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로 땅 짚고 헤엄치던 시절은 갔다”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지 고민하라”
글로벌 금융시장서 경쟁우위 시스템 탑재 절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코로나19가 공식화된 지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당초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언택트’ 환경은 자산가치의 변화, 비이자수익 중요성 부각, 플랫폼을 무기로 한 테크핀 기업들의 대두 등으로 금융업 지형도를 극적으로 바꾸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창간 9주년을 맞아 변화의 시기에 경쟁력 재정비에 나선 금융업계를 되돌아보고 향후 방향성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금융지주 20년, 타 업권 대비 성장 정체

2001년 우리금융지주를 시작으로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땅에 금융지주시스템이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2020년 기준 GDP 10위에 오르며 IT, 자동차, 화학 등 주요 산업부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동안 금융업은 상대적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으론 과거 관치금융을 통해 산업의 후방지원 역할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금융회사에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히 않다. 다만 어느 쪽이든 ‘금융기관’에서 ‘금융회사’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왔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저금리 고착화, 테크핀 등 안팎으로 도전 받는 금융지주

금융지주 위기의 원인은 핵심 자회사로 군림해온 은행업의 수익성 저하, 고착화된 저금리로 금융투자업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 증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보험업의 변화,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으로 대변되는 플랫폼 기반 테크핀(Technology+Finance)기업의 금융업 확대 등이 그 원인이다.

10일 금융업계와 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현재 5대 금융지주를 위시해 총 27개 금융회사들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이달 중 관련 자료 수집을 마치고 8월까지 테스트를 완료한다는 입장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유가, 환율, 금리 등 거시경제 지표의 변화에 따라 BIS, 대손충당금 등 각 금융회사가 유지해야 하는 각종 건전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로, 작년 테스트에서 신한금융 외의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테스트에 불합격해 감독 당국으로부터 배당성향 제한조치를 받는 단초가 됐다.

20%로 제한된 이 조치가 이달 말로 종료되면서 주요 금융지주는 유보해왔던 자금여력을 바탕으로 하반기 배당 확대에 나설 움직임이다. 정부의 눈치를 보며 20%선에 맞춰왔지만 주주에 대한 입장도 있는 만큼 연간 배당성향을 30%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중간배당 카드를 꺼내려는 것이다.

◆ 코로나19 반짝 실적 반등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예상 밖으로 금융지주들의 실적이 좋기 때문이다.

4대 금융지주 중 선두권인 KB금융과 신한금융은 2019년과 2020년 3조원 초중반의 순이익을 보였지만, 올 1분기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연간으로 3조 원 중후반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역시 2조 4~5천억원 수준이던 하나금융지주도 올해는 2조 6000억 원대를, 작년에 1조 6000억 원대에 머물렀던 우리금융지주는 1조 8000억 원대를 내다보는 수준이다.

이런 호조세는 핵심 자회사인 은행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 주식시장 호황 등에 힘입어 대출 규모가 늘어난 탓에 순이자마진(NIM)이 늘어난 것과 전년 넉넉하게 잡아 둔 대손충당금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경제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 둔 대손충당금은 올해 다시 환입이 될 여지도 있다. 여기에 주식시장 호황을 누리는 계열 증권사와 보복소비에 따른 카드사 선전, 수익이 개선중인 보험사들까지 가세해 2분기 실적도 ‘서프라이즈’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하나금융투자 최정욱 애널리스트는 1분기 실적 발표 후 “은행들의 연간 순이익 전망을 16.1조로 추정하며 올해 은행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년만에 상승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호황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시적 현상일 거라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1분기 증권자회사들의 실적이 급증한 탓에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정부의 대출 상환 연장 압박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고, 대면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들이 코로나19 장기화에 얼마나 버틸 지 알 수 없어 대출확대로 인한 NIM개선을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미 2분기 들어 주식시장의 거래대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이익을 지속 내줄지도 알 수 없고,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실업수당 지급액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안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은행 외 경쟁력은 아직…테크핀 공룡들의 습격

금융지주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 카카오라는 플랫폼 공룡들이 네이버파이낸셜과 직접 금융업진출을 통해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올 초 증권업을 시작한 토스도 9일 토스뱅크 인가를 공식화하고 오는 9월말께 영업을 시작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다가오는 대어 IPO 중에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도 있다.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 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은행이 주축이던 시절에 맹주를 자임하던 금융지주들에게 변화하는 환경은 도전 그 자체다.

은행업 이외의 영역에서 금융지주가 1위를 기록하는 업종은 많지 않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증권업의 경우 자기자본 기준 1~4위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이다. 지난 1분기 농협금융지주가 호실적을 기록한 원동력 중 하나는 NH투자증권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반면 증권사의 조력을 받지 못했던 우리금융지주는 증권사 M&A와 우리종금 활용 방안 등에 대해 보다 절실한 검토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빅4 금융지주 계열인 KB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는 각각 5~7위에 포진해 있고 이들보다상위사들은 각각 IB와 글로벌, WM 등의 영역에서 규모를 키우고 있다.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도 바짝 뒤를 쫓고 있어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다.

보험업계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생명보험사 순위에선 여전히 빅3가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이다. 여기에 변액보험의 강자 미래에셋생명 등도 경쟁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손해보험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부동의 1위 삼성화재를 비롯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등 경쟁은 치열하다. 그나마 은행업과 시너지가 강한 카드 부문에서 신한카드, KB국민카드, 하나카드, 우리카드 등이 선전하는 정도다.

