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꿈꾸는 ‘K-배당 공화국’…“이익성장ㆍ투자ㆍ배당정책 삼박자 갖춰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한국 자본시장이 제도적·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하고 있다표면적으로는 주가 지수 상승이 정책의 목표처럼 비춰지지만실상은  이면에 자리 잡은 제도 개편과 규제 혁신이 핵심 동력이라는 분석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신정부 주식시장 대전환」시리즈를 통해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기업의 배당 확대 정책 신호와 함께 고배당주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급격히 유입되며 ‘코스피 5000’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순이익 둔화 속에서도 자본준비금 등을 활용한 ‘감액배당’이 급증해 배당 총액만 부풀린 ‘눈속임’ 우려가 제기된다.


◇ 고배당 열풍에 부푼 ‘코스피 5000’ 기대감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배당 주도주 관련 펀드로 ‘머니 무브’가 일어나며 ‘코스피 5000 시대’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부풀었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1일 한국거래소를 찾아 “우리는 중국보다도 배당을 안 하는 나라”라며 “배당 성향이 35%를 넘는 기업에는 세율을 내려 주자”는 구체적 방안을 공개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6월 11일 이후 ‘코스피 200 금융 고배당 TOP 10’ 지수는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웠고, 배당주 ETF에는 한 달 새 4000억원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이 대통령은 “우량주를 사서 배당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시장을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대통령의 주문은 7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첫 세법개정 추진 방향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획재정부가 검토 중인 초안은 △배당 성향 35% 이상 기업 배당소득의 저율 분리과세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하향(50억 → 10억) 등을 골자로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배당 확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논리가 힘을 얻으며 입법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정책 신호에 맞춰 상장사들도 ‘주주환원 강화’라는 구호를 앞다퉈 외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결산 기준 코스피 기업 565곳이 쏟아낸 현금배당 총액은 30조3451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배당금 규모가 전년보다 10% 넘게 늘었고, 시가배당률도 5년 만에 최고치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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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 비율)은 2020년 39.55%에서 34.31%로 내려앉았다. 기업이 거둔 이익이 신통치 않은데도 ‘배당 총액’만 키워 주주환원 성과를 과시한 셈이다.

금융지주사들은 대표적인 ‘배당 랠리’ 수혜주로 꼽히지만,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내 1위인 KB금융의 2024년 배당성향은 23%대에 머물러 대통령이 제시한 35% 기준에 한참 못 미쳤다. 은행업계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여전히 0.6배를 밑도는 상황에서, 순이익이 둔화되면 배당 여력 역시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배당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손에 잡히는 이익 대신 회계상 잉여금을 활용하는 감액배당(자본준비금 환급)이다. 실제로 감액배당이 가능한 기업 수는 2022년 31곳에서 올해 130곳으로 네 배 넘게 폭증했고, 배당액은 같은 기간 1598억원에서 8768억원으로 4.5배 치솟았다.


◇ 하반기 성장률 0% 전망…‘상저하고’ 기대 부흥 쉽지 않아


올해 한국 경제는 상반기 ‘상저하고’(上低下高)를 기대했지만, 전망치는 오히려 거꾸로 기울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종전 1.7%에서 0.7%로 대폭 낮췄다. 특히 하반기 성장률을 0.9%로 제시하며 “장기불황 진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대외 악재가 줄줄이 겹친다. 6월부터 미국이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를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했지만, 7월 말 한 미 관세협상에서도 이 고율이 그대로 유지됐다. 수출 비중 13%를 차지하는 철강업계는 “가격경쟁력이 사라졌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자동차도 타격이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과 한국산 승용차에는 15% 관세가 확정됐다. 자동차 없계에선 업계는 “환율·원가 부담까지 고려하면 일본 브랜드보다 불리하다”며 하반기 영업이익 하락을 우려한다.  

반도체 역시 호재가 없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올해 범용 D램(RAM) 생산이 전년 대비 12%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엔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어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생산라인 증설이 변수로 꼽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기업들은 세제 인센티브에 이끌려 배당만 키우고 있다. “이익 없는 배당 확대는 주주도 경제도 모두 손해”라는 경고가 시장에 울리고 있다.  


◇ ROE·FCF 부진 기업, ‘눈속임 배당’이 오히려 디스카운트


다만 일각에선 “이익을 나눠 주는 대신 자본을 축낸 감액배당이 반복되면 재무 건전성이 흔들리고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한국조세정책학회가 개최한 ‘감액배당, 과세해야 하나?’ 세미나에서는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감액배당 방식은 자본을 활용해 사실상 이익 배당 효과를 내면서도 과세를 회피할 수 있게 설계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준비금이 단지 이름만 바뀌어 이익잉여금처럼 쓰이고 있다”며 “결국 기업의 현금이 외부로 유출돼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배당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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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 KPMG 역시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잉여현금흐름(FCF)이 부진한 상태에서 배당만 늘리는 기업은 할인 요인이 오히려 커진다”면서 “ROE·FCF·투자(CAPEX)가 함께 개선될 때만 배당 확대가 장기 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런 ‘눈속임 배당’을 감시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12월 통과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결산배당뿐 아니라 분기배당까지 사전 공시를 의무화했고, 금융감독원은 사업보고서 서식에 배당정책 △배당지표 △배당이력 항목을 신설해 배당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했다.

하지만 감독 규정이 강화될수록, FCF와 ROE가 부진한 기업들은 ‘배당 확대’와 ‘투자 축소’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전문가는 “ROE·FCF·CAPEX가 함께 개선되지 않은 채 배당만 늘리면 오히려 ‘밸류 트랩’이 된다”고 말했다. 자본차입이나 준비금 환입으로 만든 고배당은 일회적 이벤트에 불과해, 배당락(배당 이후 주가 하락) 충격이 커지고, 장기적으로는 주가수익률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심지어 미국·일본처럼 안정적 배당 문화를 정착시킨 국가도 배당 여력을 산정할 때 첫째 조건으로 ‘견조한 이익 성장’을 꼽는다.

증권업계 다른 전문가는 “세제 인센티브가 있어도 내년 영업이익 전망이 불확실하면 배당 확대에 쉽게 서명하기 어렵다”며 “연구개발(R&D)‧설비투자를 줄인 채 고배당을 유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배당 공화국’을 향한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의지는 투명한 배당 공시와 지속 가능한 이익 창출, 합리적 세제 인센티브라는 세 축이 동시에 맞물려야 완성된다”며 “주주환원을 늘리겠다는 구호가 기업 실적과 괴리되면, 고배당주는 단숨에 ‘허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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