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불확실성·장기금리 요동, ‘금 선호’ 확대
외국인 국내증시 이탈시 환율 변동성 더 커져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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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값이 9월 초 사상 최고치(온스당 3500달러대)를 경신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선 부근을 오가면서, 장기금리 급등과 관세 불확실성 속에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고 원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급등으로 기업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 금값과 환율 모두 자극하는 ‘장기금리’


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호가는 1392.5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2일 1400원을 넘어서는 등 강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시장은 달러가 강해지는 구간마다 원화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분위기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환율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수 있지만 미국의 관세를 부과받은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경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관세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원화 가치가 수출기업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국제 금값 역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달 2~3일(현지시간) 연달아 장중·마감 기록이 경신됐고, 현물과 선물 모두 3500달러 선을 넘어섰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 경기·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각국 중앙은행의 꾸준한 매수 수요가 겹친 결과다.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질수록 금으로 자금이 몰리는 전형적인 흐름이 확인됐다.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장기화하면서, 백악관은 상급심 신속 심리를 연방대법원에 요청했다. 관세의 최종 향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만큼 기업과 투자자는 방어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불확실성이 유입되면 금에는 매수세가 붙고, 달러 선호가 높아지며 신흥통화에는 약세 압력이 가해진다. 시장의 체감 경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최근 금의 신고가 행진과 원화 약세 현상이 함께 나타난 배경으로 장기금리 변동폭이 손꼽힌다. 3일 미국 30년물 금리는 4.9% 수준에서 거래됐다. 해당 채권은 이날 장중 한때 5%를 상회하기도 했다. 30년 만기 스프레드는 약 129bp로, 2021년 말 이후 최고권으로 평가된다. 일본 30년물 금리도 9월 3일 약 3.28%로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영국 30년물 금리는 2일 5.75%까지 치솟아 199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쉽게말해 각국이 확대재정을 펼치며 국채를 찍어내면서 미래의 국채 가치가 떨어져 더 높은 쿠폰금리를 제시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가치하락 방어가 가능하고 채굴량에 한계가 있는 금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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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금리가 출렁이는 구간에선 채권 평가손과 변동성이 커지고, 채권 대신 대체 수요(금)가 살아난다. 동시에 달러 유동성 선호가 높아지면, 원화 같은 신흥통화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구조적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금협회(WGC) 조사에서 다수의 중앙은행이 향후 1년 내 금 보유를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고, 중국 인민은행을 포함해 주요국 중앙은행의 순매수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장기 매수세는 단기 뉴스와 무관하게 금 가격을 지지하는 바닥 수요로 작동한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수급은 올여름 들어 유입과 이탈이 교차했다. 7월에는 외국인 순매수가 크게 늘었지만, 8월 초에는 관세 이슈와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로 차익실현과 매도세가 나오며 원/달러가 1400원을 넘겼다. 국내에 투자했던 외국인 자금이 다시 본국으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화 등 다른 통화를 사들이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돈이 빠져 전부 미국으로 간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달러가 강해지는 구간마다 외국인 수급이 흔들리고 환율이 위로 밀리는 장면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원화 약세가 실물경제에 남기는 흔적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시장에 대한 선호도 자체가 올라와야 환율이 하향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달러는 약세인데 원·달러 환율이 높은 상황인 만큼 원화 강세 모멘텀이 나오면서 변동성이 완화되면 추세가 바뀔 수 있고, 연말로 가면서 1360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주식·채권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촉발되고, 이는 다시 달러 수요를 키우며 환율 상단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되거나 연준의 완화 신호가 뚜렷해지면, 달러 강세 압력은 누그러질 수 있다. 현재처럼 신호가 엇갈릴 때는 환율의 변동성 자체가 커진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근접하는 구간이 길어지면, 가장 먼저 수입물가가 오른다. 원유·가스·곡물·원자재처럼 달러로 결제되는 품목이 많아 제조업 원가가 높아지고, 일부는 소비자물가로 상승으로 이어진다.

다만 소비자물가까지의 전가는 시차와 탄력이 있어 업종·품목별 차이가 크다. 대체제가 없는 필수품은 가격이 올라도 고객 수요 탄력성이 낮아 가격 전가가 가능하나, 그렇지 못한 상품은 기업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 레벨 자체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큰 리스크다.  

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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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기업은 선물환·옵션으로 결제환율을 고정하고, 결제 시점을 분산한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수출 기업은 원화 약세가 단기 이익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부품·원재료의 달러 가격 상승과 운임·관세 부담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외환시장 제도 개선을 이어왔다. 거래시간을 늘리고, 접근성을 높여 유동성을 두텁게 만들었다. 당국은 “필요시 시장안정 조치”를 재확인하고 있다. 외환수급 완충을 위해 국민연금–한국은행 간 달러 스왑 라인도 내년 말까지 연장됐다. 급변 시점의 스프레드 확대를 줄이는 장치들이다.  

한편 한국은행은 8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0%로 유지했다. 환율만 보고 움직이기보다는 성장·물가·금융안정 변수를 함께 본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성장세가 다소 개선됐지만, 미 관세 정책의 영향 등 으로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은 높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도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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