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불안·해외 자금 이탈, 대형주 매도세로 하락 압력 가중
“코스피 5000 구호보다 실행이 중요”…정책 신뢰 회복이 열쇠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6월 조기대선 이후 코스피가 3245선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3100선에서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공매도 거래대금은 3개월 새 19% 늘며 잔고가 10조원대로 고착화됐고, 대차잔고 역시 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외국인 자금까지 미국 기술주로 다시 이동하면서, 증권가에선 “코스피 5000의 열쇠가 정책 신뢰 회복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 코스피, 3100선에서 등락…대선 이후 상승세 주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0.68% 하락한 3130.09로 마감했다. 장중에는 3079선까지 밀렸다가 간신히 낙폭을 줄였다. 수급을 보면 기관은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개인과 외국인이 동시에 팔아치우며 지수를 눌렀다. 같은 날 원/달러 환율이 1398원대까지 오르며 위험자산을 피하려는 심리가 강해졌고, 반도체·2차전지·플랫폼 등 대형주 전반으로 매도세가 번지면서 하락 압력이 더해졌다. 

코스피는 5월말 기준 2697.67을 기록했다. 이후 6월 조기대선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구성되면서 지난달말 기준 3245.44까지 올랐다. 그러나 최근에선 3100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5000선을 향해 상승하던 코스피 동력이 왜 꺼졌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정책 신호 혼선, 쌓여가는 공매도 잔고, 그리고 해외자금 이동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밸류업 구호가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당장 체감되는 유동성, 세제의 최종안, 제도의 집행력을 더욱 면밀하게 따진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자본시장 선진화’를 내세우며 ‘코스피 5000’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지배구조 개선, 불공정거래 근절을 묶어 주가 수준을 한 단계 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8월 현재 체감은 다르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배당 과세 방식 등 세제 이슈가 오락가락하고, 제도 변경의 속도가 투자자 신뢰 회복과 엇박자를 내면서 시장에는 ‘정책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붙었다. 

공매도는 빌린 주식을 먼저 팔고, 나중에 되사서 갚는 거래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성격이 강하다. 전면 재개(3월 31일) 이후 공매도 잔고는 7월 초 9조원대를 넘어섰고, 8월에 10조원 선을 굳혔다. 기술적으로는 하락 베팅의 ‘장작’이 쌓였다는 뜻이고, 심리적으로는 단기 반등보다 정책 혼선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는 신호다. 


◇ 3개월 새 공매도 거래대금 19% 급증…10조원대 대차잔고 고착화


스트레이트뉴스가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 공시를 분석한 결과, 대선 직전 열흘 기간(5월 19일~30일) 코스피 공매도 거래대금 총 규모는 118조4290억원을 기록했으나 최근 열흘(8월 6일~20일)은 140조8350억원을 기록했다. 3개월 만에 약 18.9% 증가한 것이다.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잔고는 5월 30일 기준 6조7500억원 수준이었으나, 가장 최근 집계치인 이달 18일에는 10조354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14일을 기준으로는 10조381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올해 최고치이자 2023년 11월 이후 1년 9개월 만의 최대 수준이다. 

잔고 비중이 높아진 종목은 반도체·배터리·여행·신재생 등 그동안 많이 오른 종목들이다. 단순 헤지(위험 분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앞으로 1~3개월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기관·외국인이 포지션을 재정비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조선과 기계 등 국내 주도주의 이익 증대 가능성이 살아있고, 상법 개정안 등 큰 틀에서의 거버넌스 개선 움직임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시의 하방 경직성이 이전보다 견고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매도는 ‘대차’ 위에서 움직인다. 대차잔고(빌려 간 주식의 총량)가 늘면 공매도에 투입될 ‘탄약’이 많아진다. 7월 초 대차잔고는 94조원을 다시 넘겼고, 이달 14일에는 98조원 이상을 기록했다. 이 역시 2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시장참여자 A 씨는 “공매도 잔고 10조원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결과를 바꾸려면 원인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범만 강하면 성장 동력이 마르고, 유동성만 밀어 올리면 다시 거품의 위험에 노출된다”며 “지금 시장이 듣고 싶은 건 ‘코스피 5000’ 달성이라는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이번 정부는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 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차가 모두 공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잔고가 팽창하는 시기에는 방어력이 약한 종목부터 흔들리기 쉽다. 8월 초 이후 대차잔고가 높은 종목군이 약세장에서 더 큰 폭으로 출렁였던 것도, 가격뿐 아니라 ‘포지션’(시장 참여자들의 베팅 방향)이 주가를 좌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차가 많으면 나중에 되사며 갚아야 하는 ‘숏커버링’ 수요가 생겨 단기 반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제는 변동성의 폭발이 아니라 정책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남아 있으면 커버링(매수) 대신 숏(매도)이 더 얹힐 수 있다.


