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존비즈온과 손잡고 지방은행 혁신 모델 추진

신한지주 자회사 제주은행 본점 전경. 신한금융 제공.

신한금융그룹이 추진을 보류한 제4인터넷전문은행 대신, 계열 지방은행인 제주은행을 기업금융 특화은행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꺼내 들었다. 당초 인터넷은행을 통해 추진하려 했던 전사적자원관리(ERP) 기반 기업금융 혁신 모델을 제주은행에 이식해 실행하겠다는 구상이다.


◆ 더존비즈온, 제4인뱅 철회…전략 수정


18일 제주은행은 국내 은행 최초로 ERP뱅킹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ERP 분야 1위 기업 더존비즈온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결의를 임시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이번 증자를 통해 더존비즈온은 제주은행 지분 14.99%를 확보하며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게 됐다.

ERP뱅킹이란 전통적인 은행 서비스에 기업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결합해, 실시간·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의 일종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서류 제출 없이도 기업의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평가와 맞춤형 금융 제안을 할 수 있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최적화된 금융접근성을 제공하게 된다.

신한은행은 당초 제4인터넷은행을 통해 이 같은 ERP 연계 금융을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제4인뱅 인가 과정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인 리스크과 신규 법인 설립에 따른 비용 부담 등을 감안해 제주은행을 ‘ERP 기반 기업금융 플랫폼’으로 전환해, 내실 있는 디지털 금융 혁신을 추구하겠다는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해석된다.


◆ ERP뱅킹 시동 건 제주은행


제주은행은 ERP뱅킹 사업 가속화를 통해 2027년까지 중소기업·소상공인 특화은행으로 자리잡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더존비즈온이 보유한 약 300만 ERP 회원사 데이터를 활용한 기업신용평가 체계를 도입하고,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지방 중저신용 기업들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다.

제주은행 관계자는 “ERP의 방대한 기업정보를 활용해 비수도권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포용금융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을 통해 창출된 수익은 지역금융 활성화에 재투자해, 지역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존비즈온은 지난달 금융위원회에 제4인뱅 예비인가 신청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내부적으로는 ERP 고객 기반과 데이터 경쟁력을 활용한 ‘기업금융 특화 인터넷은행’ 구상을 상당 부분 준비해왔지만, 인가 심사 과정의 불확실성과 인터넷은행으로서의 수익성 확보에 대한 고민이 맞물리면서 전략 철회를 선택했다.

컨소시엄의 핵심 파트너였던 신한은행도 조용히 발을 뺐다. 당초 신한금융은 자회사 제주은행을 플랫폼으로 삼아 ERP 연계 금융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인터넷은행이라는 별도 법인 설립보다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 ‘내실 전략’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규제 환경과 비용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주은행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접근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양사는 향후 공동 전담조직을 구성해 내년 초 ERP뱅킹 상품 및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결정은 최근 지방은행 위기와 제주은행의 실적 부진 속에서 신한금융이 마련한 돌파구로 보여진다. 

신한금융은 지난 2002년 제주은행을 인수한 뒤 현재 지분 75%를 보유 중이다. 2021년에도 제주은행의 인터넷전문은행 전환 가능성이 금융권에서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제주은행의 라이선스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제주은행을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논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블록체인 기업 두나무를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 영업이 원칙이기 때문에, 제주은행이 보유한 30개 이상의 오프라인 지점을 폐쇄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지역 기반 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제주도민과 사외이사들의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제주은행이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디지털 금융 역량을 강화하려는 계획으로 보여진다”며, "최근 진옥동 회장이 외형 확대보다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행보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더존비즈온이 제주은행 2대 주주가 된 건 제4인뱅 이슈와 관련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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