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본법은 양극화를 막고 빈곤을 극복하려는 법」
「중앙정부의 역할은 지방정부와 국민들에 대한 올바른 피드백」
「우리나라는 중앙집권과 엘리트 정치를 지양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무시는 중앙정부의 배임행위」

김태현

사회적경제기본법이란,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자본주의 기업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는 법이며, 양극화를 방지하고 빈곤을 극복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법이기도 하다.

이 법안은 정의당 박원석 의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따로따로 발의해 소위에 계류 중에 있으며,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원내지도부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법안의 운명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라는 이념 도식화로 함몰되고 있기 때문이다.

▲ 제1장과 제22장과 제71장의 무게

법안은 ‘사회적 경제’라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 및 그에 상응하는 법적 근거들을 다루고 있는데, 주요 쟁점으로는 공공기관이 사회적 기업의 물품을 5% 범위 내에서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공공조달 우선구매, 사회적 경제 실현을 위한 기금 설치, 조직 내에 새마을금고와 신협을 포함하는 조직 확장 등이다.

그런데 공공조달 우선구매 부분에서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여당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기초, 이 법안이 위헌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우선구매 혜택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까지 초래할 수 있는 불평등한 법안이라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맹우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이 법은 사회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이다”라며 법안 심사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수정 의견을 보면, 법안을 아예 죽여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 가지 주요 쟁점, 즉 공공조달 우선구매와 기금 설치, 그리고 새마을금고 및 신협의 조직 내 포함에 대해 모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당연히 이 법안이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며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야당은 세 가지 주요 쟁점이 빠진 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내 몸의 독재

민주주의 국가,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 국가에서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의 몸과 비교해서 풀어보자.

인도의 명상지도자들은 내 몸을 관장하는 세 가지 큰 틀에 대해 이야기한다. 뇌, 7개의 신경총(차크라, chakra), 그리고 세포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뇌가 내 몸의 모든 결정에 관여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팀이 이룩해 낸 뇌신경학적 성취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미 하버드대 뇌신경학 연구팀은 긴급한 상황 하에서 뇌보다 신경총이 더 빨리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연구팀은 피험자의 뇌와 손에 각각 반응속도 감지장치를 연결한 다음, 피험자가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험자를 향해 물건을 던져서 뇌와 손이 반응하는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뇌가 반응하는 속도는 0.4초대인데 비해, 손이 반응하는 속도는 0.3초대임을 밝혀냈다.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뇌가 하는 중요한 역할이 피드백feedback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측정해냈던 것이다.

▲ 인체에 분포되어 있는 일곱 곳의 신경총chakra

그런데 그들이 그 사실을 알아내기 전에 이미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인도의 수많은 명상가들과 탄트라 불교 승려들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뇌가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평소에는 건널 수 없다고 여겼던 협곡을 건너뛰고,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해내는 일들은 흔히 일어납니다. 만일 뇌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면, 그래서 협곡을 앞에 두고 건너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보는 우리의 온몸으로 들어옵니다. 뇌는 어떤 정보에 대해 한동안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전투 중에 허벅지에 총알이 박혔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어딘가 상처가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은 없는지요?”

“인체의 각 부분에 분포해 있는 세포는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신경총에 보고합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정보를 시시각각 받아내는 신경총에게 심각하지 않은 정보는 후순위로 배치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신경총과 뇌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신경총이 전달해오는 정보가 심각하지 않다면, 뇌가 그 정보를 자동적으로 후순위로 배치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뇌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뇌가 가진 가장 큰 기능은 명령 기능입니다. 하지만 신경총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나중에 피드백해주는 기능 또한 명령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명령을 뇌에게만 일임함으로써 신경총이 해야 할 역할을 빼앗아 왔습니다. 그 결과, 손가락 중간쯤에 있는 세포 따위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부속물쯤으로 여기게 되었지요. 뇌가 모든 것을 명령하는 방식, 그런 방식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독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대해 독재를 해왔던 거지요.”

중앙정부의 역할

민주주의를 표방해온 우리나라에는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들이 존재한다. 중앙정부는 뇌에 비유할 수 있고, 각 지방정부는 신경총에, 시민들은 세포에 비유할 수 있다.

▲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보 전달 경로

세포인 시민들이 신경총인 지방정부에 정보를 보내면 지방정부는 그 정보의 유용성에 대해 결정을 내린다. 정보가 유용할 경우, 지방정부는 뇌인 중앙정부에 전달하고, 중앙정부는 다시 그 정보의 유용성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린 다음, 지방정부에 피드백을 해준다. 그 피드백은 당연히 시민들에게도 전달된다. 이게 풀뿌리 민주주의다.

