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의 전원책과 유시민이 던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패착
「국민이 무능한가, 소수 정치인이 무능한가?」
「직접민주주의 요소, 국민을 비상근 정치인으로 만들어」
영국민들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직후, 세상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스위스 프랑, 엔화, 금,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투자종목은 급등세를 탔고, 세계 시황은 ‘브렉시트의 여파가 선 반영된 부분이 있다’는 애널리스트들의 진단을 무색케 하며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EU 내 경제 강국들은 런던이 가진 ‘금융 허브’라는 타이틀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또한 스탠더드&푸어스, 피치 등 신용평가사들과 BNP파리바를 비롯한 세계적인 은행 그룹들은 브렉시트가 향후 세계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원유가 하락보다 덜 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세계는 브렉시트의 부정적인 여파를 장기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당사국인 영국에서는 차기 총리 0순위이던 전 런던시장이 출마를 포기하고, 재투표 실시 여부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는 등 단기적인 몸살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중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본말이 전도된’ 문제가 있다. 국민투표를 직접민주주의의 폐해와 연결시켜 비난하는 대목이다.
가려진 프레임
미국의 남북전쟁에는 ‘노예해방’이라는 명예로운 이름 하나가 더 붙어 있다. 남북전쟁 덕에 아프리카가 고향인 흑인들이 인간의 권리를 되찾았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인권의 차원에서, 미국민들은 남북전쟁의 의의에 꽤나 큰 자부심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이 전쟁을 노예해방 전쟁이라 부르며 미화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것이다.
전쟁 이전, 미국 남부지역의 가장 큰 먹거리는 면화를 재배해 수출하는 것이었다. 일손이 필요한 면화 농장주들은 흑인들을 사서 일을 시켰고, 따라서 노예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북부지역에서는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노동력은 공업의 유지・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반이기에, 북부의 자본가들은 남부의 자본가들에게 노동력 분배를 요구했다.

북부 자본가들의 노동력 분배 요구와 남부 자본가들의 거부, 이것이 미국 남북전쟁의 도화선이라 부를 수 있는 팩트다. 노동력을 차지하려는 두 자본가 집단의 전쟁은 1861년에 시작되었는데, 남부가 전투에서 거듭 승리하자, 북부는 노예해방을 기치로 흑인들까지 전투에 투입했다. 결과는 북부의 승리. 승리한 직후인 1863년 1월,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노예해방이라는 프레임으로 판단하면, 남부 사람들은 천하에 못된 인간이 되고, 북부 사람들은 천사가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을 노동력을 차지하기 위한 두 자본가 집단의 다툼이라는 프레임으로 판단하면,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뭇 달라진다.
두 패널, 패착을 던지다
영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온통 부정적인 말들뿐이다. 파이낸셜FT 타임스를 비롯한 해외 언론뿐 아니라, 우리 언론들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전 장관이 패널로 출연하는 jtbc의 토크쇼 ‘썰전’이 대표적이다.
브렉시트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두 패널의 분석은 비교적 정확했다.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가 EU의 나쁜 면에 치중한 언론보도 때문이며, 정보 수준이 높지 않은 유권자일수록 EU의 부정적인 면에 주목했다는 유시민 패널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전원책 패널도 적극 공감했다.

그런데 두 패널의 결론은 이상한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한번 들어보자.
전원책 : 이번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나서 영국의 주요 언론들, 그리고 해외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이걸 분석을 하잖아요. 분석을 심각한 민주주의의 폐해까지도 거론하기 시작했어요.
유시민 : 그렇죠, 직접민주주의의 폐해...
김구라 : 그리고 대의민주주의를 해야 된다 그런 얘기도 있고 막...
대의민주주의를 해야 된다는 얘기가 있다니...? 사회자의 이 이상한 ‘뜬금포’는 도대체 뭘까? 전문가든 누구든 영국을 직접민주주의 국가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국도 우리나라처럼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있고 의회가 있으며, 그 권한이 막강하다는 사실 자체가 대의민주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국민투표가 실시된 배경은 시민이 발의해 아래로부터 올라가는(Referendum, bottom-up)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아니라, 정부, 즉 위로부터 기획된(Plebiscite, top-down) ‘짝퉁’ 직접민주주의 방식일 뿐이다.
위로부터 기획된 국민투표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를 직접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은 것을 두고 직접민주주의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미 대의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를 향해 ‘대의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는 사회자의 말... 개그콘서트의 “이 방송이 녹화방송이라 여과 없이 나간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뭐 이런 건가? 편집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계속 가보자.
전원책 : 이 대중이 쉽게 말하면, 맨슈어 올슨이 쓴 책이 있어요. 그 책에 보면 ‘현대인은 합리적 무지rationally ignorant에 빠지기 쉽다’는 거예요. 왜 그런가 하면 공동체 주변 어젠다(주요 이슈)들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되는데, 이 재미난 세상에 내 할 일도 너무 너무 많은데, 나한테 별로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일에 많은 노력을 하고 시간을 안 들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현대인은 어떤 공동체의 어젠다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무지해지는데, 이걸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선동을 해서 이용을 한다는 거예요.
유시민 : 직접민주주의가요, 참 좋은 건데, 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우리가 사안이 복잡하고 이럴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 늘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요. 히틀러도 선거로 뽑았고요, 독일 국민들이.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를 누가 죽였어요?
전원책 : 민주주의 법정에서 독극물을 마셨죠.
유시민 : 그럼요, 최고법정 열어 가지고 거기 500명(대배심원)을 추첨으로 뽑아서, 그 사람들이 투표해 가지고 소크라테스를 사형선고를 했다고요. 그러니까 직접민주주의는 이렇게 굉장히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전원책 비판
위 토론은 세 가지 문제에 있어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첫째, 전원책 패널의 뒤집힌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현대인이 합리적 무지에 빠지기 쉽다는 맨슈어 올슨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런데 “현대인의 합리적 무지를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선동으로 이용한다”는 전원책 패널의 말은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이 재미난 세상에 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와 관련이 없는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합리적 무지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누군가가 연설과 언론 등을 통해서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게 누군가? 시간 없는 국민들인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국민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엘리트들, 바로 정치인들이다.
대중은 무지에 빠질 수 있다. 아니,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그 무지 앞에 ‘합리적’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도록 통제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이다. 다시 말해서, 대중이 드러낸 ‘합리적 무지’의 원인 제공자는 대중이 아닌 정치인들이라는 말이다.

