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IRA 도입 및 첨단전략산업기금 조성 가능성 거론에 기대감↑
LG엔솔·삼성SDI·SK온, 포트폴리오 다변화·수익성 확대 등 최우선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로 인해 위기에 놓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돌파구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배터리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커지면서 숨통이 트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배터리 업계는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불리는 직접환급제도 도입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자국의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다.
지난 4일 열린 'K배터리 퀀텀점프를 위한 이차전지 배터리 직접환급제 도입 토론회'에서 이상수 LG에너지솔루션 담당은 "배터리 산업은 중장기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며 세액공제 직접환급제 도입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기차 캐즘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긴 하나 향후 미래가 전동화 시대가 될 것은 분명한 만큼 중국에게 글로벌 패권을 빼앗기기 전에 한국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 캐즘에 미국 시장으로의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저가'라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나가는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은 점유율 26.1%로 1위를 유지했다.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11.6%로 CATL과 격차가 다소 컸으며 SK온과 삼성SDI는 각각 4.5%, 3.7%였다. 자국 기업 중심 문화가 확산된 중국 시장을 포함할 경우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려면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가격경쟁력 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22일 국회 이차전지포럼 소속 이연희 민주당 의원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업계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개정안은 배터리 제조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를 기존 법인세 공제 방식에서 직접 현금 환급으로 전환하고 국가전략기술 지정 시점 이후부터 소급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국내 배터리 기업은 소급 적용 시 최소 수십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의 공제액을 환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 산업과 기술을 지원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가칭)'을 산업은행에 신설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해당 기금은 현재 가동 중인 반도체 금융 지원 프로그램의 2배 이상 규모로 조성해 첨단산업 기업들의 저리 대출과 지분 투자 등 다양한 지원 방식을 추진하는데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금융 지원 프로그램 규모가 17조원인 점을 고려할 때 첨단전략산업기금은 34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체적인 기금 신설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관련 법률 개정안을 오는 3월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첨단전략산업기금은 기존에 지원 중인 반도체 대신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됐다는 점에서 배터리 업계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배터리 산업은 전동화, 탈탄소화, 무선화의 핵심 기반 기술"이라며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한국판 IRA, 첨단전략산업기금 등 정부의 지원이 기대되는 한편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며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어 연내 반등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현재 배터리 3사는 △생산시설 조정 △포트폴리오 확장 △원가 경쟁력 확보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글로벌 시장 변수 대비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각 사별로 자금 조달, LFP(리튬인산철)배터리 양산, ESS(에너지저장장치) 생산능력 확대, 전고체 개발 등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자금 조달 속도·ESS용 LFP배터리 수주 확대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일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북미 지역 투자 등 공격적인 생산 확장을 위한 결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오하이오 혼다 합작공장, 미국 조지아 현대자동차그룹 합작공장, 캐나다 온타리오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등을 건설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하반기에는 스텔란티스 합작공장과 혼다 합작공장 등을 신규 가동하고 고부가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장 가동률이 하락하지 않도록 탄력적인 경영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ESS용 LFP배터리를 낙점하고 수주 확대에 집중한다. 캐즘으로 전기차 배터리 판매가 부진한 사이 AI 시대 도래에 따라 각광받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ESS 배터리 수요에 주목한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북미 현지 생산을 기존 2026년에서 올해 상반기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ESS 생산능력을 미국 애리조나에 신규 증설하는 대신 기존 사이트의 유휴 캐파(생산능력)를 우선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주 상황은 순조로운 편이다. 지난해 5월에는 한화큐셀과 4.8GWh 규모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어 같은해 11월에는 미국 재생 기업 테라젠과 8GWh 규모의 공급 계약을, 이어 12월에는 신재생에너지 사모펀드 엑셀시오 에너지 캐피털과 7.5GWh 규모의 공급 계약을 각각 맺었다.
◇'꿈의 배터리' 전고체 개발 앞장 선 삼성SDI
삼성SDI는 3사 중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으로, 전고체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오는 2027년 상용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서는 업계 최고의 밀도를 자랑하는 900Wh/L 용량의 전고체 배터리 양산 로드맵을 공개하기도 했다. 독자적인 기술을 통해 음극의 부피를 줄이는 등 에너지 밀도를 기존 각형 배터리 대비 40% 가량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공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히는 생산공법과 라인 투자 계획을 마무리하고 있는 단계로, 이를 마치면 고객사들에 전고체 배터리 샘플 생산 및 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삼성SDI 역시 ESS 경쟁력 확보에 집중한다. 올해는 전년 대비 생산능력을 20% 이상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내 현지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이를 토대로 오는 2026년부터 차세대 전력용 ESS 배터리 업그레이드 버전인 'SBB(삼성 배터리 박스) 2.0' 양산을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SK온, 3사 합병 완료.. 재무건전성 확보·포트폴리오 확장 집중
SK온은 이달 초 글로벌 배터리&트레이딩 회사 도약을 위한 3사(SK온·SK트레이딩내셔널·SK엔텀)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한 토대를 다졌다. 지난해 3분기에 12개 분기 만에 첫 흑자를 달성했지만 4분기에는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 올해 다시 반등한다는 목표다.
이번 합병을 통해 SK온은 연간 5000억원 규모의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추가를 기대하고 있다. 또 리튬·니켈·코발트 등 배터리 광물 소재 트레이딩 사업을 강화하고 관련 R&D 역량을 강화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예정이다.
아울러 SK온은 미국 테네시주 블루오벌SK 공장의 상업가동 일정을 재검토 하는 한편 고객 요청과 전기차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중 상시로 생산 라인 운영 계획을 최적화하는데 힘쓴다는 방침이다.
이밖에도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차세대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하는 중으로, 올해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해 빠른 시일내 시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