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주주가치 저해" 비판 한 목소리
연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선보였지만, 밸류업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곳들 조차 일반 주주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정책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밸류업 역행하는 기업들> 시리즈를 통해 선정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과 주주가치 제고 실태를 점검하고, 정책의 효과를 되짚어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수그룹 계열사 이수페타시스가 ‘올빼미 공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날 한시에 논의된 호재성 정보는 시간 외 단일가 매매 시간에 알린 반면 주식가치 하락 우려가 있는 유상증자 소식은 거래가 마감된 후 공시됐기 때문이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5분 기준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88%(1250원) 오른 2만2500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는 지난달 말 종가(3만6400원)와 비교해 38.19% 떨어진 수준이다. 2조원을 웃돌던 시가총액은 현재 1조4230억원까지 내려왔다.
이수페타시스는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논란의 핵심은 지난 8일 발표된 공시 내용이다. 이수페타시스는 8일 오후 4시 55분, 신규 시설 투자에 관한 내용을 공시한 뒤, 약 한 시간 후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 계획은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였지만, 유상증자는 주식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로 주가 하락 요인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사회는 두 안건을 모두 같은 날 오전 9시에 논의했지만, 공시 시점을 달리하며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이수페타시스의 행태를 두고 주주 신뢰를 저버리는 ‘올빼미 공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유상증자는 이수페타시스가 최근 결정한 제이오 인수를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진행됐다. 제이오는 2차전지 소재 분야에 특화된 기업으로, 이수페타시스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투자자들은 회사가 AI 기반 인쇄회로기판(PCB) 사업을 통해 고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사업 초점이 흐려졌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2차전지 산업의 불확실성과 특정 고객사 의존도 등 리스크를 언급했다.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본업(PCB 사업)의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 부족하다”며 “이번 M&A와 관련해 제이오와의 시너지는 단기간 내 가시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EPS(주당순이익) 희석 효과를 강조하며, “MLB 사업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유상증자로 인한 리스크가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제이오의 신사업 진출에 따른 성장 가능성보다는 중장기적인 부담을 지적하며, 투자자 설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더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EPS 희석 이상의 하방 압력을 야기한다”며, 투자자와 충분한 소통 없이 진행된 의사 결정을 문제 삼았다.
양 연구원은 “전기차의 성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는 없다”면서도 “회사가 보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수페타시스의 사례가 단순히 주가 하락 문제를 넘어, 투자자 신뢰와 경영 신뢰성을 시험한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12월 6일까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기업을 대상으로 ‘코리아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의 특별 변경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현재 이수페타시스는 최소 내년 6월까지 해당 지수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 기업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밸류업 지수에서 주주 신뢰를 저버린 기업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올빼미 공시에 대해 “악의적, 의도적이지 않았다”며 “공시 과정에서 한국거래소의 검사로 인해 시간이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증권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수페타시스가 현재 PCB 사업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유상증자를 둘러싼 논란은 주주와 투자자 사이에서의 신뢰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회사는 보다 투명하고 일관된 경영 행보를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