필자 역시 이런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몸의 독재자 역할을 해왔다. 몸 구석구석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세포들은커녕 신경총이 어느 구석에 있는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것인지 완전히 잊어버릴 만큼 말이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의로 가늠해보자.

풀뿌리 민주주의

국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국민 개개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 기존의 중앙집권적이고 엘리트 위주의 정치 행위를 지양하고...... 특히 지방자치와 분권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민주정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없다. 지금으로서는 위 정의에 부합하는 정책적 노력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더 많이 나온 ‘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국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엘리트 정치인들의 중앙집권적 결정인가?

마찬가지로, 사회적경제기본법 법안의 세 가지 주요 쟁점, 즉 공공조달 우선구매, 기금 설치, 새마을금고 및 신협의 조직 내 포함 등에 대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정부(기획재정부)의 자세는, 지방자치와 분권을 강조해 민주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방적인 명령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적절하고 다양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피드백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아래쪽에서 보내오는 정보 따위는 무시한 채 독재를 하고자 하는 것인가?

교과서 국정화와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중앙정부의 역할은 피드백이다. 그리고 적확한 피드백을 하려면 명령부터 내릴 것이 아니라, 정보의 유용성을 신중히 판단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향후 오랫동안 국민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책들에 대해 세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신경총들이 그 의견들을 받아낼 수 있는 수렴 구조, 그리고 서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룰 수 있는 논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일 말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가야 할 길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조직이 기업 활동이나 경제 활동을 위한 곳이기보다는 구매나 지원을 받기 위한 곳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모럴해저드를 야기할 수도 있다.”(새누리당 박명재 의원)

“법으로 (사회적 기업에) 우선구매 혜택을 주고, 부지와 인건비를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자는데, 이렇게 양탄자를 깔아준다면 누가 정상적으로 땀 흘리며 기업을 하겠는가? ...... 법 자체가 사회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새누리당 박맹우 의원)

“수익 창출이 기본 목적이 아닌 기업이 국가 예산을 받아서 성장하는 것을 두고 고용창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비약으로 들린다. ...... 사회적기업의 필요성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고용과 성장에 기여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 ‘자본적’ 경제기본법의 실상

우리는 김대중 정부 때 이미 심각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경험한 적이 있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들이 부지와 인건비 등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열심히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을 허탈지경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 법은 ‘자본적’ 경제기본법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기본법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성장과 수익 창출에 쏠려 있는 사고의 추를 양극화와 빈곤 해소 등 사회 전반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도덕적 해이는 ‘자본적’ 경제기본법 하에서도 이미 일어났고, 정부가 부지와 인건비 등의 지원을 특정 부문 기업들에 지속적으로 제공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 범위를 사회 전반을 위해 조금 더 확대하자는 것이 무에 그리 ‘사회주의 도입’까지 들고 나설 일인가!

한 가지 더, ‘사회적’이라는 용어에 그토록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가, 현재 우리나라의 기본 경제가 헌법 위배를 비롯한 체제 위협까지 염려할 만큼 아주 잘 민주화되어 있기 때문인가? 만일 그렇다면 지난 대선전의 화두가 ‘경제민주화’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세 가지 지원정책이 빠진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쭉정이에 속 빈 강정이고 팥 없는 단팥빵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여당 의원들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에 매몰된 상태로 정부의 지침을 무조건 추종하거나 법안의 검토 자체를 반대하는 ‘정부바라기’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그래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만 양극화와 가난한 국민들, 즉 사회적 가치의 입장에 서야 한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5% 범위의 우선구매’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된다면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 가야 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기금 설치’에 대해서도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기금을 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일단 세포들과 신경총들이 보내는 정보를 충분히, 그리고 다양하게 받아낼 수 있는 놀이터부터 만들어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작게 시행해보고 나중에라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법적인 근거만 만들어도 100점이라는 말이다.

내년에 있을 총선일정을 상정할 때,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운명은 국회쓰레기장이다. 만일 여야 원내지도부가 처리하기로 이미 합의까지 마친 이 법안이 죽고, 여당이 추진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무리수로 통과된다면, 그런 상황이야말로 신경총들과 세포들을 무시하는 독재 중앙정부의 배임행위로 간주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런 일, 정말이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밖에...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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