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고금리·고물가, 전쟁 장기화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의 여파로 위기에 처했다. 본지는 창간 12주년을 맞아 생존의 기로에 놓인 주요 기업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는 한편,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사업 발굴과 기존 사업 보완 등 다양한 해결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아 ADC(항체-약물 접합체) 제조시설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아 ADC(항체-약물 접합체) 제조시설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고금리 등 경제 불확실성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대비한 신약 개발과 함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협력에 나서는 등 성장 발판을 다지고 있다.

데타에이아이컨설팅코리아가 발행한 글로벌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6104억 달러(841조300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이 7.1%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제약바이오산업은 과학기술지식 기반 산업으로, 대규모 자본 투자 및 장기간의 R&D가 필수적이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최소 20년 이상 독점적 전유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렇게 기업 외형 성장에 필요한 과업으로 꼽히지만 투입되는 금액과 대비해 성과 창출 가능성이 낮아 고위험 산업이다. 통상적으로 신약 개발에 10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 투자 금액도 갈수록 줄어드는 형국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분야 신규 투자액은 2021년 1조6770억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2022년 1조1058억원, 2023년 8844억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신약 개발과 인재 확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위기를 타개하고 'K바이오'의 위상을 찾기 위해 분주해지고 있다.

현재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 이후 13년만에 누적 바이오의약품 CDMO(위탁개발생산) 수주 총액이 125억 달러(17조 3600억원)를 돌파하며 탄탄하게 자금을 비축하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상위 20곳 제약사 중에서 16곳 제약사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으며 세계 위탁생산(CMO) 생산물량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함께 CDMO를 넘어 혁신 기업 투자와 바이오시밀러, 신약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과 함께 출자해 만든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통해 여러 기업에 투자하며 신약 개발 기회를 모색하는 중이다. 2022년과 올해 투자를 진행한 3곳(미국 재규어진테라피, 브릭바이오, 라투스바이오)은 유전자치료제 관련 기업이다.

이밖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 개발 등 신사업을 위한 인재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함께 최근 서울대학교와 바이오 R&D(연구개발)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산하에 '바이오 인력 양성 트랙'을 신설해 우수 인력을 확보한게 된다. 생명과학부 4학년 재학생 중 우수 장학생을 선발해 바이오 R&D 분야 석사 인력을 양성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를 시작으로 향후 바이오 관련 학과를 보유한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며 K바이오 인재 육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그룹 본사
셀트리온그룹 본사

바이오시밀러 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셀트리온 역시 성장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주력 제품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 Ⅳ'(정맥주사 제형)의 경우 지난해 1조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램시마SC'(피하주사 제형) 역시 같은해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짐펜트라(램시마SC 미국 제품명)를 출시해 대형 PMB 처방집에 선호의약품으로 등재되는 등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성장세를 빠르게 할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국내에서는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이덴젤트'와 '스텔라라' 바이오시밀러 '스테키마'의 국내 허가를 잇따라 승인받는 등 미래성장동력 확보도 진행 중이다.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경험을 쌓은 셀트리온은 구체적으로 2030년까지 총 22개 제품 포트폴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신약의 경우 2027년까지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대사질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신약후보물질 10개를 임상시험에 진입시키겠다는 목표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행보도 주목된다. 올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가 롯데바이오로직스 사내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바이오산업이 그룹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오너 3세가 직접 지휘대를 잡은 만큼 올해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6월 설립한 이후 1년여 만인 지난해 2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역시 CDMO 시장에서 강세다.

이 기세를 몰아 지난해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2030년까지 인천 송도 11공구 KI20 블록에 3개의 바이오플랜트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들 공장을 통해 총 36만 리터 항체 의약품 생산 규모를 갖춰 2030년까지 매추 1조5000억원, 영업익률 30%, 기업가치 2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CDMO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이밖에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서 바이오벤처와의 협력으로 R&D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바이오플랜트 단지에 벤처 회사들을 위한 '바이오 벤처 이니셔티브'를 조성해 지속적인 협업을 통한 상생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인재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대와 산학협력 교육 프로그램 공동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양 기관은 전 세계 예비 바이오 인재를 위한 입문 교육과정을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현장과 인재를 채용하는 산업체 간의 간극을 좁히는 것을 목표로 커리큘럼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CDMO 시장을 기반으로 자금을 확보한 바이오 기업들뿐 아니라 전통제약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먼저 유한양행은 현재 종양 14건, 섬유증질환·비만 7건, 신경계(CNS/PNS) 5건, 기타 4건 등 총 30건의 신약 파이프라인 과제를 수행 중이다. 임상을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은 6건으로 알려졌다.

이 중 가장 빠른 개발단계를 보이고 있는 물질은 퇴행성디스크질환을 목표 적응증으로 하는 'YH14618(SB-01, 레메디스크)로, 아직까지 퇴행성디스크질환에 근본적인 원인과 치료법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같은 수요를 충족할 신약으로 기대받고 있다. 현재 미국 임상3상 단계에 있다.

한미약품은 비만 5건, 항암 13건, 희귀질환 5건, 기타 1건으로 총 24건의 파이프라인 연구를 진행 중이며 임상에 돌입한 것은 19건으로 전해졌다. 올해 오너가 가족경영에서 분쟁을 겪던 가운데 R&D 투자 비용을 매년 꾸준히 늘려가며 투자할 계획을 밝힌데 따라 향후 신약 개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임상3상 과제로는 '에페글레타나이드', '오락솔®', 포지오니팁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경우 비만·대사 치료제로, 적응증은 제2형 당뇨병과 비만이다. 지난해 7월 식약처로부터 임상3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아 올해 1월 국내 임상3상을 개시한 상태다. 이르면 오는 2026년 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합성신약 19건, 바이오신약 8건, 줄기세포치료제 4건 등 총 27건의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며 임상에 돌입한 것은 15건이다. 이 중에서 임상3상을 진행 중인 건은 총 4건으로, 국산 34호 신약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스클루'와 국산 36호 신약 당뇨병 치료제 '엔블로'의 적응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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