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정해구 위원장은 3월 13일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의 여론을 수렴, 개헌안을 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발의하는 정부 개헌안을 제시하겠다는 얘기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모든 대통령 후보들은 대선 공약에서 6월 13일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했다. 자유한국당이 공약을 번복, 6월 13일 개헌안 투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문 대통령은 개헌 공약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정하는 규약이고 헌법 제·개정권자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그러나 지난 아홉번의 개헌에서 사사오입 개헌이나 5.16쿠데타세력이 만든 5차 개헌처럼 절차상 인정할 수 없는 개헌이 있었을 뿐만아니라 헌법 제·개정권자인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일부 반영된 것이 4.19직후 3·4차 개헌과 6월 항쟁에 의한 87년 9차 개헌이다. 초기 개헌은 국회에서 의결했고 지금은 국민 투표로 확정하고 있으나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 국민 참여가 없으니 국민투표는 형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개헌안이 미흡하더라도 대통령이나 국회가 발의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국민투표로 부결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5년 단임제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개헌을 강조한다.개헌 필요성을 권력 구조의 개편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가 거론되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무엇보다 권력 분산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국무총리나 국회와 나누자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한 것은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권한이 일부에 집중되면 독재의 위험이 있기에 권한을 나누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방향이고 이것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논의 중인 권력 분산이 주권자인 국민과 관계없이 권력자들 사이의 나눠먹기라는 것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헌법에 규정된 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가 주권 행사의 주요 내용이다. 그 외에 주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

정치권이 논의 중인 권력 분산은

주권자인 국민과 관계없이 권력자들 사이의 나눠먹기식

국민이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가 개헌에 들어가야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의제가 갖는 민주주의적 성격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프랑스 정치학자인 버나드 마넹은 선거에 귀족주의적인 요소가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는 루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난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대의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절감했다.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개헌안에 꼭 담아야 하는 제도가 있다. 국민이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가 바로 그 것이다. 국민이 헌법 개정안과 법률안을 발의하고 국민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만 갖고 있는 법률 발의권과 국회만 갖고 있는 입법권을 국민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입법권을 국회만 독점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스위스의 제도를 참고하면 된다. 스위스에서는 18개월 안에 10만명이 서명하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고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법률안은 서명 인원과 기간이 더 적다. 민주국가는 국민이 주권자라고 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대통령, 국회의원, 법관 등 소수 권력자들이다. 모든 권력을 국민이 갖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권력자에게 집중된 권력을 국민에게 나누는 개헌이어야 한다. 분권은 좋다. 그러나 권력을 국민과 나누지 않고 권력자들끼리 나누는 분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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