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노출 제한적이나 수출·시장 심리 영향
“불확실성의 또 다른 서막”
중국 헝다그룹이 상장폐지되며 사실상 파산 수순에 접어들었다. 한국 금융권의 직접 노출은 크지 않지만, 원자재 수요 위축과 대중 수출 감소 우려로 인해 철강·중간재·소재 업종 등 국내 증시에 간접 충격이 예상된다.
◇ 헝다 사태, 국내증시·원자재·수출엔 그림자
14일 주요외신 보도에 따르면, 전날 홍콩증권거래소는 “헝다그룹이 상장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개선 기한도 만료됐다”며 자진 상장폐지 신청을 수용했다.
헝다그룹은 2024년 1월 법원의 청산 명령 이후 거래가 정지된 종목이다.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개발사로 한때 3000억 달러(약 400조원)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었던 헝다는, 지난 3년간 연쇄적인 채무불이행과 매출 급감, 경영진 교체를 거쳐 사실상 파산 처리 수순에 이르렀다. 청산 절차 중 채권 청구만 60조원을 넘어서는 등 파장이 컸지만, 국제 채권단과의 구조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헝다의 상장폐지는 상징적으로 중국 부동산 위기의 종착역이자,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경고음을 울리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등 당국은 헝다 사태의 직접적 금융 리스크는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헝다 채권·주식에 대한 국내 금융사 투자 비중은 미미하며, 이미 수년 전부터 익스포저(위험 노출) 관리를 강화해온 결과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한국 금융사들의 중국 부동산 기업 관련 투자 규모는 전체 해외 자산의 0.2%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직접 영향이 아닌 간접 충격’이다.
우선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철강, 시멘트, 석탄 등 원자재 수요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직결된다. 최근 코스피는 반도체주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대중 수출 부진 우려는 K-소재·부품·장비주와 에너지·자원 관련 업종의 하방 압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 중국 경기 불확실성은 여전…철강·중간재·소재주 하방 압력 커져
헝다그룹의 파산은 단순한 개별기업의 부실이 아니다. ‘세 줄 규제(Three Red Lines)’로 불리는 중국 정부의 부채 억제 정책은 2020년부터 전방위적으로 시행되었고, 이로 인해 헝다를 비롯한 대형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자금 경색에 빠졌다.
컨트리 가든(Country Garden), 화양녹업(Shimao), 룽광(龙光) 등 주요 민영 디벨로퍼들도 채무상환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중국 정부는 저소득층 대상 모기지 지원 확대, 지방정부의 부실 주택 매입 등으로 수요를 뒷받침하려 하지만, 아직 실질적 수요 회복은 요원하다.
중국 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즈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은 더 이상 부동산을 성장을 견인할 핵심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주거는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하면서 산업 구조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헝다 사태의 직접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충격은 한국 증시에서 제한적일 수 있지만, ‘중국발 불확실성’은 여전히 외국인 자금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변수다.
특히 원자재, 철강, 기초소재, 중간재를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 업종은 글로벌 수요 둔화 시기에 가장 먼저 하방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외국인은 반도체 중심의 매수세를 유지 중이나,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지면 수급 환경은 급격히 바뀔 수 있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금리와 환율, 공급망 이슈 등 복합 요인 속에 코스피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가 추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까지도 주택 구매 규제 일부 완화, 모기지 금리 인하, 지방정부 보증 대출 허용 등의 정책을 병행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특히 민간개발사들에 대한 금융시장 접근 제한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회복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헝다 불안만으로도 글로벌 증시가 출렁였지만, 지금은 ‘중국 리스크는 상수’로 전환되고 있다”며 “이는 시장이 이미 어느 정도 중국 성장 둔화를 디폴트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갑작스러운 대규모 부동산 부양, 금리 인상, 위안화 절하 등 정책 충격이 더해질 경우, 시장은 예상보다 큰 변동성을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