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발간…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 잠재력 있어"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 소액주주 권리 침해, 재벌구조, 낮은 ROE" 문제 지적

프랭클린템플턴 홈페이지 이미지 캡처.
프랭클린템플턴 홈페이지 이미지 캡처.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이 9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은 ‘한국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상징’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자발적 성격 ▲세제 개편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 ▲재벌 구조 등으로 인해 밸류업 프로그램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한국이 반도체 및 소재산업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글로벌 기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다른 신흥국 시장 대비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에 거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는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와 소액투자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등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또한, 정당한 경제적 지분 없이 상호출자 및 가족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재벌 구조도 한국 기업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프랭클린템플턴은 한국 정부가 이러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분석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목표 설정 ▲기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세제 혜택 ▲밸류업 지수 개발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통한 시장 인식 제고 등으로 기업의 주식 가치를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프랭클린템플턴은 한국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었다는 근거로 MSCI 한국 지수를 들었다. 10년 평균 MSCI 한국 지수 PER(주가수익비율)은 12.8배,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1배로, MSCI 신흥시장 지수의 PER과 PBR이 각각 13.9배, 1.6배 인 것을 고려한다면 대형 신흥국 시장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들의 낮은 PER은 역사적으로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와 소액 주주 권리에 대한 무관심에 일부 기인한다고 봤다. 특히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만 가족주주에게는 유리한 거래를 자주 행한다는 것이다. 가족 주주에게 종속된 기업의 경영진들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기업의 공정가치에 할인을 적용한다.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 중 하나로 낮은 ROE(자기자본이익률)를 꼽으며, 낮은 ROE가 한국 기업의 낮은 이익률 및 레버리지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MSCI 한국 지수의 ROE는 8.9%로 MSCI 신흥시장 지수(11.8%)를 하회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신흥시장의 평균보다 3%p(포인트)가량 낮은 6.7%의 순이익율 때문이다. 기업 레버리지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지배구조협회(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 ACGA)의 아시아 기업지배구조지수 국가별 지배구조 점수(Asia Centre for Corporate Governance Index of Country Governance Scores)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 국가 중 한 단계 상승한 8위를 기록했다. ACGC가 국가 순위를 매기는데 사용하는 7가지 항목 중 한국은 이 기간 동안 6가지 항목에서 개선됐다.

30년 이상 한국 주식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프랭클린템플턴은 기업 경영진과의 미팅 및 서면 제안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업들과 소통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한국의 일부 상장사들은 외국인 투자자 캠페인에 동참해 주주 배당을 늘렸다.

그 예로, 한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는 2024년 1분기 배당금 인상 및 배당성향 25%를 약속하며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발행 주식의 1%를 소각해 EPS(주당순이익)를 증가시킬 계획이라 발표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최근 자사주 소각에 참여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등 주주 배당이 개선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글로벌 및 신흥 시장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진단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한국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배당소득세와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등 현행 조세 제도를 꼽았다. 현행 법상 2000만원 이하의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15.4%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되며, 배당 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49.5%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배당세가 없는 싱가포르, 대만 등 주변 국가와 대조된다. 대주주에 대한 높은 수준의 배당세는 대주주로 하여금 배당금 확대를 주장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며, 오히려 대주주가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수단들을 통해 기업 가치를 이용할 수 있다고 프랭클린템플턴은 지적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한국 시장이 올바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라고 평가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자발성과 세제 개편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으로 인해 가시적 성과를 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창업주 일가가 낮은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재벌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 역시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는 전체 주주의 수익보다 시장 지분율을 우선시하는 지배 주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프랭클린템플턴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권익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될 수 있다는 당국의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율성을 강조하는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원칙준수·예외설명(comply or explain)’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코드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세제 개편을 통한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지만, 2024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제도적 변화를 기대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봤다.

한국거래소가 2024년 9월까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출시하고 4분기 중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할 계획이라는 점에 대해 프랭클린템플턴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해당 지수의 편입 기준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밸류업 프로그램 자체가 강제성이 없어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랭클린템플턴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소액 투자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판단했다. 동시에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정치적 환경의 변화도 필요할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