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함정 4척 수주 쾌거.. 중남미 수출 최대 규모
정부와 손잡고 현지 니즈 맞춘 최적화 전략 '성과'
해외 방산기업과 협력 확대.. 북미시장 공략 '속도'
HD현대가 'K-함정' 수출 포문을 활짝 열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페루로부터 중남미 방산 수출 중 역대 최대 규모의 함정 수주에 성공한데 이어 캐나다 함정 수주 가능성까지 열려 조선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최근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와 6406억원 규모의 함정 4척에 대한 현지 건조 공동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중남미 방위산업 수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주고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은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팀 코리아(Team Korea)'를 꾸려 합심해 이뤄낸 의미있는 성과라는 설명이다.
이번에 수주한 함정은 3400t급 호위함 1척·2200t급 원해경비함 1척·1400t급 상륙함 2척이다. HD현대중공업이 함정의 설계와 기자재 공급, 기술 지원을 수행하고 시마조선소가 최종 건조를 맡게 되는 방식이다. 이후 함정들은 2030년까지 페루 해군에 순차적으로 인도된다.
이같은 중남미 방산 수출 사상 최대 수주고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발히 이뤄진 우리 정부의 지원 사격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페루 함정 수주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방산기업들이 경쟁자로 참전했는데 이들을 제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입찰 공고 단계부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시마조선소가 함정 입찰을 공고하자 방위사업청이 석종건 청장 명의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또 최종욱 주페루 대사는 페루 정부와 시마조선소 측에 한국 조선의 기술력을 피력하는 서한을 보냈다.
현재 방사청은 방산 관련 기관과 함정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인 '팀십(Team ship)'을 꾸리고 방산 수출 지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페루 수주전에서도 우리 해군과 해양경찰청,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본계약 성사 직전까지 지원 사격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현지 산업 협력 및 기술 지원 등에 한국 정부 지원 입장을 밝혀준 것으로 전해진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페루 함정 수주는 함정 사업 기업과 정부 기관이 '팀코리아, 팀십'으로 뭉쳐 합심해 일군 성과라 더욱 값지다"며 "앞으로도 팀코리아로 힘을 모아 K-방산 수출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번 계약으로 15년간 페루 정부 및 해군과 '전략적 파트너' 지위까지 확보했다. 이에 페루 해군이 발주할 예정인 호위함 5척·원해경비함 3척·상륙함 2척 등 후속 함정 사업에 대해서도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해 추가 수주 가능성이 높다.
회사는 향후 페루를 거점으로 중남미 국가를 대상으로 함정 수출 사업을 본격 확대할 예정이며, 나아가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의 중남미 진출도 노릴 수 있게 됐다. 잠수함 또는 함정의 운영 기간은 최대 40년으로, 함정 한 척을 팔면 최소 수십년간의 MRO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HD현대 관계자는 함정 사업 진출 확대와 관련 "함정 등 방산 분야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의 '니즈'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상황과 니즈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어 수출 대상국의 니즈 중심으로 함정 시장 진출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요 전략으로는 첫 번째 국내에서 전량 건조후 인도하는 방법이며, 두 번째는 선도함을 국내에서 건조한 후 인도하고 후속 양산함을 현지에서 건조하는 국내건조와 현지생산 병행 방식이다.
첫 번째 전략은 HD현대가 그간 수주한 필리핀 호위함, 초계함, 원해경비함 등 총 10척 건조 사례가 해당한다. 두 번째 전략은 현재 진행중인 호주 호위함, 사우디 호위함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외 세 번째 전략으로 페루 수주 사례처럼 연구개발 및 기술을 지원하고 현지에서 건조하는 방식도 있다. 크게 3가지 전략으로 나뉘지만 수주 확대를 위해 상황에 따른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게 HD현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HD현대는 글로벌 함정 분야 진출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으며, 특히 HD현대를 이끄는 정기선 부회장이 직접 나서 공을 들이고 있어 주목된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방한한 자리에서 직접 함정에 대한 MRO 기술력을 피력하기도 했다.
최근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최고 방산 인공지능(AI) 기업인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무인수상정(USV)을 공동 개발키로 했다. 팔란티어는 미국 국방부·해군·육군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는 AI 기업으로 세계 1위 방산 기업인 록히드마틴과 미 해군의 통합 전투 시스템 현대화 사업을 공동 진행한 곳이다.
USV는 기존 유인함정을 대체해 위험 구역 내 감시정찰, 기뢰 탐색·제거, 전투 등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양사는 이번 협약에 따라 2026년까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정찰용 USV를 개발하고 이후 전투용까지 개발을 확대할 방침이다. HD현대중공업은 탑재될 첨단 장비와 시스템을 통합하고 고성능 선체 개발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HD현대의 자율운항 전문 회사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소프트웨어와 팔란티어의 미션 오토노미(AI 기반 임무 자율화)를 접목할 예정이다. 양사는 향후 미국 시장 수요에 대응해 USV 모델을 최적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밖에도 HD현대중공업은 글로벌 터빈 기업 GE에어로스페이스와도 함정 추진체계 개발을 위해 협력키로 했다. 회사는 함정을 설계 및 건조하고 GE에어로스페이스는 함정 추진을 위한 가스터빈 공급을 담당하는 형태다.
양사는 수출 함정에 대한 MRO사업에도 협력할 방침이다. 또 호주 왕립 해군 호위함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최신 함정 개발 등 해외 수주 확대를 위한 기술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근 3000t급 잠수함의 최초 적기 인도를 기념하는 신채호함 인도서명식에 전세계 9개 정부 관계자를 초청해 잠수함, 이지스함, 호위함 등에 대한 '방산 세일즈'도 진행한 바 있다.
또 HD현대중공업은 'L3해리스 테크놀러지'와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양사는 현지조달, 기술이전, 절충교역 등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한 전략적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캐나다가 대규모 잠수함 발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3000t급 신형 잠수함 12척을 발주할 예정으로, 사업 규모만 70조원에 달해 글로벌 함정업계에서 주목도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은 이 함정 사업을 수주할 유력 후보 중에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캐나다 무역사절단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를 방문해 대형 함정 수주건과 관련해 경쟁력을 확인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사절단은 캐나다 데이터 보안 네트워킹 기업 '스카이넷', 소프트웨어 보안 솔루션 기업 '머지베이스', 캐나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블루마인드', 마이크로 펌프 및 회로 제작 기업 '보레아스 테크놀로지' 등 16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됐다.
박용열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문장(전무)가 캐나다 무역사절단을 만나 직접 HD현대의 함정사업 역량을 브리핑하고 양자간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HD현대는 올해 1분기만 지난 상황에서도 높은 수주고를 올리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중공업·HD현대미포조선 등을 종속회사로 보유 중인 HD현대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현재까지 연간 수주 목표액 135억 달러 중 98억 달러(13조3500억원)를 수주하며 이미 목표치의 73%를 달성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