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에어로 회장 겸임.. 김동관 부회장과 방산 '정조준'
태양광 등 부진사업 돌파, 방산 역량 집결.. 관건은 '트럼프 변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그룹의 방산 사업을 이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회장을 겸임하기로 하면서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섰다. 미국 트럼프 정부 수혜 산업으로 예상되는 방산 분야에 김 회장이 직접 나선 이유에 관심이 모인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 방산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를 이끄는 중간지주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14일 분기보고서를 통해 김 회장을 자사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한화솔루션, 한화시스템, 한화비전에 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직까지 겸임하게 됐다.
그간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에게 방산 사업을 맡겨 온 김 회장이 직접 나서자, 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인연이 깊은 재계 인사로 꼽히는 김 회장이 직접 미국 방산 분야로의 영역 확대에 힘을 싣기 위해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회장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받는 등 트럼프 측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당시 트럼프 1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위원으로 지낸 헤리티지 재단 창립자 에드윈 퓰너가 초청을 주선했는데, 김 회장은 특히 에드윈 퓰너와 40년 가까이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방산은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의 수혜를 입을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무력해진 미국 군대 재건'을 핵심 국방정책으로 내걸면서 미군의 현대화, 방산 투자 확대 등 정책을 추진하며 방산 분야를 강화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방위 산업 확대로 이어져 무기, 시스템 등 대미 방산 수출 기회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당선 직후인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세계적인 한국의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 아니라 MRO(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한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 한국 방산에 대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향후 미국과 방산 분야 추가 계약 기대감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김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회장을 겸임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전날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사업장도 방문해 현장경영 행보에 나서는 등 방산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보은사업장에서 직원들을 격려하며 "인공지능(AI)과 무인화 기술이 핵심이 되는 미래 방위사업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미래 전장 환경에 맞춘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며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통한 방산 수출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의지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의 트럼프 당선인과 인맥 활용 방향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김 회장이 구축하고 있는 탄탄한 대미 네트워크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부회장에게 맡겼던 방산 사업에 김 회장이 직접 나서면서 그룹 내 다른 사업의 부진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태양광, 화학 등 그룹의 주요 사업이 최근 다소 부진한 데 따라 김 회장이 방산 산업을 돌파구로 보고 '올인(All-in)'하는 모습이라는 진단이다.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 전망은 밝은 편이다. 먼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자동화 성능 개량 등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K9은 미국 육군이 추진하는 자주포 현대화 사업의 후보군 중 하나로 선정돼 이달 중 시험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화시스템은 천궁-II 다기능레이다(MFR) 수출, 폴란드 K2 사격통제시스템 수출 등 시스템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의 수주 확대도 노리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주항공 분야에서 역량이 두드러질 전망이다. 한화시스템이 최근 '우주 인터넷'으로 불리는 저궤도 위성용 위성 간 레이저 통신(ISL) 기술 확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테슬라 CEO(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와 각별한 사이를 보이면서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따라 우주항공 분야가 주목받고 있는데, 국내 최초로 ISL 장비 개발과 성능시험을 성공한 기업으로서 한화시스템의 미국 진출 가능성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7함대에 배속된 군수지원함과 급유함의 MRO 사업을 수주하면서 미국 현지 시장을 개척한 데 따라 향후 추가 계약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안벽과 육전 등 MRO 수행 역량 향상을 위한 설비를 확대하는 중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베이스 공유체계 구축과 빅데이터 기반의 자재수요 예측 및 정비지원 계획도 수립하는 등 MRO 수주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함정 MRO, 미사일, 탄약, 자주포 등에서 미국보다 경쟁력이 있는 만큼 미국 시장 진출을 강화할 수 있다"며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춰 미국과 협력할 분야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다만 미국 방산 산업 진출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한화 방산 사업의 관건은 트럼프 당선인의 '종전' 기조 유지 여부와 중동 수출 금지 해제 여부 등이 꼽힌다. 김 회장이 직접 나서는 이유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나타날 변수도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한화그룹 방산 계열이 중동에 무기와 시스템을 수출하며 실적을 크게 올렸다. 트럼프 당선인이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중동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완화해 미국 방산 수출이 늘어나게 되면 점유를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국내 업계가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을 방위산업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자국 우선주의는 미국 조달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저하시켜 우리 기업의 수출 어려움을 촉발할 수 있다"며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가 완화돼 미국의 방산 수출이 늘어나면 향후 중동 시장 내 경쟁 심화로 국내 업계 수출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종전 시 방산 수요가 감소할 우려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러-우 전쟁의 종전을 주장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단 이에 대해 한화 측은 리스크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전쟁과 관계없이 신규 수요와 교체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쟁 중 무기 소진이 많이 일어나는 만큼 종전 이후 확보 수요가 많다"며 "한국전쟁 이후도 그랬고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이 팔걷고 나서는 등 한화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대비와 글로벌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예측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향후 한화가 방산 산업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