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채널에서 스스로 이해하고 보험 선택한 고객 만족도 높아
상품 90% 비대면 판매 규제 아쉽...금융당국 자본규제 따른 신사업 제약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는 “마이데이터 2.0 제도 자체가 보험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기엔 제한적”이라며 “본질적으론 자본규제 등 규제 제약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마이데이터 2.0 본격화 됐지만, 업계 시각 회의적
19일 보험연구원은 여의도 사옥에서 ‘디지털 보험시장’ 산학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스트레이트뉴스는 “마이데이터 2.0 시대에 보험업계에서 기대하는 바”에 대해 질문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날부터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63개 사업자 가운데 27개 사업자가 새로운 마이데이터 서비스(2.0)를 시행했다. 마이데이터 1.0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조회하고 내려받는 수준에 그쳤다면, 2.0은 데이터를 스스로 통제하고 이동하며 결합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진화시켰다.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는 “사실 보험업계는 이미 마이데이터 2.0 수준을 구현하고 있다”며 “고객의 동의만 있으면 개별 보험사를 지정하지 않아도 관련 정보를 통합해 조회하고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구조는 벌써 10년 전부터 활용하고 있다”며 “이번 마이데이터 2.0이 강조하는 핵심 개선점은 보험 분야에서는 이미 실현된 셈”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대표는 금융 전반으로 데이터 연결이 확대되는 데 따른 기대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은행, 증권, 자산 투자와 같은 영역의 데이터를 활용하면 보험 상품 개발이나 서비스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보험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데이터는 보험업에 있어서 부가적인 사업 기회가 될 순 있어도 절대적인 게임체인저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험업은 이미 공공 데이터 활용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도 부각했다. “보험산업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 있다”며 “외래 진료 이력, 수술 기록 등 의료 정보까지 활용이 가능하다 보니 고객 분석을 하는 데 있어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 “보험도 디지털로 바뀔 수 있지만..규제 발목”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는 “디지털 방식으로 가입한 보험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0.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에 예측했던 11%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숫자지만, 단지 시기가 늦어졌을 뿐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보험사는 법적으로 전체 보험 판매의 90% 이상을 앱이나 웹, 전화 같은 비대면 방식으로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이런 규제는 사회적 약자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배려해 10% 정도는 설계사를 통해 판매할 수 있도록 열어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모회사와 같은 판매 채널을 쓸 수 없다는 규정도 있어 사업에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대형 보험사들의 디지털 채널과 디지털 보험사의 차이도 짚었다.
김 대표는 “기존 보험사가 설계사와 디지털 채널을 동시에 운영하기 때문에, 디지털로는 일부 기능이 빠지거나 상품 자체가 다를 수 있다”며 “하지만 디지털 보험사는 처음부터 디지털에 맞춰 설계된 상품을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보험을 단순히 인터넷으로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쉽게 이해하고 믿고 가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진짜 디지털 보험이란 입장이다.
국내에서도 완전한 디지털 방식은 아니지만, 채팅 상담이나 전화상담을 거쳐 마지막 가입만 앱으로 마무리하는 ‘디지털 유사 방식’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고객이 4~5% 수준 이다.
김영석 대표는 “전체 고객 중 약 9%는 디지털로 보험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라며 “지금은 0.2%밖에 안 되지만, 앞으로 9%까지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며 “하지만 설계사 없이 가입하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불안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고객이 쉽게 보험을 찾고,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했다”며 “걸으면 포인트를 주는 건강 앱 ‘라플레이’를 통해 보험 관심 고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앱에서 전체 보험 판매의 16% 이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 대표는 “설계사 없이 디지털로 가입한 고객들의 보험 유지율이 84%가 넘고, 민원도 거의 없다”며 “보험을 스스로 이해하고 선택한 고객은 훨씬 더 오래 유지하고,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광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플랫폼과 제휴하거나 고객을 꾸준히 관리하면서 판매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보험학계, 정보비대칭 지적도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 소비자가 스스로 상품을 결정하려면 정보가 충분하고 쉽게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이 부분이 답답한 부분”이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이 많은데 디지털 공간에서 소비자가 이를 쉽게 이해하도록 보조하는 툴(Tool)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 연구위원은 “소비자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필요한 특약만 골라담는 DIY(Do It Yourself) 상품을 기대하는 측면이 있었을텐데 이 역시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금융당국이 보험사들의 디지털 채널 활용에 대한 유연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굳이 법적으로 디지털 보험사가 전체 보험 판매의 90% 이상을 비대면으로 판매할 필요성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소정 서울대학교 교수는 “보험상품은 구조의 복잡함과 푸쉬 영업방식 등 특수성이 있다”며 “보험소비자가 디지털 공간에서 스스로 상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회사가 지속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금융당국이 보험사에게 요구하는 타이트한 자기자본 규제가 현존하는 보험사의 퇴출과 신생 기업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며 “회사들이 가용할 수 있는 사업비용의 변동성이 큰 상황 자체가 디지털 전환 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보험사에게 요구하는 빡빡한 자기자본 규제가 현존하는 보험사의 퇴출과 신생 기업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며 “지나친 규제는 보험업계가 디지털 채널과 상품에 혁신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생명보험업의 경우 디지털 시스템 인프라 투자 대비 성과가 절반밖에 안되는 게 현실”이라며 “가용할 수 있는 사업비용의 변동성이 큰 상황 자체가 디지털 전환 장벽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보험사에게 요구하는 타이트한 자기자본 규제가 현존하는 보험사의 퇴출과 신생 기업의 진입을 가로 막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황성환 신한EZ손해보험 단장은 “손보업의 경우, 자동차 보험 상품 등을 디지털 플랫폼에 가입하는 비중이 전체 대비 절반 수준”이라며 “가령 보험사가 1000억원 자본금을 갖고 신규사업을 한다면 가용할 수 있는 지급여력 비율(K-ICS) 할당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디지털 보험사뿐만 아니라 소형 보험사를 위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며 “보험사가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규제와 거대언어모델(LLM) 활용 가이드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