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한덕수표 제안, ‘사적 욕심 의혹’
파국 맞은 87년체제, “개헌 외 답 없어”
대부분의 개헌 제안...정략 계산에 무산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했다. 전두환 군부독재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 최대 수혜자인 ‘불통’ 윤석열의 시간이 가고 새날이 밝은 지금, 스트레이트뉴스는 제6공화국이 어떻게 성립됐으며 어떤 한계 때문에 지난 38년 동안 ‘K-정치 실종사건’이 발생했는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방법과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제7공화국 개헌 특집’을 마련했다. 본문 내 전직 대통령 호칭은 생략한다. <편집자의 말>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포스트 윤석열, 개헌 추진 경과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파면함으로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지난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MBC 화면 갈무리
지난 4월 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 MBC 화면 갈무리

이틀 후, 5선 의원이자 입법부 수장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조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개헌 논의가 모든 사안을 빨아들이고, 중반 이후에는 레임덕이 찾아와 추진 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어렵다는 게 제안의 변이었다.

1호 당원 대통령 파면으로 지리멸렬이던 국민의힘에는 ‘넝쿨째 굴러든’ 호재였지만, 야권은 개헌 논의가 내란 세력 부활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정계 일각에선 우 의장의 개헌 제안에 사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4월 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은 내란 극복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매우 커 실제 결과는 못 내면서 논쟁만 격화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우원식 국회의장. JTBC 화면 갈무리
지난 4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우원식 국회의장. JTBC 화면 갈무리

각계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우 의장은 이튿날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 국민투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한다”며 사흘 만에 제안을 거둬들였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지만, 개헌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현재 내란 동조 혐의로 출국금지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쏘시개를 자임하고 나섰던 것.

5월 2일, 한 전 대행은 출마 기자회견에서 “임기 첫날 대통령 직속 개헌지원기구를 설치해 2년차에 개헌을 완료하고 3년차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 총선과 대선을 실시한 후 곧바로 직을 내려놓겠다”며 첫 번째 공약으로 개헌을 내걸었다.

하지만 한 전 대행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개헌은 노회한 일개 관료가 부린 사적 욕망의 들러리로 전락했고, 한 전 대행의 화려했던 관료 생활은 ‘당비 만 원 인생’, ‘새치기 무임승차 미수범’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5월 6일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와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은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개헌연대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김문수-한덕수 단일화가 실패하자마자 다른 사람을 돕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김문수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반명 전사’를 자처했다. MBC 화면 갈무리
지난 5월 6일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와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은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개헌연대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김문수-한덕수 단일화가 실패하자마자 다른 사람을 돕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김문수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반명 전사’를 자처했다. MBC 화면 갈무리

파국 맞은 87년 체제 “개헌 외 답 없어”


“오늘의 한국 정치는 정당도 없고 의회도 없다. 정당 정치는 브레이크 다운했다. 대통령 중심 정치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 같아 두렵다. (중략) 3김 정치 이후 퇴행을 거듭해 온 87년 체제는 파국적 상황에 놓였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2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5 새헌법안’ 출판기념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미 “우리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제6공화국 내내 정권 유지·탈환에만 몰두하느라 K-정치는 속속들이 퇴행했다. 승자독식구조와 대통령 중심 권력 시스템은 끝없는 정치 갈등의 진앙이었다. 예전 같으면 ‘1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과 동급인 국무총리는 권한도 책임도 없는 들러리,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 불과했다.

‘국민 1호 머슴’ 윤석열과 여당의 거듭된 실정 탓에 전례 없는 규모의 여소야대 정국이 구성됐음에도, 대통령은 입법부와 야당 무시로 일관했고, 거대 야권의 30차례 탄핵 시도와 입법 독주가 여의도 정가의 일상이 됐다. 25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서며 불통 끝판왕을 시전하던 윤석열은 급기야 계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국회 본회의장 모습.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국회 본회의장 모습.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민만 바라봐야 할 중립적 기관들은 대통령 권력 사유화의 도구를 자처했고, 영장청구권을 독점한 검찰의 선택적 기소에 국민 분노는 상한가를 때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제대로 된 분권도 아득하기만 하다. 지방정부의 권한과 자율성은 언제나 상향식(bottom up) 아닌 하향식(top down)에 굴복했고, 그 결과 찾아온 것은 지방궤멸 위기다.

국민의 주권과 정치 참여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수십 년째 국회의사당 상공만 배회하고 있다. 그런 탓에 주권자 국민은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일부 주), 미국(일부 주) 등이 운용 중인 국민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1954년 제2차 개정헌법 이후 1972년 유신헌법(제7차 개정헌법)까지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외에 ‘50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모이면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었다. 독재자 박정희가 빼앗아 간 국민입법권은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선출직 및 임명직 정치인들의 거듭되는 부정부패와 거짓과 무도한 정치 폭력으로 민주주의가 신음해도 쫓아낼 재간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일상과 생계를 뒤로 하고 광장으로 나가 외치는 것뿐이다. 우리네 광장민주주의를 세계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신표준 중 하나로 여길 수 있지만, 실상 그 배경에 도사린 것은 ‘국민소환권 부재’다. 벌써 두 번째다. 두 번으로 충분하다.

정계, 학계, 언론계, 재야 할 것 없이 이구동성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방안은 제7공화국 개헌 외 없다고 말이다.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제7공화국 개헌


지난 겨울, 우리 국민은 123일 동안 광장에서 ‘비공식’ 국민소환권을 행사했다. 한계에 또 다른 한계들이 겹치면서 38년 이어온 ‘87년 체제’는 급격히 달라진 정치지형과 경제·사회의 구조적 다양성을 반영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일대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일대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 연합뉴스

그동안 여러 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무산됐다는 평가가 있다. 맞을까? 거의 틀린 분석이다. 여의도에서 제안된 대부분의 개헌 시도가 무산된 이유는 논의 과정의 정치적 유불리 때문이 아니라, 개헌 제안 자체에 정치적 계산이 내포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덮기 위한 블랙홀로 제안됐던 박근혜표 개헌 제안이 대표적이다.

“권력형 비리게이트와 민생파탄을 덮기 위한 꼼수로 개헌을 악용해선 안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정략적 방탄 개헌입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사태와 조기 대선 등으로 87년 체제의 다양한 한계가 극명해진 이상,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 훼손된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고, 권력구조 재편을 넘어 국민 삶의 질을 바꾸기 위한 작업, 제7공화국 개헌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후속기사에서는 각당이 합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를 비롯해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 국회 권력 및 중앙 권력 분산, 국민발안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주의 도입 등 개헌의 세부 과제를 다룬다.

[스트레이트뉴스 김태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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