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익주도에서 소득주도로 변화한 경제 패러다임
| 정부・여당의 엇박자 경제정책은 속도 탓
| 최저임금(8,350원) 못 따라잡는 보완정책 속도 높여야
| 관건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조세저항 회피


“최근 고용이 부진한 데는 최저임금의 영향이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고용 쇼크가 발생했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속도가 맞지 않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

정부・여당의 경제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불과 이틀 남겨놓은 지난 12일에는 경제현안간담회를 소집해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김 부총리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 순방에 동행한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속도가 맞지 않는다”며 중재에 나섰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문재인 정부의 1기 경제정책은 실패일까 성공일까?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은 무슨 관계가 있으며, 속도가 맞지 않다는 홍 장관의 발언은 또 무슨 뜻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의 결과와 향후 방향성을 추적했다.

변화하는 경제 패러다임

김 부총리와 홍 원내대표의 상반된 발언, 얼핏 보면 최저임금 하나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최저임금이 현안으로 부상한 탓에 그렇게 보일 뿐, 이 문제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에 관한 문제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토대는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와 수출을 늘리면서 성장하는 ‘이익주도성장’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전, 우리는 연평균 8%대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다. 이후 2007년까지는 5%대로 낮아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2%대로 더 낮아졌다. 그 과정에 ‘저성장 불평등’ 경제구조가 고착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혁신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의 핵심 축으로 선정했다. 경제 패러다임을 이익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바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임금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을 높이면 소비가 늘어나고 투자도 확대되어 경제성장의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성장이론이다. 핵심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책이 암초를 만났다.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면서 정책을 펼쳤지만, 소득 1분위(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줄어든 반면 상위 20% 가구의 소득은 높아지면서 소득분배가 더 악화되어서다.

신규 일자리는 전년 대비 1/3로 줄었고, 청년실업률도 10.5%에 달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참모 간에 갈등이 노출됐고,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은 혼선을 빚고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이 그치지 않았던 이유다.

혁신성장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11.28) ⓒ청와대
혁신성장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11.28) ⓒ청와대

결국 야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했는가?

소득주도성장은 이단(異端)의 경제학인가?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주간은 ’7월 4일자 시평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이단의 경제학이다. 시장을 불신하며 정부가 임금 등 시장 가격에 직접 손을 대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소득주도성장의 공식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소영 교수 역시 한 워크숍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수요 주도 이론이라서 장기 성장 이론에 적합하지 않고 단기적 수요 확대 효과도 없을 수 있다”며 최저임금보다는 근로장려세제(EITC) 등의 경제적 효과가 더 좋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야당과 보수언론의 입장을 대변한다. 사실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세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소득 불평등에 주목, 2010년경 ‘임금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 성장 담론이다. 특히 국제노동기구는 <임금주도성장 : 개념과 이론, 정책 보고서>(2012년)에서 “(기업의) 이익이 주도하는 성장 체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결과를 낳았다”며 임금주도성장을 신자유주의의 이익주도성장을 대체할 수 있는 성장이론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 확산의 전도사 격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도 거들고 나섰다.

IMF는 <재분배와 불평등, 성장 보고서>(2014.04)에서 “소득이 부유층에 집중되는 현상은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안정적 경제성장도 가로막는다”며 “재분배 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OECD 역시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이 미치는 영향 보고서>(2014.12)에서 “소득 불평등이 단일 변수로는 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소득 불평등 해소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했다.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이처럼 두 기구가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고 나선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반성하는 과정에 소득 분배의 중요성이 핵심 이슈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이 경제학 교과서에 없다는 측면에서는 이단 경제학으로 볼 수 있지만, 이익주도성장을 이끌어온 두 기구가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文정부의 소득주도성장 1년, 실패인가 성공인가?

OECD는 “재벌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은 한계에 달했다”며 우리 정부에 포용성장 정책을 권고했다. IMF 역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안전망 확충 등으로 내수를 강화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두 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1년 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정책 집행 결과는 성공과 거리가 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참모 간에 발생한 갈등을 들 수 있다. 경제 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의 방점은 ‘혁신성장’에 찍혀 있지만, 교수 출신인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의 방점은 ‘소득주도성장’에 찍혀 있어 조율이 쉽지 않았다.
 
