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자본 대비 큰 투자자산 규모...불확실성 확대
결국 투자자 신뢰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성패 달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자본시장이 제도적·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가 지수 상승이 정책의 목표처럼 비춰지지만, 실상은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제도 개편과 규제 혁신이 핵심 동력이라는 분석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신정부 주식시장 대전환」시리즈를 통해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신정부가 내건 ‘K-자본시장 대전환’의 진정한 성패는 투자자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무리 제도를 정비하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자본 유입과 자산 시장의 선순환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증권업계, 투자자산 규모는 자본 5배
13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한국 증권업계의 실적 회복 전망’을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 증권업계는 상위 10개사가 전체 자산과 이익의 70~90%를 점유하는 형태다.
로웨나 창 피치 레이팅스 이사는 “규제 문턱이 자본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 속에서, 자본이 풍부한 증권사일수록 신상품, 글로벌 확장, 구조화 상품 운용 등 다양한 기회를 선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창 이사는 “정치적 안정,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주 호조 덕분에 한국 증권사의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및 트레이딩 수익이 크게 증가했다”며 “그러나 대내외 거시·지정학적 불확실성, 부동산 경기와 투자 전략 변화에 따라 성과 등락 가능성 존재한다”고 말했다.
투자자산 편중 구조 역시 변동성 리스크가 여전하다. 피치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한국 증권사들의 자산 중 64%가 투자자산으로, 자기자본 대비 무려 5배(527%)에 달한다.
창 이사는 “이러한 자산 구조가 한국 자본시장 등락에 따라 증권사 실적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한다”며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수익 예측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2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태(일명 레고랜드 사태)를 계기로 증권사 간 리스크 관리 역량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개발사 부도로 인한 유동성 위기 당시, 견고한 리스크 통제 프레임워크를 갖춘 증권사만이 시장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상품 출시 기회가 열리는 것은 맞지만, 이는 동시에 더 높은 자본요건과 복잡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시장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특히 “헤지 전략의 실효성도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복잡한 상품 구조와 변동성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증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코스피 5000’ 향한 청사진…제도보다 중요한 건 ‘신뢰’
이재명 대통령 신정부는 ‘코스피 5000 달성’과 함께 자본시장 정상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공매도 제도의 전면 재설계, 불공정거래에 대한 무관용 원칙,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 개선, 영문 공시 의무화, 세제 인센티브 확대 등 시장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책 방향만 놓고 보면 과거와 유사해 보이지만, 구조적 접근과 입법 연계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연구계 한 관계자는 “신뢰는 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반복적으로 체감되는 실천에서 비롯된다”며 “투자자들이 실적 부진에 빠진 기업들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배당 정책을 보고 다시 주식 매수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최소한 그 정보가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싱가포르는 회계감리 체계를 일찌감치 국제 회계기준(IFRS)으로 정비하고, 기업 지배구조 코드를 지속 보완하며 자발적 공시를 유도한 덕분에 아시아 내에서 가장 신뢰받는 시장 중 하나로 성장했다.
대만 역시 ESG 공시, 경영권 투명성 강화, 중장기 로드맵 공개 등을 통해 시장의 질을 높였다. 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가치 할인율에서의 우위다. 한국이 수년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이들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국내 자본시장 역시 정책적 시도는 반복되어 왔다. 기업소득환류세제, 스튜어드십 코드, 공매도 개선, 상장폐지 요건 강화 등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실행 과정에서 혼선과 예외, 반복적인 변경이 이어지며 투자자의 피로감만 쌓였다는 비판이 많다. 문재인 정부 하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형식적 운영에 그쳤고,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 정책은 기업 자율성과 정책 실효성 사이에서 방향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 가운데, 새 정부는 기업지배구조 투명화, 자본시장 세제 개편, 금융투자소득세 재검토 등 보다 실질적인 접근을 꾀하고 있다. 정책 수립 과정에 연기금, 기관투자자, 증권업계 등의 실무 목소리를 반영하고, 일부는 입법 연계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기업 실무진들은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은 자발적으로 영문 공시 확대나 배당정책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다음 단계를 기업의 자율성과 연계된 실행력에서 찾는다. 제도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계 다른 관계자는 “단기 주가 상승을 위한 캠페인보다도, 상장사의 자율적 거버넌스 혁신과 장기적 성과 관리 체계, 공정거래 위반에 대한 실질적 제재 등이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자본시장은 오랜 기간 수급 논리에 종속돼 왔고, 기관·외국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며 ”그러나 진정한 신뢰 기반 시장은 장기 투자자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해당 기업의 경영 전략과 지배구조 개선 방향이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구조에서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