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기질로 단숨에 ‘공정과 상식’ 아이콘 부상
문재인・조국 배신, 정치 9개월만 대통령 당선
‘불통・무소불위 행보’...국회는 공격・대립 대상
무속・음모론・김건희 감싸기, 계엄 망상에 몰락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8 대 1 전원일치로 파면을 인용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탄핵 찬성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기쁨의 환성과 함께 감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8 대 1 전원일치로 파면을 인용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탄핵 찬성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기쁨의 환성과 함께 감격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결국 파면되면서 국가수반까지 오른 4년여 짧은 정치 경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헌재는 △12・3 비상계엄 선포 △포고령 1호 발표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국회 활동 방해) △군대를 동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정치인 체포조 운용 지시 등 5가지 쟁점에 대해 11차례 변론과 평의를 진행한 끝에 이날 오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선고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헌・위법성이 없는 계엄령’이라거나 ‘야당과 국민에 대한 계몽령’ 등으로 호도하며 ‘야당에 의한 내란·탄핵 공작설’ 주장까지 펼쳤지만 헌재는 비상계엄 선포 등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고, 중대성 또한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4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같이 주문했다.사진공동취재단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4일 오전 11시 22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같이 주문했다.사진공동취재단

'정치 신인' 윤석열, 대권까지 파죽지세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 기질로 단숨에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부상했고, 2019년 조국 전 민정수석의 추천을 받아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조국 사태’는 그의 정치적 진로를 뒤흔들었다.

총장 직을 사퇴하며 대학 시절 포함 42년의 법조인 경력을 벗은 그는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 시절이던 2021년 6월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어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누른 후 안철수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같은 해 11월 보수 진영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합니다.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습니다.”

2021년 6월 29일 윤 전 대통령의 출사표는 자신을 검찰개혁 적임자로 판단해 중용했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이듬해 3월 9일 실시된 대선에서, 그는 정치 입문 9개월 만에 48.56%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역대 최소 득표차인 0.73%로 따돌리며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2년 2월15일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 환호에 어퍼컷 자세를 취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공동취재단
2022년 2월15일 부산 서면에서 지지자 환호에 어퍼컷 자세를 취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공동취재단

당 장악・당무 개입...무소불위 권력자

2022년 5월 10일 취임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을 통해 국민의힘 전체를 친윤계로 바꿔냈고, 반기를 드는 당내 인사들을 제거해 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당은 ‘용산 여의도 출장소’라 불리며 ‘윤바라기’로 전락해갔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가장 크게 공헌한 이준석 대표가 축출됐고, 당권 레이스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의원이 강제 하차했으며, 단일화 상대였던 안철수 의원까지 토사구팽됐다.

'헌정 유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살아온 길과 영욕의 집권 1061일. 연합뉴스
'헌정 유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살아온 길과 영욕의 집권 1061일. 연합뉴스

당정 협력도 탕평인사도 없는 무소불위 2년 6개월이었다. 국민의힘 대표는 10번이나 바뀌었고, 극우 성향 인사들이 득세했다. ‘인재 풀’이 고갈되자, 검사 출신들이 고위 요직을 채우더니 충암고 동문들과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들이 회전문처럼 돌고 돌았다.

이런 무소불위 행보는 급기야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긴 당무개입으로까지 나아갔다. 2022년 9월 출근길 도어스테핑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무슨 당무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보고 있고요”라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최근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이른바 ‘황금폰’ 녹음 파일에서 김영선 의원 총선 공천과 관련, “(윤)상현이한테 내가 한 번 더 얘기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한 육성이 공개됐다. 명백한 당무개입 정황증거였다.

‘윤석열・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연합뉴스
‘윤석열・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연합뉴스

이같은 대통령의 부적절한 당 장악과 당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무소불위 행보는 결국 지난해 4월 10일 실시된 제22대 총선 참패로 귀결됐다.

불통・입틀막・국회 패싱, “야권은 반국가세력”

의원 0선에 검사 26년이 경력의 전부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총선 참패 후 울며 겨자먹기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딱 한 번 만났을 뿐, 대통령에게 국회와 야당은 ‘소통과 협치’가 아닌 ‘공격과 대립’의 대상이었다.

의회 공격 및 야당과의 극한 대치는 사상 첫 국회 개원식 불참과 역대 최다인 25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나타났고, 비판 목소리를 내는 야당 의원이나 단체, 시민들은 ‘입틀막’을 당했다. 언론의 곤란한 질문에는 묵비권으로, 비판에는 소송으로 대응했다.