지난 달 26일, 청와대는 결국 홍장표 경제수석을 관료 출신인 윤종원 주OECD 대사로 교체하면서 “윤 신임 수석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고용과 소득분배 지표가 악화된 데 따른 사실상의 경질이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준비가 미흡했다”며 아쉬워하면서도, 장하성 정책실장 유임으로 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가져가되, 김 부총리와 청와대 간에 원활한 손발 맞추기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혁신성장을 거론하기 전에 소득주도성장 정책만으로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들이 제기됐다.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나원준 교수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기본정책(노동정책, 임금정책), 보완정책(경제민주화정책, 복지정책, 일자리정책, 총수요정책), 공급정책(전통적인 성장정책)으로 나누고, 이 세 정책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배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는 기본정책 이후, 보완정책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만 증폭됐다.

연도별 최저임금/인상률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연도별 최저임금/인상률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최저임금을 인상해 호주머니만 채워주는 정책으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가계소득이 증가하려면 최저임금 외에 다양한 보완정책들이 한 꾸러미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일자리안정자금 3조 원 지원, 카드수수료 인하, 상가임대료 상승률 상한 조정(9%→5%), 실업급여 및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주거비를 비롯한 핵심 생계비 경감, 기초생활보장제 강화, 복지 확대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그런데 다른 보완정책들은 머뭇대고 있는데 최저임금만 치고 나갔고, 그래서 최저임금의 부작용이 지나치게 부각됐던 것이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의 “속도가 맞지 않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 됐다”는 발언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文정부 2기 경제기조가 1기 때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보완정책을 간과한 채 또 다시 최저임금에만 매달린다면,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상황에서 관건은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다양한 보완정책들이 최저임금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보다 못한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 결정을 이틀 남겨 둔 시점에 노동계가 강력 반발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용 부진의 원인으로 최저임금을 지목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홍영표 원내대표의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정확히는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 쇼크가 발생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낸 학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김 부총리와 홍 원내대표는 같은 내용을 다른 형식을 빌려 말했을 뿐이다. 김 부총리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에 대해서도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역시 다양한 보완정책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어서다.

다른 보완정책들이 최저임금을 따라잡게 하려면, 다시 말해서 최저임금과 보완정책들 간에 속도를 조절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돈’, 즉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꼽는다.

국가별 재정여력(2016년 기준)(자료:OECD)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국가별 재정여력(2016년 기준)(자료:OECD)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확장적 재정정책은 조세저항을 뚫어내야 한다. 재정건전성이라는 오래된 신화도 깨뜨려야 한다. 그러나 이익주도성장의 벽에 부딪친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득주도성장의 틀을 제대로 닦으려면 ‘최저임금인상’과 더불어 ‘확장적 재정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文정부의 1기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실패다. 정책의 방향은 옳았지만, 속도조절에서 쓴맛을 봤기에 그렇다. ‘공정경제’ 측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 김상조號의 성과가 크지 않다. 김상조 위원장의 말대로 “입이 바짝바짝 마를” 지경이다. ‘혁신성장’ 역시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는 등 지지부진하다.

文정부 2기 경제팀은 속도조절에 성공해 이익주도성장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병행해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을 ‘한때 우리도 해봤던 실험’으로 추락시켜 버릴까?

첫 시험대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인상폭이다. 14일 새벽 4시 36분, 최저임금위원회는 사용자위원 9명과 민주노총 추천 위원 4명이 불참한 채 진행된 투표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7,530원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확정했다. 두 자릿수 인상률로는 역대 세 번째이지만, 인상폭이 16.4%였던 지난해보다는 줄었다.

김 부총리의 답답함이 통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이제 남은 문제는 향후 1년 동안 보완정책들의 속도를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다. 내년 이맘때쯤 보완정책들의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심각한 사회적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시선은 벌써부터 ‘조세 저항’과 ‘내년도 예산안’에 가 있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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