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에 자사주 환원책 풀었지만 기업가치는 역행
삼성그룹 99조, LG그룹 20.1% 시총 감소
거버넌스 뺀 일본 겉핥기식 밸류업, 효과 없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 밸류업 프로그램도 1년이 지났으나, 기업가치 제고 성과는 오히려 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4대 그룹 시가총액만 보면, 밸류업 시행 후 1년째 합산 134조원이 감소했다. 일본을 벤치마킹한 밸류업 취지는 단순히 증시 부양을 넘어 기업 본질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지속가능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목적에서 차기 정부의 중대 과제로 지목된다.

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은 2024년 5월27일 시행됐다. 그해 5월30일 기준 시초가와 이날 시초가 기준 4대 그룹 시총을 비교했다. 이 기간 4대 그룹 시총은 합산 1161조원에서 1027조원으로 134조원이 감소했다. 감소율은 11.5%다.

그룹 시총 1위 삼성이 636조원에서 537조원으로 99조원 줄었다. 또 3위 LG그룹이 159조원에서 127조원으로 32조원 역성장했다. 4위 현대차그룹은 149조원에서 138조원으로 11조원 축소됐다. 2위 SK그룹만 217조원에서 225조원으로 8조원 증가했다.

각 그룹 주력 계열 상장사를 보면, 삼성전자는 밸류업 보고서를 내지 않았는데도 밸류업 지수엔 포함되는 등 당국의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 다만 삼성전자는 국내 상장사 중 가장 규모가 큰 자사주 10조원 매입(일부 소각)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럼에도 주가는 최근 1년새 8만원대에서 4만원대로 추락했다가 최근 5만원대를 간신히 회복했다. 해당 기간 자본시장 이슈로는, 지배주주 일가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가가 오를 때 주식을 파는 오버행 우려가 제기됐다.

현대차는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을 밸류업 보고서에 담아 지수에도 포함됐지만 주가는 부진했다. 지난해(매출 175.2조원)에 이어 올 1분기(44.4조원)에도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지만 주가 폭락을 면치 못했다. 전기차 성장둔화, 트럼프발 관세 이슈, 인플레이션촉진법(IRA) 보조금 감축 등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자본시장 이슈로는 인도 법인을 상장했던 중복상장이 꼽힌다.

LG는 LG전자가 밸류업 보고서를 고쳐 두 번 냈지만 밸류업 지수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룹 내 지수 포함 상장사는 LG이노텍뿐이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가 폭락한 것을 포함해 LG그룹 시총은 4대 그룹 중 가장 높은 20.1%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LG전자가 작년 말 고쳐 낸 밸류업 보고서엔 인도 상장 계획이 포함됐는데 주주가치 제고 목적과 달리 시장에선 잡음이 있다.

SK그룹만 시총이 3.7% 증가해 생성형 인공지능(AI) 수요 폭발에 힘입은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수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보면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 대부분 청산가치가 시총보다 높고(1 하회), SK하이닉스만 1을 상회한다. HBM 특수를 제외하면 밸류업 프로그램은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는 평가다.

출처=경실련
출처=경실련

한국이 벤치마킹한 일본의 밸류업은 지배구조(거버넌스) 개혁을 병행했고, 한국처럼 재벌 집단 경제력 집중이 심했던 이스라엘도 소수주주동의제(MOM)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선을 수행한 반면, 한국은 주주환원에 함몰된 겉핥기식 밸류업으로 증시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온다. 주주환원 확대는 기업 본질가치 성장을 위한 투자 여력을 감소시켜, 단순히 환원만으론 PBR 상향에 도움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 관련, 민주당(이재명)과 국민의힘(김문수) 대선 후보 공약은 밸류업 측면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양당 후보 모두 신성장동력으로 AI를 강조하지만 기업집단 지배구조에 대해선 규제와 규제완화로 배치된다. 국민의힘은 현 정부 규제완화 노선을 이어받는 기조이며, 민주당은 상법 개정(이사충실의무 강화)과 디스커버리(증거 개시 제도) 입법 등 자본시장 제도를 부분적으로 고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주요 후보들이 제시한 경제 공약을 들여다보면, 정작 가장 구조적인 문제인 불평등 심화와 재벌 중심 경제 체제에 대한 개혁적 접근이 거의 부재하다”며 “고질적인 저성장, 양극화, 청년실업, 지역소멸, 고령화 등 복합적인 문제 속에서도 후보들은 반복된 정책 구호나 기술 중심 비전에만 의존하며 경제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책임 있는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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