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루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투명한 IP 공시 강조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각종 기술금융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 1월 특허청은 228억원 규모의 지식재산(IP) 직접투자 펀드를 신규로 조성했고 최근 금융위원회도 ‘기술금융 개선방안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시장은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이와 관련한 현황을 다양한 관점에서 진단하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생기 잃은 기술금융』 시리즈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가운데 보유한 기술을 기반으로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는 기술신용대출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부 기업 공시 담당자 사이에선 “밸류업 때문에 기존 재무공시에 비재무공시까지 더해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오히려 투명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가 기술금융 활성화에 기여를 할 가능성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14일 은행연합회의 기술금융 종합상황 공시를 보면, 국내 전체 은행의 올해 3월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09조원으로 기록됐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6.10%(20조1000억원) 떨어진 수준이다.
기술신용대출은 초기 자본은 부족하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초기‧혁신기업을 대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상품이다. 부동산 등 담보가 부족한 기업의 특성을 반영해 무형의 ‘기술’을 담보로 자금을 공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2014년 출시 이후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초기 혁신 및 중소기업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했던 기술신용대출은 20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은 기술신용평가를 받은 기업에 대해 금융중개지원대출 실적에 반영하고 시중은행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품질심사평가 결과에 대한 인센티브는 있지만 패널티가 없어 평가사는 품질개선 노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문제점이다.
기술신용대출 평가액의 경우, 2023년 3월 245조1000억원에서 올해 3월 234조원으로 4.52% 떨어졌다. 같은 기간 기술신용대출 건수는 83만1425건에서 72만87건으로 13.39% 추락했다.
금융권의 기술금융 규모가 줄어든 건 평가 신뢰도가 떨어진 탓으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타인의 자격증 등을 도용해 마치 기술평가사가 기술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평가하고 기술금융으로 취급해도 해당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처벌이 어려웠다.
해외 학계에선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기술평가’와 ‘공시 규제 역할’의 중요성을 제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토루 요시오카-코바야시 히토츠바시 대학 교수는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술 역량에 기반한 금융 관심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루 교수는 “기술평가의 타당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빠르고 합리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일본 미쓰비시 그룹 산하 UFJ 리서치 & 컨설팅 등은 2010년대 부터 IP 평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토루 교수는 정부와 규제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2005년 이후 지식자본(IP) 공시를 강조했다”며 “일본 전체 자본시장에서 기업의 IP 공시가 미치는 영향력이 아주 큰 수준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이 기업의 IP 가치를 알아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기업의 IP 현황을 공시하는 건 의무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의 사업현황과 비재무지표 공시를 강조하는 밸류업이 기술신용대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사업현황 ▲재무지표 ▲비재무지표 등을 자발적으로 공시해 시장에서 가치를 올리는 게 핵심 목적이다. 여기서 사업현황은 사업모델, 국내외 시장여건, 경쟁우위 요소, 리스크 요인 등을 말한다.
이 밖에 재무지표는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주주환원, 성장성 등에 대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포함한다. 비재무지표는 주주와 이사회, 감사기구 측면에서 지배구조 현황 등에 대한 내용이다.
만약 기업이 밸류업 공시의 일환으로 IP 현황을 투명하게 밝히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토루 교수가 강조한 것 처럼 시장 참여자들이 기업의 IP 가치를 파악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권에선 기술금융 활동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토스뱅크는 지난 10일 기술보증기금과 함께 중소기업을 위한 ‘비대면 디지털 금융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토스뱅크와 기보는 ▲비대면 금융지원 플랫폼 구축 ▲비대면·디지털 금융상품 공동개발 ▲기업 데이터 교류 및 네트워크 구축 등 중소기업을 위한 디지털·플랫폼 기반의 통합 금융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금융지원 활성화와 정부의 디지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DB손해보험은 중소기업의 기술분쟁 시 발생하는 법률소요 비용을 보험을 통해 보상받는 ‘중소기업 기술보호 정책보험’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특허 등과 같은 주요 기술과 관련된 예상치 못한 분쟁을 사전에 대비하고, 분쟁이 발생한 경우 변호사 선임비 등의 법률분쟁 대응에 대한 비용을 보상하겠다는 취지다.
금융사들이 기술금융 관련 활동을 늘리는 건 4월 3일 금융위원회가 ‘기술금융 개선방안’을 발표한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금융위가 발표한 기술금융 개선방안을 보면, 우선 기술신용평가사에 대한 행위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신용정보법을 개정하여 타인의 자격증을 도용하여 평가를 하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평가사의 행위규칙을 정비한다.
또한 평가 품질이 우수한 평가사에는 정책사업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미흡한 평가사에는 미흡한 평가사의 평가를 받은 대출잔액을 한국 은행 금융중개자금지원대출 실적에서 제외하여 패널티를 부여한다.
이 밖에 은행의 기술평가 지표에 우대금리 관련 지표를 추가했다. 신용대출 공급 지표 비중 확대를 통해 기술 담보 중심의 은행 여신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하락하고 있는 국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기술 혁신을 이뤄내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이 기술 혁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입된 기술금융이 질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술금융이 한 단계 성장해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의 자금애로를 적극 해소해주는 제도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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