료로 거래되면서, 원사지 표시 등의 정상적인 유통질서는 붕괴됐다. 상품권 사업자들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 한 푼의 소득세도 납부하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 19사태로 ‘따이공’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정상화에 대비해 국세청은 상품권을 활용한 탈세 구멍을 촘촘하게 틀어막아야 할 것이다.

유통대기업의 상품권 탈세

유통 대기업들은 대체로 상품권 발행 및 결제 업무를 가족이나 측근을 통해 은밀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 해외사용한도를 관리하고 있는 까닭에 중국인들은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보편적으로 현금 구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유통재벌 입장에서 상품권거래는 더없이 좋은 비자금 창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유통재벌 입장에서 상품권거래는 더없이 좋은 비자금 창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는 상품권 거래가 백화점 판매원들의 용돈 챙기기로 활용됐었다. 상품권을 할인 구매하고, 현금판매를 상품권 판매로 둔갑시키면서 차액을 챙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내부감시망이 엄격해지고, 전산시스템이 이런 거래를 방지할 수 있는 예방통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 이런 행위를 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판매시점(POS, Point Of Sales)정보는 실시간으로 매출 조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관리자들은 매장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매장 전체의 현금매출 규모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다. 매장 마감 시간 직전에 상품권 관리자가 윗선의 지시를 받아 현금 매출액을 상품권거래로 교체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 조성이 가능할 개연성이 크다.

만약 오너 일가가 개입돼 있다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서 매출관리 시스템을 회계시스템과의 자동회계처리 기능을 차단하고 배치 처리를 통해 비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해보니 상품권 할인 폭은 상품권별로 5~12%까지 다양하다. 상품권 마진폭만큼의 비자금 조성이 가능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 또한, 낙전수입도 오너일가의 비자금으로 조성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고, 상품권 거래 차액에 대한 소득세 탈루 가능성도 농후하다.

상품권법이 폐지된 이후, 정부에 대한 보고의무도 없으니 유통재벌 입장에서 상품권거래는 더없이 좋은 비자금 창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상품권법 부활해야

상품권법은 1961년 제정돼 38년 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DJ정부시절인 1999년 행정규제의 정비 및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도모와 관련해 규제완화 차원에서 상품권의 발행·유통과 관련된 상품권법은 폐지됐다. 업계의 규제완화 건의를 정부가 수용했다지만 엄청난 로비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 것이다.

경실련은 2018년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할 8대 분야 35개 개혁입법과제 중 ‘상품권법 제정’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그 해 발의했던 상품권법은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 처리됐다.

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연평균 약 8조원의 상품권이 발행되고 있고 규모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상품권은 무기명 유가증권으로 현금화할 경우 추적이 어려워 뇌물이나 불법 리베이트, 법인의 공금횡령, 비자금 조성 또는 상속세 포탈 등의 범죄에 악용되고 있고, 연평균 2,200여건의 상품권 관련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는 등의 소비자 피해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상품권 시장은 무법천지다. 탈세는 물론 유통질서 교란 방지 및 불법적 비자금 조성 차단을 위해 당장이라도 상품권법 부활시켜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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