유시민 비판 : 증거가 없다?
둘째, 직접민주주의를 공격해온 오래된 전통인 ‘시민 무능 신화’에 보조를 맞춘 유시민 패널의 무지에 대한 비판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좋지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유시민 패널의 말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낼 뿐이다.
‘사안이 복잡하고 이럴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 늘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요’라는 그의 말, 직접민주주의의 나라 스위스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할까?
스위스는 작은 나라니까 가능하다고? 좋다. 그럼 인구 3,000만 명이 넘는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 오리건, 노스 다코타, 워싱턴, 콜로라도, 애리조나, 몬타나, 미시건 등 미국 20여 개 주에서 지금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수십 가지나 되는 ‘아래로부터 기획된 국민투표(Referendum)’ 및 ‘주민발의안’에 대해 함께 투표하는 현실은 어떤가? 다가오는 이번 미 대선에도 수백 가지의 주민발의안이 투표에 부쳐질 텐데, 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가 말이다.

그뿐인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 이탈리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콰도르는? 현재 거의 완벽한 형태의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는 헝가리와 이탈리아, 리히텐슈타인은 또 어떤가?
2002년에 스위스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한 ‘대사건’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경제인연합처럼 스위스에도 스위스기업인연합이 있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 단체가 발행한 공공재정에 관한 백서에 ‘직접만주주의는 나라의 모든 부문, 모든 수준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문장이 명시되었던 것이다. 이 단체는 오랫동안 직접민주주의가 기업 혁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그들이 입장을 180도로 바꿨다. 그들이 멍청해서일까?
물론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선거가 잘못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결과가 대체적으로 지혜롭고 현명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많은 국가와 주 단위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시민 패널은 자신이 한 ‘늘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요’라는 말에 쳐놓은 ‘늘’과 ‘전혀’의 수사학적 완성도를 핑계 대며 자신이 한 말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유시민 비판 : 시민의 무능 신화
마지막으로, 유시민 패널은 히틀러를 선거로 뽑았고, 추첨으로 뽑힌 500명의 대배심원들이 투표로 소크라테스를 죽였던 사실을 언급하며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알든 모르든, 직접민주주의를 공격해온 오래된 전통인 ‘시민 무능 신화’에 봉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주장은 위의 무지보다 더 나쁘다.

시민 무능 신화란, 흑인은 백인에 비해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고 했던 남북전쟁 이전의 생각, 또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과 유사한 것을 말한다. 1851년 스위스의 정치인 제이콥 더브즈가 <데어 란트보테>지誌에 기고한 다음 글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자산이 없고 공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은 확장된 정치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 국민은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데 요청되는 모든 특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 .... 그들은 책임감도 없고, 법과 정의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긴 안목과 공동선, 교육, 문화에 대한 통찰력과 건전한 판단력도 갖고 있지 않다. ...... 국민이란 냉정한 이성의 빛에 의해 인도받는 것이 아니라 열정에 의해 좌우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관심도 없으며 미성숙한 보통사람들이다. ...... 그들이 민주적 프로그램이라는 마법의 잔을 들이키도록 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가 아니며,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도 아니며, 미래가 걸려 있는 진실되고 자유로운 인간성도 결코 아니다.’
평범한 국민은 복잡한 정치문제들을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 이것이 시민 무능 신화다. 이런 주장은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자는 국민적 요구에 부딪힐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것들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정말로 무능한가?”
국민이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주장은 정치인들, 특히 소수 엘리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자의적으로 드러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말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매 언행에 국민을 가장 높은 자리로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들이 해 보이는 각종 정치행태들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국민들의 의사와 다르게 펼쳐지는 행정 및 정국이 얼마나 많은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들이 정치 결정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국민들의 능력과 교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특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국민들이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접근해 결정을 내리도록 허용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그냥 보통 국민이어야지, 그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팩트다.

유시민 패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시민 무능 신화에 봉헌하는 말을 뱉어낸 것이다.
비상근 정치인이 되는 길
‘직접민주주의,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논의가 많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에 이미 직접민주주의 요소 중 가장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폐기하기 직전까지, ‘50만 명의 동의가 있을 경우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법조항이 무려 18년 이상 존속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쟁점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복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되어야 한다.
1639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첫 국민투표(Referendum, bottom-up)가 실시된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세계인의 요구는 끊임없이 강화되어왔으며, 정도를 불문하고 수십 개 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의 세계적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한다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배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진 폐해를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국민들로 하여금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국민들이 실제로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정치권력의 남용, 시민의 무능화 등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진 폐해를 견제할 수 있게 한다. 국민들을 막스 베버Marx Weber가 말한 ‘비상근 정치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정치행위, 그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아니면 20년, 30년 장기플랜을 짠 뒤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도입해 ‘비상근 정치인’이 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짜는 정치 프레임 안에서만 놀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정치 프레임을 짜는 ‘비상근 정치인’이 될 것인가? 우리 국민 스스로가 판단해야 할 과제다. 정승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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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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