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적중 ‘미래에셋’ vs 현지화 잰걸음 ‘삼성자산’
박현주 회장, 해외비즈니스 진두지휘...증권 책무구조도 공시
한국 금융권의 해외 진출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제조업이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렸듯, 금융도 점차 수출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현지화 전략과 정교한 정책 지원 없이는 단기간 성과에 그칠 위험도 크다. 궁극적으로 K-금융의 글로벌 안착 여부는 ‘얼마나 깊게 현지화에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K-금융 수출」시리즈를 통해 국내 금융업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올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은 더 커졌다. 7월 말 기준 전 세계 ETF 순자산이 17조3400억 달러, 연초 이후 자금 유입이 1조9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런 배경에서 국내 양대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외 무대를 넓히고 있다. 전자는 숫자로 체력을 키웠고, 후자는 국내에서 만든 전략을 미국 시장에 바로 상장해 존재감을 쌓았다.
◇ 미래에셋 “해외 비중 45%, ETF 232조원”…숫자가 말해주는 글로벌 체력
5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의 7월 말 운용자산은 439조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해외에서 굴리는 자금이 194조원으로 비중이 45%다. 1년 사이 해외 자산이 약 37조원 늘었다. 올해 상반기 연결 순이익 3517억원 중 약 1700억원을 해외 법인이 냈다. 이익의 절반이 해외에서 나오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해외 성과의 중심에는 ETF가 있다. 미래에셋은 전 세계에서 681개 ETF를 운용하고, 총 순자산은 232조원(7월 말 기준)이다. 해외 비중 45%, ETF 232조원, 16개 지역 거점이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해외 무대를 넓혔다. 여러 시장에 통할 상품을 폭넓게 깔고, 현지에서 빨리 결정하고, 국내 투자자의 신뢰로 뒤를 받치는 구조다. 커지는 글로벌 ETF 시장에서는 이 구조가 성과와 안정성을 함께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미국·캐나다·호주 등에서 미리 확보한 파트너십과 인수가 발판이 됐다”며 “준비된 길이 있었기에 새 상품을 내놓을 때 시장 진입이 빨랐다”고 말했다.
해외 거점은 넓고 오래됐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뿐 아니라 영국, 인도, 일본, 중국, 홍콩 등을 포함해 16개 지역에서 현지 팀이 직접 자산을 운용한다. 해외 진출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수요를 받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흔들려도 전체 실적 변동폭을 줄일 수 있다.
조직도 그 흐름에 맞췄다. 박현주 회장은 그룹의 글로벌 전략 책임자(GSO)로서 해외 사업을 직접 챙긴다. 해외가 성장의 중심이라는 판단이 책임 체계에 반영된 셈이다. 결정이 빨라지면 신상품 출시와 시장 대응도 빨라진다.
현지 기업 인수는 확장을 돕는다. 2023년에는 호주의 디지털 투자 서비스 업체 스톡스폿(Stockspot)을 인수해 온라인 기반 서비스를 강화했다. 해외 현장에서의 보폭을 넓히는 동시에, 국내에서 만든 상품을 현지 유통망으로 바로 연결하는 길도 확보했다.
국내 투자자 기반도 두껍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7월 말 TIGER ETF의 개인투자자 보유 비중은 41.8%로, 월말 기준 45개월 연속 1위를 이어갔다. 개인 보유 금액은 28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 삼성운용 “전략을 미국에 그대로 상장”…현지화로 존재감 키워
김우석 대표가 이끄는 삼성자산운용의 방식은 ‘전략 수출’에 가깝다. 국내에서 이미 검증한 ETF 전략을 미국 투자자 눈높이에 맞춰 손보고, 곧장 현지 거래소에 상장한다. 말 그대로 국내에서 만든 전략을 미국에서 바로 파는 모델이다.
삼성은 2023년 11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Amplify Samsung SOFR ETF(SOF)를 상장했다. 국내의 ‘KODEX 미국달러SOFR금리액티브 ETF’를 미국 규정과 관행에 맞춰 옮긴 첫 사례다. 당시 보도자료와 통신 보도는 SOF를 “SOFR(미국 단기금리) 수익을 손쉽게 담게 한 첫 ETF”로 소개했다.
2024년 10월에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Amplify Bloomberg U.S. Treasury Target High Income ETF(TLTP)를 상장했다. 국내 ‘KODEX 미국30년국채 타깃 커버드콜’ 전략을 미국 투자자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와 공시 방식으로 다듬었다. 핵심 메시지는 단순했다. 미국 국채에 기반해 매달 분배금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올해 5월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Amplify Samsung U.S. Natural Gas Infrastructure ETF(USNG)를 내놨다. 미국 천연가스 인프라 기업을 한 바구니로 담는 주제형 상품이다. 운용은 뉴욕법인이 맡고, 한국 본사는 자문과 리서치를 담당한다. 상장 공지와 상품 문서가 같은 날 공개됐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미국 현장에서 바로 운영하니 투자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상장·홍보·판매 과정에서 브랜드 신뢰를 현지에서 직접 쌓을 수 있다”며 “꾸준히 쌓이는 실적 기록과 네트워크가 자산 성장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삼성은 미국 상장 3종(SOF·TLTP·USNG)을 통해 ‘한국에서 만든 전략을 미국에서 직접 판다’는 전략을 세웠다. 뉴욕법인이 운용을 맡고 본사가 지원하는 방식은 현지 실행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숫자를 빠르게 키우려면 판매 채널 확대, 기관 고객 유치, 라인업 확장이 뒤따라야 한다.
◇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목적지는 같다
두 회사의 방법은 다르다. 미래에셋은 해외 운용 비중 45%, ETF 232조원, 16개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판을 넓혔다. 삼성은 국내에서 만든 전략을 미리 검증한 뒤, 미국에 그대로 상장해 현지에서 실적을 쌓는다. 한 쪽은 많은 지역에서 동시에 파는 힘이 있고, 다른 한 쪽은 미국 시장에서 바로 통하는 제품력을 앞세운다.
공통점은 ‘계속 팔릴 상품’에 답이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ETF 시장이 사상 최대로 커진 지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는 간단한 구조, 분명한 주제, 일정한 현금흐름에 대한 기대가 투자자의 선택을 이끈다. 두 회사 모두 이 기준을 의식해 라인업을 꾸리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과제는 더 큰 시장에서 더 빨리 확장하는 일”이라며 “규모 경쟁이 심한 미국·유럽에서 더 넓은 고객층을 겨냥한 대표 상품을 얼마나 자주 내놓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자산운용이 풀어야 할 숙제는 숫자에 있다”며 “미국 상장 3종으로 스토리와 기록은 쌓였지만, 해외 운용자산 자체를 어떤 속도로 키우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뉴욕법인의 판매·운용 역량을 키우고, 현지 투자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ETF 시장을 국내에서 연 것은 삼성자산운용이지만, 오너인 박현주 회장이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을 인수하는 승부수로 판을 뒤집었다”며, “이미 40%대 점유율로 양강체제를 굳힌 국내에서의 경쟁은 의미가 없고, 미래에셋증권 책무구조도 공시를 통해 해외비즈니스 총괄을 천명한 박현주 회장이 그룹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