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 반도체를 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세기 석유를 놓고 세계 각국이 패권 다툼을 벌이던 것과 비슷하다.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장비, 판매 등 거의 모든 과정이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삼성 vs TSMC 치열한 나노 경쟁
최근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는 파운드리다. 세계 시장을 절반 이상 장악한 대만의 TSMC를 삼성전자와 인텔 등이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미터(nm)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하며, TSMC를 긴장시켰다.
3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며,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 신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 파운드리 서비스는 세계 파운드리 업체 가운데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GAA 기술은 기존 TSMC가 5nm 공정에 사용하는 핀펫(FinFET)보다 반도체 크기는 35% 줄이고, 에너지 소비와 성능은 각각 50%, 30% 향상할 수 있다.
TSMC도 올해 하반기 3nm 파운드리를 시작할 계획이다. 특히, 반도체 양산에 가장 중요한 수율 측면에서 삼성전자를 앞설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로 TSMC는 초미세 공정에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50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여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장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월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기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 경영진을 만나 최대한 많은 노광기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시장 점유율과 수율에 달렸다"고 했다.
美, 中 견제 '반도체 동맹' 추진
TSMC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TSMC에만 주문을 내는 것은 아니다. 단일 공급자에 의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5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대만을 지적하며 "미국의 가장 정교한 반도체의 70%는 대만에서 생산된다"며 "군사장비에 사용되는 반도체도 대만산인데, 이들 모두를 대만에서 사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은 실제로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하원을 통과한 '반도체 지원 플러스 법안(이하 반도체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에 새로운 반도체 제조 시설을 건설하거나 확장하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의 보조금을 주고, 반도체 연구개발에 11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반도체법에는 특히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향후 10년간 중국 등 '비(非) 우호 국가'에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됐다. 미국은 이미 2020년 말부터 중국에 10나노 이하 첨단 공정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한국·대만·일본·유럽 등과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반도체 동맹' 결성을 노리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빠진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과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힌리히재단의 알렉스 카프리 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이나 대만의 반도체 개발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 사물인터넷, 통신 등 신흥 분야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경제와 기술이 밀접하게 연결됐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역내 반도체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를 통합하고, 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할 것"이라며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 진행하는 것)'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유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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