◆ 적과의 동침 불사…M&A로 승부하라

연초 신년사에서 금융지주의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은 각사별 전략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우리은행으로, 네이버스토어 입점 상인들을 대상으로 전용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네이버와 손잡고 연세대에 모바일캠퍼스 구축을 진행 중이다. 미래 잠재고객을 확보하고, 주거래은행 관계인 학교들을 통해 디지털 시스템 네트워크를 넓혀간다는 복안이다.

하나은행은 게임회사 넷마블과 MOU를 맺고 금융콘텐츠 공동 개발 및 마케팅, 신성장 사업 공동발굴 등을 천명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자산관리 노하우를 많이 가진 하나은행이 게임머니, 아이템 등을 하나포인트 등과 연계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달 12일 네이버페이 내에 자사의 온라인 플랫폼 솔(SOL)의 전세대출 안내 배너를 심고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직접적인 제휴라기 보다는 플랫폼이 가진 집객 효과를 이용, 비대면 대출 상품의 고객 유인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자체 플랫폼화와 빅테크 연계 사이에 방향성을 두고 좀더 고심하는 모습이지만 업계에선 KB가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자체 인증 사업 등에서 강점을 보이는 만큼 제휴보다는 스스로 플랫폼으로 거듭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접목시키는 쪽으로 읽고 있다.

NH농협은행도 적극적인 빅테크 제휴 보다는 상대가 가진 장점을 활용하는 공동마케팅에 무게를 두며 시장 성황을 관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통신사 고객 데이터 활용을 위해SK주식회사와 제휴로 데이터에 근거한 대고객 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기반으로 테크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맞춤형 전문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갖춘 NH디지털R&D센터를 통해 여행적금 등 상품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각 사별 비이자수익 강화를 위한 재정비는 지속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지주는 오는 7월 1일 보험자회사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 법인 신한라이프 출범 작업에 여념이 없다. 양사가 강점이 있는 분야에서 부서장 등을 안분하는 등 화학적 결함에 잡음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모습이 관측된다.

합병이 완료되면 삼성, 한화, 교보에 이어 자산과 시장점유율이 생보업계 4위로 올라서게 돼 빅3와의 본격 경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KB금융그룹은 작년 4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를 누르고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성공했다. 2조3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지급여력비율(RBC)과 타고난 세일즈능력이 입증된 푸르덴셜생명을 손에 넣어 신한과 키높이를 맞췄다. 전년 중도 편입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557억원 순이익으로 인수는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금융그룹도 2020년 6월, 디지털기반 종합 손해보험사 하나손해보험을 공식 출범시켰다. 디지털 생태계와 더케이손해보험의 보험 노하우를 통한 시너지를 기대하며 유일하게 채우지 못했던 마지막 금융업 라인업을 완성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주 재출범 첫해인 2019년에 중국 안방보험그룹으로부터 동양자산운용과 ABL글로벌자산운용을 인수해 각각 우리자산운용과 우리글로벌자산운용으로 간판을 바꿨다. 또 국제자산신탁을 인수해 우리자산신탁으로 사명을 바꾸고 부동산 신탁업에도 뛰어들었다.

2020년 말에는 아주캐피탈 지분 74.04%를 인수해 우리금융캐피탈도 출범시켰다. PEF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펀드에 후순위로 출자해 우선매수권을 취득 후 이를 실행해 지분을 가져왔다. 이 인수를 통해 100% 자회사로 있던 아주금융저축은행(현, 우리금융저축은행)까지 덤으로 얻었다.

◆ 국내는 좁다….해외로 눈 돌리는 금융지주들

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도 지속되고 있다.

KB 윤종규 회장이 주도하는 글로벌화는 미국, 영국 등 선진 시장도 타겟으로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진출은 동남아 시장이다.

2020년 4월 캄보디아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 지분 70%를 7000억원에 인수 완료해 소액대출시장에 진출했다. 프라삭은 현지 3위권의 대출 금융기관이다. 아직은 소액대출 업무에 집중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상업은행(Commercial Bank)으로 전환, 동남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그에 앞선 2018년 7월에는 역시 인도네시아 소매금융 전문 부코핀은행 지분 22%를 취득해 2대주주에 오른 뒤 증자를 통해 총 67%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국내의 앞선 IT기술과 관리 역량을 이식해 세계 4위의 인구수를 가진 인도네시아 내 톱티어(Top-Tier)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이다.

그 밖에도 계열 증권사와 카드사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규모를 늘려 성장하는 시장의 IB와 결제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바탕에 앞선 한국의 IT역량이 필수다. 윤 회장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글로벌화에 가장 앞선 금융그룹 답게 아시아 핵심지역에 대한 시장 지배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얼마전 하나금융은 은행장 후보로 박성호 디지털리테일그룹장(부행장)을 내정했다. 금융지주들이 사활을 건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인도네시아 HANA 부행장과 행장을 거칠 만큼 아시아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다.

하나금융투자 CEO에는 파격적인 인사가 있었다. 74년생으로 올해 47세인 이은행 부회장이 사장으로 전격 배치된 것이다. 이 내정자는 중국 지린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베이징대 고문교수를 거쳐 그룹의 글로벌전략을 총괄해온 사람이다. 중국 민생투자그룹 부회장 경력도 가지고 있다.

다른 금융지주 대비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 점차 힘을 잃어가는 은행부문의 NIM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그 열쇠를 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금융업이 예대마진으로 땅짚고 헤엄치던 시절은 끝났다”며, “제로금리 시대에 고객에게 얼마나 더 많은 편익을 얼마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회사의 존망이 갈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금융지주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로고(제공=연합뉴스)
시중은행 로고(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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