지난해 2월 1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 도중 경호원이 “연구개발(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졸업생 신민기씨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대전충남공동취재단
지난해 2월 1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 도중 경호원이 “연구개발(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졸업생 신민기씨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대전충남공동취재단

2023년 8・15 경축사에서 그는 야당과 진보 시민단체, 노동계를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반국가세력은 소통과 협치의 대상이 아니었다.

무속・음모론 신봉하며 계엄령 수시 거론

전 국민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정책 토론회에서 목도한 '王(왕)'자는 무속 논란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이 천공과 건진 등 무속과 연관돼 있을 거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무속인으로 활동했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까지 계엄 사태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사실로 굳어졌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들의 ‘총선 개표 조작설’ 같은 음모론을 믿는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실제 일부 주장은 그들의 논리와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손바닥 정중앙에 왕(王) 자가 그려진 채 국민의힘 대선 경선 3・4・5차 TV토론회에 나선 윤석열 후보. MBC·MBN·채널A 화면 캡처
손바닥 정중앙에 왕(王) 자가 그려진 채 국민의힘 대선 경선 3・4・5차 TV토론회에 나선 윤석열 후보. MBC·MBN·채널A 화면 캡처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 변론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공작에 의한 내란·탄핵 공작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한 언론은 윤 전 대통령이 ‘삼청동 안가에서 소주와 맥주 폭탄주를 20잔씩 마셨고, 수시로 계엄령을 언급했다’는 전직 관료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탄핵심판 변론 도중 2022년 4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비상대권’을 언급했다는 증언도 터져 나왔다.

철저히 감싸며 끊어내지 못한 아내 김건희

“부분적으로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전체적으로 허위 경력은 아니고...”

윤 전 대통령이 2021년 12월 아내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을 두고 한 말이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해 전국동시지방선거·국회의원 선거 개입,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사건의 당사자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 순방 중 프놈펜 소재 한 선천성 심장질환 소년의 집을 방문한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2022년 11월 캄보디아 순방 중 프놈펜 소재 한 선천성 심장질환 소년의 집을 방문한 김건희 전 여사. 대통령실 제공

또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채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등 10여 가지가 넘는 의혹과 위법 논란도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김 여사를 철저히 감싸기에 바빴다.

야권이 발의해 국회가 가결한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지난해에만 1월, 10월, 11월 세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는 최상목 권한대행이 지난해 12월 31일 네 번째 특검법을 국회로 되돌렸다.

윤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2021년 7월 불법 요양병원 설립 및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지만, 이듬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풀려났다. 그러나 2023년 11월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돼 형을 살았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 연합뉴스

그릇된 인식, ‘직무복귀’ 희망회로 돌려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회자되고 지난해 11월 구속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황금폰 녹음파일들이 공개되자,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 폭주’와 ‘연속된 탄핵소추’ 등을 내세워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전시나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아님에도 군대를 동원해 헌정질서를 파괴했던 것이다.

비상계엄은 국회가 해제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6시간 만에 철회됐지만, 정국이 요동치면서 그때부터 윤 전 대통령의 시간은 사실상 멈춰섰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지난해 12월 14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서 대통령 직무도 정지됐다.

윤 전 대통령은 이후 한동훈 전 대표 등의 ‘질서 있는 퇴진’ 제안을 거부한 채 수사에 불응하다가 지난 1월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현직 대통령 사상 처음 체포·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2년 6개월여 당내 무소불위 1호 당원이자 불통 대통령의 여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는 그릇된 인식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 연합뉴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작되면서 국민이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렸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추종자들에 의한 법원 난입과 판사 위협,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행해졌지만, 그는 2월 20일 변호사를 통해 “내가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며 희망회로를 돌리기도 했다.

계엄의 진짜 이유,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현재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즉각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관저에서 퇴거해야 하고, 경호·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예우는 박탈당한다. 현직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도 소멸된다.

12・3 비상계엄사태 이후 탄핵 피청구인과 형사 피고인이라는 이중 지위를 갖고 있던 윤 전 대통령에게는 이제 형사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헌법 제65조 제4항에 따라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칠 뿐, 민사상이나 형사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 궐위로 인한 대선은 사유 확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하므로, 차기 대선은 6월 3일 이전에 치러질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로 야당의 입법 폭주와 연속된 탄핵소추를 들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이유인지, 아니면 '김 여사 특검법'이나 ‘명태균 의혹’, 또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향후 내란죄 형사재판에서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자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탄핵 찬성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자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탄핵 찬성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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