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지역별 비례 선발제 제안
사회구조 개선 촉매 역할 기대
“한국은행이 무슨 교육부인가.”
최근 한국은행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하 SKY)의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시하면서 등장한 핀잔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 서울 출신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은 각 32%, 12%를 차지했다. 이 두 집단의 전체 일반고 졸업생 내 비중(16%·4%)을 크게 웃도는 성적이다. 한국은행은 입시 불평등이 서울 집값·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했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 기준과 전형 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즉 현재보다 지역선발전형 정원을 늘려야 부동산 이슈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통화정책 기관인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대학교 입시제도 정책에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 미국에서도 중앙은행이 경제 불평등과 교육 수준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2020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1956년부터 2016년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육과 부의 격차를 분석한 보고서(The College Wealth Divide: Education and Inequality in America, 1956-2016)를 발표했다.
1980년대 이후로 미국의 대학 졸업자 가구의 부는 평균적으로 3배 증가한 반면, 비대학 졸업자 가구의 부는 실질적으로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학 학위를 얻기 더 쉽다는 점을 지적하며, 교육과 부의 격차가 세대 간에 걸쳐 누적되는 현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세인트루이스 연은도 보고서만 발표했을 뿐, 직접적으로 정책 개선을 제안하진 않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부정책이나 법 제도를 손대지 않더라도 SKY 교수님들이 결단만 해주시면 된다”며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통화당국 수장이 교육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물론 중앙은행의 주된 임무는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도록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대학교 입시제도는 교육당국 관할이다. 입시학원가에선 “현재까지의 입시변화 사례를 비추어 봤을 때 지역별 비례 선발제는 또 다른 입시전형으로 수험생과 부모에게 혼선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수장을 맡기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지낸 인물이다. 누구보다 대학을 잘 아는 그가 비판의 목소리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오히려 그가 총대를 메고 용기 있게 입시정책 개선안을 제안한 건 ‘한국은행법 제1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은법 제1조에는 한국은행의 설립에 대해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종합하면 지역별 입시 불평등 이슈가 있기 때문에 강남권 부동산 가치 편향 현상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중앙은행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8월 금통위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도 결국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자본이 집중된 탓이다. 이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를 할 때 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부동산 가치가 치솟는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면 거래가 썰렁하다. 나아가 현재 국내 228개 기초 지자체 중 113개 지역이 소멸위험 지역에 놓였다.
또한 국내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 증가와 초저출산 가속화로 오는 2050년, 고령층 인구는 전체 비중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오는 2040년 한국의 생산인구가 2020년과 비교해 24% 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놓고 봤을 때 중앙은행이 강남권 부동산 불평등 심각성을 지적하고 사회분야 중 하나인 교육 입시정책 제도 개선을 제안한 건 충분히 의미가 있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다양한 경제적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제안이 실제로 구현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고 교육과 경제 정책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여지도 있다.
앞으로도 한국은행의 역할이 단순히 통화정책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목소리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