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영역, 의료분야는 괜찮나?
의사, 한의사, 약사 다툼에 소외된 국민(의료소비자)
진정한 헬스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시장 아닌 ‘사람’
첩약건보 시범사업 협의체, 수익 아닌 국민 바라봐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추진 경과를 보고하고 성과를 중간점검하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하고 있다.(2017.08.09)(자료: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추진 경과를 보고하고 성과를 중간점검하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하고 있다.(2017.08.09)(자료: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스트레이트뉴스=서명준 칼럼니스트] 최근 우리 사회 공공영역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시장이다. 시장은 자신을 정언명령으로 내세우며 교육과 법률을 포함한 사회 모든 영역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시장의 힘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계약에서 나온다. 시장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슬로건은 “계약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넘어가지 않은 영역을 찾기 어려운 지금, 의료 분야는 어떨까.

신뢰인가 계약인가

몸이 아파 병・의원을 찾은 환자는 전문가인 의사를 신뢰한다. 의술에 무지하니 믿고 따르는 게 상책이다. 그런 환자와 의사의 관계, 형식적으로는 불평등하지만 ‘바람직한 불평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본인이 느끼건 느끼지 않건, 의사의 마음이야 어떻든,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갑 중의 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계가 변하고 있다. 불평등한 ‘신뢰관계’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계약관계’로 말이다. 얼핏 보면 계약관계가 더 깔끔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의료와 같은 공공의 영역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계약관계에서는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한 가격으로 환산된다. 계약관계로 마주한 환자와 의사의 현안은 신뢰가 아닌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다. 이때, 아프고 지쳐 ‘심리적 거지’ 상태에 놓인 환자는 ‘왕자의 자리’로 치환된다. 거지가 왕자 대접을 받으니, 여기까지는 괜찮아 보인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과를 중간 점검하기 위해 일산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병원 재활센터 내 수(水)치료실에서 치료 중인 뇌성편마비 환자 백승호 군(8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7.07.02)(자료: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과를 중간 점검하기 위해 일산병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병원 재활센터 내 수(水)치료실에서 치료 중인 뇌성편마비 환자 백승호 군(8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7.07.02)(자료: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

그러나 이후는 생각처럼 순탄치 않다. 상품 서비스의 특성 탓이다. 반드시 소비되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모든 종류의 상품 서비스는 왕자인 고객 또는 의뢰인이 체감할 서비스 만족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장주의의 특성상 이윤 없는 상품 서비스는 악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업자간 경쟁이 출현한다.

의료분야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각종 병・의원이 고객만족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 수익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병・의원에 환자는 평생 건강을 돌봐줘야 할 오랜 친구일까, 아니면 단기간에 만족도를 제공하는 수익의 대상일까? 후자라면 ‘사람의 가치’는 ‘수익의 가치’에 밀려나고 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후자가 더 많은 사회, 사람이 수익에 종속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환자들은 보다 질 좋은 의료시스템 속에서 성실하고 따뜻하게 진료에 임하는 의사들과 인간적으로 소통하며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바로 사람 중심 헬스커뮤니케이션이다. 선진사회로 갈수록 사람 중심 헬스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중요해진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질문을 던져 보면 사실 좀 당황스럽다. 그중 한약 첩약을 둘러싼 의료계와 한의계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첩약 급여화, 합의점 어디 있나

촛불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현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이른바 ‘문재인케어’를 추진 중이다. 한의계의 치료용 첩약도 대상이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약사회 등 유관기관 및 관련 단체들로 구성된 ‘한약 급여화 협의체’는 첩약건보 시범사업을 올해 안에 추진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출범한 한약급여화협의체가 올해 안에 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안팎의 걸림돌로 순탄치 않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지난 4월 출범한 한약급여화협의체가 올해 안에 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안팎의 걸림돌로 순탄치 않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자동차보험 추나요법에 이어 첩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 우리 국민이 한의계 분야에서 받는 혜택이 늘어난다. 그러나 적잖은 난관을 뚫어내야 한다.

가장 큰 난관은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둘러싼 한의계 내부의 의견 충돌이다.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가 연간 2,000억 원이 소요되는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실시하려 했지만, 한의계 내부 갈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는 22일 개최되는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첩약건보에 반대하는 회원들의 이해를 구한다는 계획이다.

협의체 출범 초기부터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출해 온 대한약사회가 ‘대한의사협회의 협의체 참여’를 주장하는 탓에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만족도라는 불분명한 기준을 근거로 자동차보험 추나요법을 급여화한 것도 불합리한데, 성분에 대한 에비던스(증거)를 갖기 어려운 첩약 급여화도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둘러싼 의협과 한의협의 다툼이 끝날 줄 모른다.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 설상가상, 첩약건보와 한약제제분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청와대 개입설까지 흘러나왔다. 한의계와 청와대 사이에 보험적용과 관련한 물밑거래가 있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개입설이 진실인지 아닌지, 첩약 급여화가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의료 외부자인 국민은 알기가 어렵다. 워낙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서 그렇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첩약 논쟁에서 국민이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의사와 한의사와 약사 역시, 우리 국민이 “환자를 상품이나 가격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 달라”는, “가치의 기준을 사람에 놓아 달라”는 소리 없는 주문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일상을 거지와 바꾼 왕자는 큰 고생을 겪다가 환궁해 거지로 살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따뜻한 성군이 된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줄거리다. 작품은 단순하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 대부분의 환자와 가족들은 심신이 고달픈 ‘심리적 거지’나 마찬가지다. 몰골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의사들, 한의사들, 약사들이 사람으로서 대해주기를 바란다. 첩약 논쟁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의사와 한의사, 약사들은 지금이라도 수익이나 사업성보다 진정한 친구의 문제를 다루듯 협의에 임해야 한다. 헬스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시장보다 국민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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