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달라져도, 과거 인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왼쪽부터) 오병주 KB손해보험 경영관리부문장과 김기환 대한장애인축구협회 협회장, 최용준 LIG 대표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축구 발전기금'을 전달한 모습. KB손해보험 제공.
(왼쪽부터) 오병주 KB손해보험 경영관리부문장과 김기환 대한장애인축구협회 협회장, 최용준 LIG 대표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축구 발전기금'을 전달한 모습. KB손해보험 제공.

계열 분리와 인수합병(M&A)으로 금융사들의 소속과 이름은 달라졌지만, 과거의 브랜드 정체성과 협력 관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브랜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인연까지 끊기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이해관계가 여전히 작동하면서, 과거의 ‘소속감’이 지금도 협력 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 겉모습 바뀌었지만, 브랜드와 관계는 여전히 유효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KB손해보험과 LIG그룹은 대한장애인축구협회에 전달한 발전기금 1억8000만원을 기탁했다. KB손해보험은 2015년 LIG손해보험에서 분리돼 KB금융지주 계열로 편입됐지만, LIG라는 이름은 여전히 사회공헌 활동과 브랜드 이미지 차원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과거의 울타리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캠페인 및 사회적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등 ‘인연’을 끊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SK증권 역시 SK그룹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SK라는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단순히 이름만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SK그룹이 발행하는 채권의 주간사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브랜드 사용에 따른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룹과의 비즈니스 연결고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리된 기업이 과거의 브랜드를 어떻게 ‘프랜차이즈 자산’처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SK증권은 1월 SK하이닉스의 회사채 공동대표주관을 맡으며 3000억원어치의 3년물 회사채를 총액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2·4월 SK하이닉스 채권 발행 당시 SK증권이 각각 1900억원, 2000억원의 회사채 3년물을 인수한 것 대비 인수 금액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SK증권 여의도 사옥 전경. SK증권 제공.
                         SK증권 여의도 사옥 전경. SK증권 제공.

신한카드는 LG카드를 인수한 이후 17년이 지났지만, LG 계열사와의 협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부 LG그룹 계열사에서는 LG카드 시절 구축된 결제 인프라와 멤버십 혜택을 그대로 운영하거나 유사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신한카드는 LG카드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신한카드를 이끌고 있는 박창훈 대표 역시 LG카드 출신이다. 

이 같은 사례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닌, 실질적인 시장성과 이해관계에 기반한다. 브랜드는 교체할 수 있지만, 브랜드에 담긴 신뢰는 한순간에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M&A로 브랜드 전환이 단절적으로 이뤄질 경우, 내부 직원들의 정체성 혼란과 조직 충성도 하락까지 동반될 수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브랜드와 주주구조가 바뀌더라도, 실적을 좌우하는 건 결국 시장 내 파트너십”이라며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전략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동일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상품 구성만으로는 각 회사가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며 “가격 경쟁력을 통한 우위 확보보다 비가격 경쟁력을 통한 우위 선점이 더 큰 의미”라고 말했다. 


◆ 사명보다 중요한 건, 시장이 기억하는 ‘신뢰도’ 


한편 국내 금융사들이 급변하는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브랜드 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조직 내의 전사적인 가치경영과 브랜드 성과와 자산을 구축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을 구성할 여지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 대응에서의 민첩성과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시장 내 신뢰를 회복하며 브랜드를 재정립한 대표 사례다. 특히 타 대형 투자은행들이 파산하거나 국유화되는 가운데, 골드만삭스는 신속히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고 미국 재무부의 자본 투입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금융 당국과의 협업을 강화해 안정적인 이미지를 회복했다. 위기 직후 실시한 내부 통제 강화, 트레이딩 부문 개편 등도 시장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내며, “위기를 이겨낸 월가의 상징”이라는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게 됐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독일 협동조합금융그룹(DZ뱅크)은 위험 분산형 조직 구조와 지역은행 간의 긴밀한 연대, 그리고 보수적 자산 운용 철학으로 위기 국면에서도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해 왔다.

약 800개 지역 협동조합은행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된 이 시스템은 중앙은행 격인 DZ뱅크를 중심으로 금융, 보험, 자산관리 등 전 영역을 수직 계열화하며, 연대 기반의 리스크 관리 전략을 실현해왔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 협동조합 모델의 분산 리스크 구조와 지역기반 고객 충성도를 높이 평가하며 꾸준히 안정적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코오퍼레이티브뱅크(The Co-operative Bank)는 1992년부터 윤리정책(Ethical Policy)을 도입하고 ▲무기 제조업체 ▲고탄소 배출 기업 ▲아동 노동 착취 기업 등과의 거래를 거부하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 결과, 환경운동가와 사회적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으며, ‘윤리은행’이라는 독보적 시장 지위를 확보했다. 비록 2010년대 중반 재무적 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윤리적 투자 원칙을 지켜온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차별화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결국 금융사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와 명칭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시장 전체가 공유하는 관계의 자산”이라며 “기업들이 브랜드 전환 이후에도 과거의 파트너와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것은 단지 ‘감성적’인 접근이 아닌, 치밀한 전략적 연속성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브랜드나 주주구조보다 중요한 건 실적이고, 실적을 위해선 기존 파트너와의 협력은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라며 “이런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지만 업계에선 모두 인지하고 있는 일종의 연결고리”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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