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 다른 방향 같지만 외화 유입·유출 균형 겨냥”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제공.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제공.

한국은행이 14년 만에 김치본드(국내 발행 외화표시채권) 투자 제한을 풀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은행 중심·점진 도입’ 원칙을 재확인했다. 표면상 엇갈린 조치처럼 보이지만, 경상수지 최대 흑자와 외환시장 인프라 확충 흐름 속에서 핵심은 ‘달러 유동성 관리’에 맞춰진 것으로 풀이된다.


◇ 김치본드 투자 14년 만에 해제…한은 “달러 유동성 관리”에 방점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은은 앞선 6월 은행·증권·보험 등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이 발행 목적에 관계없이 김치본드(국내에서 발행되는 외화표시채권)에 자율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 외화조달을 활성화해 외환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해제 범위는 공모성 외화표시 국내발행 채권 전반을 포괄하되, 규제 우회 소지가 큰 사모성 채권은 제외됐다. 한은은 “외화 유동성 여건 개선과 원화 약세 압력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기관의 투자 허용으로 외국계 법인의 국내 발행 달러채 매수도 가능해진다.  

해외 주요 매체도 해당 조치를 ‘14년 만의 전면 해제’로 전했다. 블룸버그는 “국내 기관의 김치본드 투자 금지 해제는 외화 유입 경로 다변화를 겨냥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 조기대선으로 이재명 대통령 정부가 세워지면서 국회에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법안 논의가 속도를 냈다. 금융위원회는 10월 중 발행 요건·담보 관리·내부통제 체계 등을 담은 정부안을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우선 상업은행 중심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제공.

이창용 한은 총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달러 스테이블코인과의 교차환전이 쉬워지면 외환·자본흐름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한은은 비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확대가 통화정책 파급경로와 금융안정에 미칠 영향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  

류상대 한은 수석부총재는 “높은 수준으로 규율되는 상업은행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고, 경험 축적 후 비은행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은은 상업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차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2차 파일럿 준비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은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사용 확대로 외환규제 우회와 외화유출이 가속될 가능성을 거듭 지적했다. KED글로벌 등은 “국회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한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 외환보유액 4113억달러…유입은 강화, 유출은 규율


시장에선 한은이 김치본드 규제 완화와 스테이블코인 신중론을 함께 내비치는 이유가 ‘달러 유동성 관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한다고 해석한다. 

실제로 6월 경상수지는 142억7000만 달러 흑자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술 수출 호조가 배경으로, 외화(달러) 유입이 강하게 들어온 셈이다. 최근 당국은 외환거래 시간을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연장한 뒤 1년 성과를 점검하며 등록외국기관(RFI) 참여를 52개 수준으로 늘렸고, 야간 시간대 알고리즘 거래 허용 등 보완책을 내놨다. 

시장 저변을 넓혀 국내 달러 거래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비축 측면에선 7월 말 외환보유액이 4113억 달러로 집계됐다. 규모 기준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월 대비 소폭 증가했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김치본드 투자 허용은 국내 달러 유입 경로를 넓히는 조치이고,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선 유출 경로가 무질서하게 확장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표면상 다른 방향 같지만 외화 유입·유출의 균형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당국은 최근 외환시장 개편과 병행해 파생상품 헤지한도 상향, 외화대출 규제 일부 완화, 국민연금과의 외화스와프 라인 확대 등 달러 유동성 보강책을 단계적으로 내놨다는 평가다. 다만 국내 기업 입장에선 달러 조달비용이 높을 경우 김치본드 발행·투자 확대 속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병존한다.  

국회 논의의 쟁점은 △발행 주체(은행 우선 여부) △준비금 구성·보관(현금·예금·국채 100% 등) △환매·정지 요건 △공시·감사 주기 △해외거래소 상장·교차환전 제한 등으로 압축된다. 

디지털자산 업계에선 “초기에는 은행을 중심으로 100% 고품질 준비금과 상시 공시·감사를 적용하고, 데이터가 쌓이면 비은행 참여를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현실적 대안이 거론된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교차환전과 해외거래소 상장 룰이 느슨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관문 토큰’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김치본드의 실제 발행·투자 실적(스프레드·헤지비용·만기구조) △스테이블코인 정부안의 구체 설계(은행 우선·100% 준비금·감시체계) △달러 스테이블코인 규율 강화 여부(교차환전·해외거래소 상장) 등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김치본드 시장이 실물로 살아나는지, 스테이블코인 제도가 외환·결제 인프라와 충돌 없이 안착하는지가 환율 안정과 자금흐름 투명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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