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ESG 투자 딜레마 겪어

(왼쪽부터)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등.
(왼쪽부터)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등.

금융학계에서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일관된 정책 메시지와 장기적 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지속가능금융의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 정책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스트레이트뉴스는 2026년 예정된 KSSB 의무화에 대한 현실적 이슈에 대해 질문했다.

이미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를 포함해서 지속가능성 회계기준 위원회(SASB), 기후변화 재무정부공개 태스크포스(TCFD),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등 글로벌 시장에 수많은 ESG 표준이 있고 기업들에겐 공시 피로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권에 따라 지속가능 금융 정책이 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미국의 트럼프 정부처럼 정책 변화로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지속가능 금융의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정부도 속도 조절은 가능하나, 명확한 공시 기준 도입 계획을 통해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저탄소 전환 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형 지속가능 공시기준(KSSB)에 대해 “글로벌 기준인 ISSB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혼란보다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연구위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저탄소 전환 금융의 저변 확대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중요하지만, 과도한 비용 부담과 불확실성이 큰 건 사실”이라며 “정부는 다른 나라보다 너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나 네덜란드 연기금처럼 ESG를 강하게 추진하는 국가도 있지만, 미국처럼 수익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있다”며 “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베트남 등 신흥 시장에서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글로벌 ESG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ESG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기업 의사결정과 성과 개선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ESG라는 용어가 사라질 수는 있어도, 기업의 비재무적 요인을 고려한 의사결정은 이미 내재화되고 있다”며 “이는 재무적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월마트는 과거 인종·성차별 문제로 투자 배제 대상이 됐지만, 이를 개선하며 주가와 실적이 상승했다”며 “반면 스타벅스는 열악한 노동 조건이 이직률 증가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ESG는 기업 활동의 외부효과를 고려한 지속 가능성의 문제이며,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금융의 역할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편 최재원 서울대 교수는 정책 심포지엄에서 글로벌 ESG 투자의 퇴보 현상을 분석하며, ESG 투자 전략의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ESG 투자 실적이 전통적인 투자펀드와 비교해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며 “ESG 용어가 광범위한 이슈를 모두 포괄해 모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워싱 역시 투자자 신뢰도를 약화하고 있다”며 “일부 투자자와 각국 정부가 ESG를 정치적 의제로 간주하며 자산운용사와 기관 투자자 사이에 회의적 시각이 있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선 2020~2021년까지 ESG 펀드에 분기당 150~200억 달러가 유입됐으나, 2023년 이후 분기당 20억 달러 이하로 추락했다. 또한 2020~2022년까지 미국에선 매년 100개 이상 ESG 펀드가 출시됐으나 2023년에는 10개 미만으로 대폭 감소했다.

최 교수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ESG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며 “특히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ESG 의결권 행사 비율을 낮추고, ESG 펀드 자금 유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ESG 투자가 수익률 저하와 신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ESG 관련 주식의 수익률이 전통적 주식보다 낮아졌고, 투자자들은 이를 사치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이와 함께 그린워싱 문제와 ESG 등급의 모호성이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SG를 단일한 개념으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탄소 감축과 같은 핵심적인 환경(E) 문제는 분리해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패시브 운용사들의 ESG 의결권 행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를 더 투명하게 공시하고 투자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ESG 투자는 자산운용업계에서 시작된 만큼, 지속 가능 금융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 업계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다”며 “장기적 전략과 세분화된 접근법으로 ESG 투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축소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소 위축되고 있다”며 “일부 국가에서는 환경 규제 완화와 같은 정책 변화로 지속가능 금융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속가능 금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새로운 전략과 접근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최근 글로벌 차원에서 지속가능 금융이 주춤하는 흐름도 있지만, 길게 보면 이 이슈는 계속될 것”이라며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리스크지만, 준비한 자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속가능한 금융 분야에 유동성이 원활히 흐르도록 노력 중”이라며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펀드와 기후기술 펀드 등을 통해 약 9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은 “지속가능 금융은 ESG, 글로벌 기후 위기, 이해관계 자본주의의 개념이 더해지며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왔다”면서도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ESG 투자 감소와 의결권 행사 비중 저하 등 위축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회장은 “ESG 경영을 선도했던 블랙록 대표조차 지난해 ‘ESG 단어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미국에서 트럼프 2.0 시대가 열리면 파리 기후협약 재탈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ESG의 위기론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속가능 금융은 기업의 존속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시대적 과제”라며 “공시 규제 강화, ESG 주주권 확대, 시장 조성자 역할 강화, 기후 리스크를 포함한 자산 건전성 평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학회장은 “투자 수익률 판단 기준을 장기화하거나 지속가능 금융 범위 확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RE100만으론 기업의 ESG 성과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이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말한다. 2014년 비영리단체인 기후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공동으로 시작했다.

박지원 연구위원은 “RE100 참여 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용이 즉각적으로 증가했지만, 탄소 배출량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고 ESG 전체 점수에도 미미한 영향을 미쳤다”며 “특히 환경(E)과 사회(S) 점수가 감소하는 ‘구축 효과’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려운 국가나 재무적 제약이 있는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반면 에너지 집약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탄소 배출량 감소와 긍정적 ESG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RE100처럼 구체적이지만 협소한 목표만으로는 ESG 성과를 개선하기 어렵다”며 “기업들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그린워싱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계의 자발적 노력에는 한계가 있어 금융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지속가능 금융 활성화를 위해 정책금융과 민간 금융이 협력해야 하며, 선진적 금융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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