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스토아 노조, ‘졸속 매각’ 비판… 절차 투명성 확보 촉구
SK텔레콤, “라포랩스와 사업적 시너지 고려해 협상 진행 중”
​​​​​​​라포랩스, “인수 자금 조달에 문제 없다”… 재무 불안 우려 반박

SK텔레콤 본사 전경.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본사 전경. SK텔레콤 제공

데이터홈쇼핑 1위 SK스토아의 매각이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모회사 SK텔레콤이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에 따라 SK스토아를 매각 대상으로 확정했지만, 자회사 내부에서는 “졸속 추진”이라며 파업까지 예고한 상태다.

SK스토아 노조는 유력 인수 후보인 4050 여성 패션 플랫폼 ‘퀸잇(Queenit)’ 운영사 라포랩스의 재무 불안정을 최대 우려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측은 당초 계획에 따라 매각 절차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모회사와 자회사 간 갈등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올해 초 삼일PwC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복수의 원매자와 협상을 진행해왔다. 당초 추석 전후로 매각 대상을 확정하고 실사에 착수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라포랩스 한 곳만 남으며 거래는 단독협상 형태로 좁혀졌다.

원매자가 한 곳으로 줄어든 상황에서도 절차가 속도를 내자,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매각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배경에는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압박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SK그룹은 통신과 인공지능(AI)을 핵심 축으로 삼고 비핵심 계열사 매각을 통해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SK텔레콤은 최근 해킹 사고 여파로 실적이 악화되면서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 건전성 확보와 투자 여력 확충에 나선 상태다. 이런 내부 사정이 맞물리며 SK스토아 매각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속도전’이 자회사 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SK스토아 노조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졸속 매각을 중단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SKT가 자회사를 헐값에 넘기려 한다”며 “매각 이후 구성원의 고용과 협력 중소기업의 판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SK스토아의 협력업체 중 약 70%가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판로 확대를 위해 데이터홈쇼핑 사업자에게 ‘중소기업 상품 편성비율 70% 이상’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적 성격을 지닌 SK스토아의 경영 불안이 현실화될 경우, 수많은 협력 중소기업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매각은 더욱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 역구도 M&A…라포랩스 매출 571억 vs SK스토아 3천억


노조가 이처럼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인수 주체인 라포랩스의 재무 여건과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라포랩스는 2020년 설립된 패션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4050 여성층을 주요 타깃으로 한 ‘퀸잇(Queenit)’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설립 4년 만에 누적 85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아직 단 한 번의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지난해 기준 라포랩스의 매출은 571억원, 영업손실은 74억원이다.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13억원 수준이며, 단기금융상품 340억원을 포함하더라도 가용 현금은 약 650억원에 그친다. 반면 SK스토아의 매출은 3023억원, 영업이익은 약 81억원으로 규모와 수익성 모두 라포랩스를 크게 앞선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매각가는 약 1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라포랩스는 부족한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자금 조달 방안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SK텔레콤 해킹 사태 여파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부 투자자가 참여를 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라포랩스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인수 자금 마련에 문제가 없고, SK텔레콤 측과의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업계의 시선은 냉담하다. 재무 여력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인수 대상인 SK스토아의 규모가 라포랩스보다 훨씬 큰 만큼 향후 경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IB 관계자는 “라포랩스가 인수 후 곧바로 흑자 전환을 이뤄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운영 여력이 부족한 기업이 무리한 인수를 시도할 경우 향후 재매각이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덩치 불균형 ‘데자뷰’… ‘정육각-초록마을’ 사태 떠올라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SK스토아 매각을 두고 2022년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 사례를 떠올린다. 정육각은 당시 연매출 400억원대의 온라인 정육 플랫폼이었지만, 초록마을(매출 1900억원)을 900억원에 인수하며 ‘덩치 불균형 M&A’의 대표 사례가 됐다.

당시 정육각은 보유 현금과 투자금 530억원에 외부 차입금 370억원을 더해 인수 자금을 마련했지만, 인수 후 두 회사 모두 적자가 누적돼 결국 지난 7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인수 이후 3년간 두 회사가 낸 누적 손실은 1000억원을 넘는다.

라포랩스의 현금 사정과 매출 구조는 당시 정육각의 상황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물론 SK스토아의 경우 안정적인 흑자 기업이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자금 부담 구조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제2의 정육각 사태’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업황이 하락세인 상황에서 SK스토아가 스타트업 자본에 편입되면 재투자 여력이 떨어져 장기적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단순한 거래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라고 말했다.

각 사 제공
각 사 제공

◇ SK텔레콤, 매각 기조 유지…“고용 안정·처우 승계 협의 중”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모회사인 SK텔레콤은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모양새다. SK텔레콤 측은 “라포랩스와의 사업적 시너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매각 절차를 계획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다만 “고용 안정과 처우 승계를 최우선 과제로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연내 매각 추진설에 대해서는 “연내 매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 방미통이 쥔 최종 열쇠… 산업 안정성·공적 책임 ‘균형의 시험대’


결국 이번 매각 성사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의 판단에 달렸다.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사업자인 SK스토아가 정부로부터 5년 단위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주주가 변경될 경우 경영 안정성과 자금 구조에 대한 추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현재 SK스토아는 내년 4월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방미통이 이번 거래에서 새 인수자가 공적 의무를 지닌 데이터홈쇼핑 사업의 안정성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를 핵심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홈쇼핑 사업자는 단순한 민영 방송 채널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일정한 공적 의무를 부여받은 사업자다. 특히 ‘중소기업 상품 편성률 7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새 인수 주체가 이러한 공공적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것은 방미통의 책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매각 절차가 장기화될 경우, 협력 중소기업의 납품 구조가 흔들리거나 경영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산업 생태계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방미통은 공공성 확보와 시장 안정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 미디어 정책 전문가는 “이번 거래는 단순한 M&A가 아니라 산업 정책의 신뢰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방미통은 공적 책임과 산업 안정성의 균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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