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유지조항 있어도 공시의무 우선
사업적 영향 중대한지가 고려사항
원전 관련주 폭락해 투자자 손해 발생
한국증시 신뢰도 하락…코스피 5000 공약에 먹구름
한수원과 한국전력 등이 체코 원전 수주 관련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이면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보도돼 공시위반 논란을 낳는다.
일반적으로 계약에 비밀유지조항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계약 자체가 중요 공시 대상에 해당한다면 그 계약의 체결 사실, 당사자, 계약의 목적 등 핵심 정보는 공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면, '비밀유지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상세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중요성 및 영향에 대해 공시하는 것이 관행이라, 이를 공시하지 않은 것은 공시의무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 및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상 상장기업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공정성을 위해 중대한 영향이 있는 사항을 적시에 공시해야 한다. 계약 체결로 인해 재무상태, 경영성과,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해당 계약의 주요 내용은 공시 대상이다.
계약에 비밀유지조항이 포함돼 있더라도 공시의무는 우선한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이 공시를 회피하기 위해 비밀조항을 남용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해 왔다. 사업적으로 중대한 영향이 있는 계약조항을 숨긴 경우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벌점 부과 등으로 제재할 수 있다.
해당 계약이 재무제표에 반영될 정도의 손실 가능성이 있는지, 기업의 사업 방향과 수익성 및 자산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지 등이 고려사항이다. 비공시가 불가피한 경우 거래소에 공시 유예 신청을 해야 한다. 승인 없이 비공시했다면 위반 소지가 크다.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에는 향후 50년간 원전 수출 시 1기당 약 1조원 규모의 일감 및 로열티 제공,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수주 제한, 소형모듈원전(SMR) 독자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 검증 의무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기업의 사업 전략과 수익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올 1월에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을 합의하면서 체코 원전 수주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합의 이후 한수원이 유럽 일부 지역에서 원전 수주 경쟁을 중단했고, 이 철수가 합의의 여파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상장사인 한전은 한수원과 함께 웨스팅하우스와 합의문을 체결한 당사자다.
해당 이면계약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원전 관련주가 급락하며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투자자에게 중대한 정보가 은폐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도 하락마저 우려된다. 이는 코스피 5000 달성을 정책 목표로 내건 이재명 정부에 부정적이다.
전날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임시회에서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한국전력 지분의 49%는 일반 주주들이 갖고 있다”며 “주주들 입장에서 본인들이 회사의 주식을 갖고 투자를 하고 있는데 지금 회사가 어떤 계약을 체결했는지 상업적인 전망은 어떤지 알아야 할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정부도 지분이 51%나 있는데 계약이 적정한 수준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으면 되는 건가”라며 “국가에 손해를 미치는 건데, 이사회 때 어떤 논의를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면 이건 배임”이라고 지적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