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계, 미국처럼 대형사와 중소형사 IB 역할 분담 전망
국내 증권사들의 성장세가 한계점에 직면했다. 증권사들의 몸집이 커졌지만, 국내시장은 여전히 규모가 한정됐기 때문이다.
21일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한국투자·NH·삼성·KB·메리츠·하나·신한·키움증권 등 9개 대형사는 지난해 4분기 7486억원의 분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반면 대신·교보·한화·신영·유안타·현대차·IBK·BNK·iM·유진·DB·LS·노무라·부국·다올·SK·한양·리딩·상상인 등 19개 중소형사는 392억원의 분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 양극화는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2024년 대형사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약 5조8000억원으로 2023년(약 2조4000억원) 대비 147% 증가한 반면, 중소형사의 당기순이익은 약 4850억원으로 2023년(약 8300억원) 대비 42% 감소했다.
비우호적인 업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익창출력 수준과 대손비용 부담 수준 등에서 차이를 보이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실적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윤소정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증권사에 비우호적인 영업환경이 지속되면서 대형사와 중소형사간 실적 양극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외 부동산금융 익스포져 관리부담이 지속되고 있고 대내외적 경기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실적 가변성이 높고, 일부 증권사의 저조한 실적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윤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부동산PF 관련 대손 및 정리 부담의 차이가 실적 회복에 계속 부담을 주고 있다”며 “대형사의 경우 대부분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우수한 이익창출력과 양호한 재무완충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소형사의 경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둔화 이후 이를 대체할 수익원을 확보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 가운데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추가적인 대손비용이 매분기 발생하면서 이익창출력이 크게 둔화됐다”며 “특화된 사업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이와 같은 실적 양극화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연구계에선 “국내 증권업계가 몸집을 불렸지만, 이젠 규모의 확장이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내 증권업계의 대형화가 진행되었지만, 미국이나 일본처럼 극단적으로 대형화되지는 않았다”며 “현재 한국의 증권업계는 대형사가 많아졌지만, 그 규모의 확장이 한계점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미국의 경우, 대표적인 대형 투자은행(IB) 여섯 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전문 트레이딩 회사와 중형 IB 증권사들이 존재하는 구조다. 일본 현지에서도 노무라, 다이와 등 소수의 대형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벌지 브래킷(Bulge Bracket)으로 불리는 6개의 대형 투자은행(IB)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전문 트레이딩 및 중형 IB들이 포진했다. 반면, 한국의 증권업계는 이들과 차이가 있다.
이 실장은 “한국 자본시장에선 미국 벌지 브래킷(Bulge Bracket) 규모의 대형 투자은행(IB) 회사가 10개나 존재한다”며 “규모의 경제가 있긴 하지만, 이미 대형사가 많아진 상태에서 추가적인 초대형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 차이도 대형화의 한계 요인이다.
이석훈 실장은 “미국의 경우 최대주주가 적고 주주 분산이 이루어져 있어 인수합병(M&A)이 활발하다”며 “하지만 한국은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성장한 증권사들도 최대 주주가 명확해 합병이 쉽지 않고, 시장 규모와 지배구조의 한계로 인해 성장 속도가 둔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블루칩(Blue-chip) 트레이딩 전문 회사와 중형 IB사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차별화된 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블루칩 주식이나 대형 기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트레이딩 회사들은 대개 유동성 공급, 알고리즘 트레이딩, 마켓 메이킹 역할을 한다. 제인 스트리트는 인공지능(AI)과 고빈도 트레이딩(High-Frequency Trading) 기술을 활용해 시장 조성 역할 수행한다. ▲시타델증권 ▲버투 파이낸셜 등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중형 IB사는 차별화된 전략을 사용하여 특정 시장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제프리스 그룹은 미드캡과 스몰캡 기업공개(IPO)와 M&A 자문에서 강점을 보이며, 대형 IB사가 다루지 않는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 이밖에 중형 IB사로 ▲레이몬드 제임스 ▲파이터 샌들러 ▲BTIG 등이 있다.
이석훈 실장은 “국내 증권업계도 미국과 같은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