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갈등에 행동주의 펀드 활약 '시끌'
주주와 소통 확대.. 성토장 되는 역효과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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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LG전자 등 4대그룹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마쳤다. 이 가운데 올해 주총 키워드로는 '대화'와 '행동주의 펀드', '경영권 분쟁' 등이 꼽힌다.

1일 재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은 지난달 28일 열린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오너일가 경영권 분쟁을 1차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한미그룹은 소액주주들이 장·차남 임종윤·종훈 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모친 송영숙 회장 등이 추진하던 OCI그룹과의 통합이 무산됐다. 현재 장남 임종윤 사장이 떠나간 그룹 임원들을 데려오고 미래 비전을 세우기 위해 분주한 상황이다.

한미그룹 외에도 올해 주총에서 경영권 분쟁에 돌입한 기업들이 다수 있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주총이 열리기 전부터 오너일가간 신경전이 치열했다.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와 손잡고 박찬구 회장 등 그룹을 향해 강하게 '자사주 소각'을 압박한 것이다. 3차 '조카의 난'이 일어났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박 회장의 '완승'으로 일단락됐다.

75년간 동업해온 고려아연(최씨 일가)과 영풍(장씨 일가)이 경영권 분쟁으로 갈라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25.15%)인데, 고려아연이 영풍과 갈라설 결심을 하게 되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고려아연 주총에서 고려아연과 영풍이 각각 1승 1패 기록했으며 현재 영풍은 고려아연 신주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하고 고려아연은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로 본사를 옮기기로 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동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두고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서린상사는 1984년 설립된 글로벌 종합무역상사로, 지분의 49.97%를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의 종속회사로 분류되지만 경영은 영풍의 창업주 3세인 장세환 대표가 맡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27일 열릴 예정이었던 주총이 무산된 가운데 여전히 대립 중이다.

남양유업은 오너일가 분쟁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주총에서 경영권 교체 이슈가 있어 주목받았다. 지난 1월 말 남양유업의 주식을 취득한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의 신규 인사들이 주총에서 남양유업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되면서 정식으로 경영 참여를 본격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남양유업 2세대인 홍원식 회장이 물러아면서 한앤코와 남양유업 오너일가간 경영권 분쟁도 일단락됐다. 홍씨일가의 남양유업 오너 경영이 60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에선 주총장이 주주들 성토의 장이 된 곳도 많았다. 올해 주총에서는 주주들과의 소통을 늘리는 기업들이 많았는데 역효과가 난 곳들이 있던 탓이다.

LG전자는 주주와의 소통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히 새롭게 '열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중장기 사업전략과 비전을 공유했으며 네이버와 SK, 삼성 등도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다만 대부분이 부진한 주가와 성과를 지적하고 기업은 사과하는 장소로 변모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제1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제1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SK이노베이션 주총장에서는 주주들이 회사 주요 경영진들에게 울분을 쏟아내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주가 하락 상황에서 회사의 주주가치 제고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다.

특히 주주들은 SK이노베이션이 벌어들이는 돈이 배터리 자회사 SK온 설비투자 등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SK온이 배터리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SK온이 분할상장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주주보상책이 부족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SK이노베이션 경영진들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주주들을 달래고 회사 실적을 끌어올려 주가도 부양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삼성전자 주총에서도 주주들의 송곳같은 날카로운 질문들이 자리하는 등 성토가 이어졌다. 주로 경쟁사보다 저평가된 주가를 지적하는 발언들이었다. 결국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에 반도체 산업 업황 둔화와 경기둔화로 경영여건이 어려웠다"며 "주가가 주주들의 기대에 못 미쳐 경영진으로서 사과드린다"고 사죄했다.

네이버 주주총회에서도 주가 하락에 따른 주주들의 성토가 쏟아지고 성장성과 서비스 혁신 등의 비전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주가에 대한 심려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통감하며 주주께서 '혁신이 죽은 것 같다'라는 말은 대표에게 준 뼈 아픈말로 새겨듣겠다"고 말하며 연신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밖에도 올해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인 개입과 주주제안 등의 활약이 눈에 띄기도 했다. 태광산업은 행동주의 펀드 트러스트자산운용이 추천한 사내외이사 3명이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KT&G 주총에서는 방경만 대표이사 선임을 두고 최대 주주인 기업은행과 행동주의 펀드 FCP(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가 손잡고 표 대결을 펼쳤다. 표 대결에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방 대표의 선임을 찬성해 가결된 한편 기업은행과 FCP 측이 추천한 손동환 사외이사가 이사회 진입에 성공하면서 '절반 성공'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물산 주총에서는 안다자산운용과 시티오브런던 등 행동주의펀드 5개 연합이 삼성물산에 대해 보통주 주당 4500원과 우선주 주당 4550원의 현금배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상정했다. 다만 국민연금 등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됐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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