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와 관련해,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이 치밀하지 못해 우리나라의 전통적 제조업 분야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손상되지 않을지 걱정이 크다.
CBAM과 관련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살펴보자.
CBAM이란?
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을 목표로 배출권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 강화 및 CBAM 제도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Fit for 55'를 발표했다.
CBAM이란 탄소배출량 감축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로 탄소배출이 이전하는 탄소유출(Carbon Leakage)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가 도입한 무역관세의 일종으로, 2025년의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전격 시행될 예정이다.
CBAM에서 요구하는 규제 이행을 소홀히 할 경우 EU로의 수출은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CBAM이 요구하는 규제
철강을 비롯해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을 EU로 수출하는 역외국가의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2025년 전환기간 부터 제품 제조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에 대한 보고서를 분기별로 제출해야 한다.
2026년 1월 1일부터는 1년에 한번 CBAM 보고서와 함께 EU에서 인정한 공인기관을 통해 CBAM 보고서에 대한 제3자 검증보고서를 추가로 제출해야 하고, 무상할당량을 제외한 탄소배출량에 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이행하려면 개별기업들은 내부적으로 MRV 시스템( Monitoring-Reporting-Verification)을 구축하고 운영하여야 한다.
MRV 시스템이란 제품 제조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스템, 그리고, 해당 보고서의 국제 표준 준수 여부를 검토하고 보고서에 포함된 데이터의 적합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제3자 검증 시스템을 의미한다.
MRV 시스템 적용 대상은 직접 생산활동과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기업이 구매하거나 취득하여 사용한 전기, 증기, 냉∙난방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Scope 2), 그리고, 원재료 추출, 부품 생산 등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Scope 3)까지 광범위하다.
MRV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제품 공정 과정의 실제 활동 데이터(activity data)를 사용하고 있는가 여부이다. CBAM의 전환기간 규정을 살펴보면 보고의 누락, 불완전 또는 부정확한 보고 시 벌금이 부과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CBAM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26년부터는 보고서에 대한 제3자 검증까지 받아야 하는데, 부정확한 데이터를 쓸 경우 검증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EU 배터리법은 제품탄소발자국 산정에 쓰이는 데이터의 정확도를 1~5등급으로 구분하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4등급이나 5등급을 받은 데이터를 사용한 기업의 경우 아예 시장에서 퇴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째, 공급망의 데이터 취득 및 모니터링 체계 여부이다. 제품 수출기업이 제품 생산의 전 과정에 걸쳐서 탄소배출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Scope 3에 해당하는 협력사들의 데이터 정확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원가나 제조 레시피와 같은 민감 정보를 제조사에 넘겨야 한다면, 협력사가 제대로 된 데이터를 제조사와 공유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민감 정보를 공유할 필요 없이, 탄소배출 데이터만 계산하여 공유할 수 있는지 여부가 스콥3 협력사의 정확한 데이터 확보를 좌우하는 키가 될 것이다.
셋째, 규제시장에서 요구하는 국제 표준을 잘 준수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이를 가장 쉽게 판단하는 방법은 탄소발자국 검증에 대한 ISO 14067 인증을 취득했는지를 보면 된다. 애초에 국제 표준에 따라 보고서가 잘 작성돼야 시간과 비용 소모가 큰 제3자 검증 과정을 간단히 할 수 있을 것이다.
CBAM 규제의 파도를 슬기롭게 넘어서려면
EU지역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전부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있다.
MRV체계를 잘 갖추고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소배출량 절감 계획을 잘 세워 실천한다면,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가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규제의 파도를 넘어서려면 민관의 협력 체제 구축이 중요할 것이다.
2021년 8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에 규정된 기후대응기금을 재원으로 국책연구소에 민관협력기구를 만들어 범정부적으로 강력한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