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경계 심리 속 주식 순매수 나서는 개인들
코스피·코스닥 ‘사이드카’ 발동…투자 결과는 각자의 책임
“모르겠습니다”
주식시장이 5일 급락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내놓은 답변입니다. 좀더 부연하면, “그동안 올랐던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내리는 이유도 알 수 없다”는게 답변자의 설명입니다. 그 동안의 상승이 과도해 되돌림 현상이라는 표현으로 해석됩니다.
5일 주식시장은 일시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85% 하락한 4004.42에 마감, 4000선에 턱걸이 했습니다. 장중 한때 3867.81(-6.16%)까지 폭락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선방’입니다. 코스닥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전 거래일 대비 2.66% 하락하며 901.89로 마감, 900선을 가까스로 지켜냈습니다. 역시 장중 871.79(-5.91%)까지 급락한 것을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동반 급락,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 프로그램인 ‘사이드카’가 순차적으로 발동됐습니다.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 지수와 코스닥150선물가격이 각각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거래를 5분 동안 멈추는 제도입니다. 너무 과열되거나 너무 냉각이 심할 때 투자자들에게 잠시 이성을 찾게 해주는 숨고르기 시간입니다. 코스피와 코스닥 매도 사이드카 동시 발동은 지난해 8월 5일 이후 정확히 15개월 만입니다.
그 덕분인지 시장이 하락폭을 상당폭 만회하며 한 숨 돌리긴 했지만, 걱정은 그대로입니다. 당장 내일은, 그리고 또 모레는 어찌될 지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불과 몇일 전만 해도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이 코스피6000을 부르짖었고, 경주APEC을 즈음해 전격 타결국면을 맞이한 한·미 관세협상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선보일 듯 했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코스피5000 달성 가능 시기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57.0%가 2~3년내라고 답했습니다. 불과 5개월 전인 이재명 정부 초기 조사에서 39.0%만이 2~3년내에 가능하다고 답했던 것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제 충분히 오른 것 아니나”며 중장기적으로 더 가능성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시장으로 향했던 ‘서학개미’들도 최근 국내시장을 재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5일 오후 5시까지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나타난 최근 한달 주식시장 거래 주체들의 매매 흐름을 살펴보면, 개인들은 815억원 순매수, 외국인은 4427억원 순매도, 기관 8075억원 순매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7거래일 매매 흐름은 양상이 다릅니다. 개인들이 7조4762억원 순매수를 기록하는 동안 외국인은 5조8086억원 순매도, 기관은 1조4365억원을 순매도했습니다.
한국 시장이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동안 시장에서 이탈했던 개인들이 뒤늦게 한국시장에 복귀, 외국인들의 매도공세를 받아내는 모양새입니다.
3일과 4일의 연이은 시장 변동성 확대는 AI버블론에 기초한 관련 주식들의 폭락에서 기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삼성전자-현대차 CEO들의 깐부회동을 무색케하는 핵심칩 해외 반출 금지론을 꺼내들었고, 때마침 미국 시장에서 AI관련 종목들의 과도한 밸류에이션에 대한 성찰이 나오면서 미국의 기침이 한국의 몸살을 불러오는 형국입니다.
삼성증권은 이날 긴급 보고서를 통해 시장 하락 배경을 밝히며 "AI 관련 기술주들이 최근 증시 강세를 견인했으나 투자자들 사이에서 기업의 막대한 AI 투자 규모 대비 수익화가 언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전일 AI 주가 고평가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술주 위도의 매도세가 촉발됐다"고 분석했습니다.
AI는 시대의 대세이니 과거 닷컴버블때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희망론이 팽배했던 것이 불과 몇일 전 시장을 지배한 분위기였습니다.
5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우선주 포함)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6.61%로 4분의 1이 넘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3일 5만800원을 기록하다 이번주 들어 11만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4월9일 16만2700원을 기록했지만 지난 3일 63만원을 기록했습니다. AI관련 대장주 1,2위가 각각 2배와 4배 오르는 동안 시장을 떠났던 개인들이 뒤늦게 시장을 떠받치는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5년 전 저금리 빚투로 내집 장만을 했던 사람들이 금리 상승기 변동금리로 갈아타야 하는 지금, 관세협상이 끝났음에도 명확히 어떤 혜택이 있는지 불분명한 지금, 소상공인들의 대출 연체율이 올라가고 확대된 내년 예산을 편성한 지금, 개인들이 코스피 5000의 희망을 안고 시장에 뛰어드는 일이 책임있는 선택이길 바랄 뿐입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