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 빈도·강도 증가 추세...물가상승 압력 가중
한은 "기후변화 무대응 시 2100년 GDP 21% 줄어"
2000년대 이후 폭염 등 극한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학계에선 “기후리스크가 물가에 유의미한 상방압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물가상승에 대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12일 한국은행과 한국경제발전학회는 ‘기후변화의 경제적 영향 및 대응, 그리고 중앙은행의 역할’을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박기영 연세대학교 교수는 폭염과 한파, 가뭄, 폭우 등 극한기후의 빈도와 강도를 수치화한 ‘극한기후 지수(Extreme Climate Index)’를 개발해, 기후 리스크가 물가와 산업생산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박 교수는 “기후 리스크는 물가에 유의미한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며 “2000년대 이후 폭염을 중심으로 극한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면서 농축수산물 가격 변동성과 에너지 가격 충격 등 공급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을 가중시킨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기후 리스크가 산업생산에 미친 영향은 뚜렷하지 않았다”며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실내 근무가 주를 이루고, 냉난방 시설 개선, 작업시간 조정, 에너지 효율 기술 도입 등 산업계의 유연한 대응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 “앞으로 극한기후 현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후 리스크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폭염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산업별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희율 경기대학교 교수는 “기후변화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고, 자연재해와 저탄소 경제 전환 과정에서 금융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밝혔다.
그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영에 기후변화 영향을 반영해야 하며, 거시경제 전망 모형 확장, 기후리스크 평가 체계 보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 확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 기후대응채권 매입 등 한국은행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라고 덧붙였다.
기업을 상대로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제언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동진 상명대학교 교수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탄소세 부과 등으로 기업의 자발적 탄소 감축을 유도해야 하지만, 이는 직접적으로 탄소세 납부비용, 간접적으로 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비용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1차금속, 석탄·석유, 화학제품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해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연평균 0.4%포인트씩 확대될 전망이며,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경우 상승률은 1.0%포인트까지 늘어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탄소중립 과정에서 산업별 비용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지원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가속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에선 보다 적극적인 기후테크 연구개발(R&D)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이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요구 속에서 기후테크는 탄소중립 전환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이라며, “한국은 기후테크 특허 출원 건수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지만, 특정 기업과 기술에 편중되고 질적 성과는 미흡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지원과 탄소가격 정책이 혁신을 충분히 유도하지 못하고, 자금 조달 여건이 취약한 점이 문제”라며 “R&D 지원 강화와 탄소가격제 실효성 제고, 혁신자금 공급 확대를 통해 기후테크 선두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상범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은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경제성장, 물가안정, 금융안정 등 국내 경제와 금융시스템 전반에 걸친 중대한 도전 과제로 자리 잡았다”라며 “이로 인해 산업 전반의 생산 비용 상승과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회장은 “기후 변화가 한국은행의 정책 수행에도 큰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실정”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우수한 연구 능력과 데이터, 통계 작성 역량을 통해 기후 리스크 관리와 지속 가능한 금융 생태계 구축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화진 대통령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올해 여름의 기록적 폭염과 국지성 폭우, 가을의 초풍 낙엽, 겨울의 117년 만의 11월 폭설 등으로 국민이 기후 위기를 체감했다”며, “농업 생산성 감소, 인프라 손상, 보건 비용 증가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2100년까지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현재 대비 21% 감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공동위원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연합(EU)의 청정 산업 계획, 일본의 녹색전환 추진 전략 등 규제와 대규모 투자를 결합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 역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와 같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향후 5년간 90조의 예산과 2030년까지 450조원 이상의 녹색 금융 투자를 통해 저탄소 산업 전환과 신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후금융 분야가 장기 투자와 높은 리스크로 민간 금융기관 참여가 어려운 현실”이라며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구조에서는 기후 변화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앙은행이 기후 리스크를 통화정책에 반영해야 하며, 기후 변화가 실물 경제를 넘어 금융 리스크로 전이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용성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한국과 국제사회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한국은행 역시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위원은 “2021년에는 기후 변화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올해는 지속 가능 성장실로 조직을 확대했다”며 “올해 11월 기후 변화 리스크의 실물 경제 영향을 다룬 이슈 노트를 발간하고, 금융감독원과 협력해 15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