◇ 외국인 투자자, ‘미국 회귀’ 속 한국 증시 변동성 확대


물론 시장제도와 시스템의 변화도 있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3월 31일 공매도를 전면 재개했다. 동시에 전산 인프라를 손보고, 공매도 전 과정을 점검하는 중앙시스템(NSDS) 연계, 대차 상환기간 상한 설정, 무차입 공매도(실제 빌리지 않고 파는 불법 행위) 방지 조항 등을 손질했다. 

방향성은 ‘금지를 이어 가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제도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시장참여자 B 씨는 ‘공매도 재개 4개월이 지난 현재 시장이 바라는 건 더 구체적이고 일관된 실행”이라며 “공매도의 신청·대차·주문·결제 전 과정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추적해 불법을 원천 차단하고, 개인 투자자들도 합리적인 담보·상환 조건으로 제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단타 투자는 나쁜 것’이라는 감정 논쟁에서 벗어나, 합법적 공매도가 가격발견과 유동성에 기여하는 본래 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이버 보안 리스크가 겹쳤다. 7월 말 SGI서울보증 랜섬웨어 사태와 8월 웰컴금융그룹 복구 이슈는 금융 인프라의 취약함을 드러냈다. 금융위원회는 전 금융권의 보안 체계를 점검했고, 중대한 보안사고 발생 시 ‘징벌적 과징금’을 물리는 방안까지 검토에 올렸다.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권한 강화, 전 금융권 블라인드 모의해킹, 통합관제 고도화 등도 추진 중이다. 

증권사들이 밀집한 여의도 전경. 픽사베이 제공.
증권사들이 밀집한 여의도 전경. 픽사베이 제공.

다만 시장의 시각은 ‘규범 강화’가 ‘밸류업·세제 확정·공매도 인프라 안정화’와 맞물려야 긍정적인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정책의 ‘일관성’과 ‘속도 조절’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해외 자금 흐름 지도를 펼쳐보면 한국의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7월에는 한국·대만으로 자금이 크게 들어왔다. 인공지능(AI) 섹터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가 크고, 이익이 개선되는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 들어 글로벌 자금의 초점은 다시 미국 대형 기술주로 이동했다. 8월 13일로 끝난 한 주, 전 세계 주식형 펀드로 193억 달러가 유입됐는데 이 중 87억 달러가 미국 주식형으로 몰렸다. 

기술주 펀드에는 40억 달러가 들어왔다. 같은 기간 신흥국 주식형에서는 10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아시아(일본 제외)’ 펀드에서도 동반 순유출이 나타났다. 한국 주식형에서도 소폭 유출이 포착됐다. 한마디로, ‘미국 회귀’와 ‘아시아머니 재배치’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 정책 신호의 일관성과 환율 안정 여부에 따라 자금 유입·유출이 더 민감하게 갈리는 시장이 됐다.

8월 20일 하루만 놓고 봐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300억원대 순매도를 기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적 시즌 막바지의 차익실현, 환율·관세·안보 변수 재평가, 여기에 국내 세제 신호에 대한 경계감이 겹쳤다.

기관의 방어 매수로 낙폭이 다소 줄었지만 반등 탄력은 약했다. 장중 급락 후 되돌림이 미약했다는 점은 가격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정책 신뢰에 대한 의문이 더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국인은 가격·정책·유동성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 위험자산 비중을 늘린다. 이 순서가 다시 정렬된다면, 7월처럼 자금이 돌아오는 속도는 빠를 수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시장이 기다리는 건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라며 “정부가 밸류업·세제·공매도 제도를 일관성 있게 정비하고 신뢰를 보여주는 순간, 해외 자금과 투자 심리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코스피 5000’의 열쇠는 정책 신뢰 회복과 글로벌 자금의 귀환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