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현대 정의선·한화 김동관, 반도체·자동차·조선 ‘투자 카드’ 들고 워싱턴行
미국의 상계관세(SCV) 적용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이 미국 워싱턴 DC에 집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각각 반도체, 자동차, 조선 분야 맞춤형 투자 카드를 들고 정부의 통상 외교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통상 장관급 인사를 총출동시킨 가운데, 기업 총수들이 ‘실질 카드’를 손에 쥐고 전면에 나서는 전례 없는 민관 공조 외교가 펼쳐지고 있다. 실리를 앞세운 전략적 투자와 함께 외교전의 판이 기업인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반도체 카드 들고 선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9일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삼성은 같은 날 테슬라와 165억달러(약 23조원) 규모 AI 칩 공급 계약 체결 사실을 공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 내 파운드리·AI 반도체 공급망에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부각하는 전략 카드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이재용 회장의 방문 목적이 한·미 통상 협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미국의 첨단 산업 전략과 직결된 핵심 요소”라고 평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텍사스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설을 확장 중이며,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요구해온 첨단 기술 공급망 현지화 요구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셈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전기차 현지화로 관세 정면 돌파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30일 워싱턴 DC로 출발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협상과 관련해 미국에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지아주 전기차 생산 공장, 배터리셀 공장, 루이지애나 저탄소 강철 합작법인 설립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의 방미 목적은 미국 측에 한국 자동차 업계의 협상 의지를 직접 전달하고, 현대차의 현지 기여도를 부각하기 위함이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는 일본 경쟁사보다 높은 25%의 수입 관세에 노출돼 있어,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이번 협상에서 실질적 관세 감면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목표로 꼽힌다.
◇ 김동관 한화 부회장, 조선 산업으로 ‘MASGA’ 맞대응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앞선 지난 28일 출발,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측과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김 부회장은 한화가 인수한 필리쉽야드 인프라 확대와 MRO(정비·유지·보수) 협력 제안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MASGA(Make America’s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에 한국이 민간 차원에서 호응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안보와 고용이라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한국이 직접 대응한 셈이다.
외신들도 이번 한국 기업인들의 방미를 집중 조명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미국의 전략 산업에 맞춤형 제안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고, 로이터는 “이번 협상은 EU·일본과 비견될 만한 수준의 패키지”라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 일부 의원들과 보수진영은 한국의 플랫폼 규제나 클라우드 인증 제도(CSAP)를 문제 삼고 있다. 미국 측은 이들 이슈를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하고 있어 협상 타결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프레임을 짜고, 기업은 실익을 밀고 들어가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은 관세와 기술협력, 플랫폼 규제 등 복합적인 현안을 민간이 앞장서 해결하려는 첫 시도로, 한·미 양국 간 새로운 협상 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8월 1일 발표될 관세 부과 여부가 이번 민관 공조의 성과를 판가름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시험대에서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 김동관 부회장이 단순한 ‘경제인’을 넘어선 국가 협상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