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과 외유 출장·부당 후원금·재산 증식 등 까도 까도 새 의혹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말이다. 중심에 선 인물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다. 정치권에 내로남불이 본격 등장한 건 1996년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했다. 15대 총선 직후 여당(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에 맹공을 퍼붓는 야당(새정치국민회의)에 ‘내로남불’로 맞섰다. 

물론 그 이전부터 쓰임새 많은 유행어였다. 1990년대의 시대상을 내포한 채 다양하게 변용돼 쓰여 왔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숙달운전, 남이 하면 얌체운전’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땅 사면 투기’ ‘내가 하면 예술,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등등.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9일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해외 출장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히며, “출장 후 관련 기관에 오해를 살 만한 혜택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 뉴시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해외 출장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히며, “출장 후 관련 기관에 오해를 살 만한 혜택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 뉴시스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중 잣대를 꼬집는 말답게 정치권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왔다. 정치권이야말로 ‘내가 하면 선이고 남이 하면 악’의 근원이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상대의 과거를 들춰 ‘내로남불’만 붙이면 훌륭한 논평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역시 시류 흐름에 한 발 늦는 3류 정치의 민낯이다.

김기식 금감원장의 문제도 처음엔 으레 그러려니 했다. 반대 진영에서 하는 일이란 카운터펀치는 아니더라도 잽이라도 날려봐야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니까. 아니면 누굴 호구나 바보로 안다는 뿌리 깊은 자기최면에 걸린 집단이니. 

그런데 양상이 묘하다. 시쳇말로 까도 까도 나오는 의혹이 내로남불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김 원장 관련 의혹은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해외 출장. 불법 후원금 수수 의혹, 재산 문제 등 점입가경이다. 

김 원장은 19대 국회의원 시절 ‘금융계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에게도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라고 질타했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투명한 ‘정의의 사도’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게 소위 ‘배지’ 또는 ‘완장’의 힘으로 비친다. 지금 현재 그의 모습을 보면.  

4년전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서슬 퍼랬다. 2014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진웅섭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에게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기업과 그것을 심사하는 직원의 관계에서 이렇게 기업의 돈으로 출장 가서 자고, 밥 먹고, 체재비 지원받는 것, 이것 정당합니까?”라고 몰아 붙였다.
   
그 자신은 어땠을까? 김 원장은 이 발언 앞뒤로 피감기관 예산으로 세 차례 출장을 다녀왔다. ▲2014년 3월, 한국거래소 지원(457만원)으로 2박3일 우즈베키스탄 ▲2015년 5월, 우리은행 지원(480만원)으로 2박4일 중국·인도 ▲2015년 5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지원(3077만원)으로 9박10일 미국·벨기에·이탈리아·스위스 등이다. 모두가 피감기관이다.

조현준 효성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조현문 부사장의 부인 명의로 5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수개월 뒤 금감원에 조 회장 비리 조사를 요구했다. 김 원장의 해명은 조현준 부사장의 부인과는 동창이라고 했다. 동창생의 후원금이라기엔 전후 상황이 수상쩍다.

그의 재산은 2013년 약 4억8000만원이었다. 3년 뒤 9억원대(후원금은 제외)로 불어났다. 현금 예금액이 늘어난 것만 3억5000만원이 넘었다. 19대 국회의원이 개인 용도로 쓸 수 있는 세비는 연 1억3796만원이었다. 김 원장은 "가족이 적어서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른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세금과 건강보험료 등을 떼고 나면 통장에 찍히는 돈이 월 900만원이 안 된다. 세비를 4년 내내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4억원을 모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재산 증식에 어떤 비법이 있었을까?

여기까지는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 불법 후원금 수수, 재산 증식 등의 의혹이다. 외유성 논란에 김 원장은 관행이었다고 항변하다. 청와대는 김기식 원장 거취와 관련 ‘하나도 변화가 없다’고 했다. 참여연대에 같이 몸담았던 조국 민정수석은 불법적 요인이 없다고 했다. 사법적 판단을 한 것이다. 잘못이다.

그를 둘러싸고 연일 터져 나오는 폭로가 폭주하고 있다. 그는 의연하다. 청와대는 여전히 김원장의 거취에 하나도 변동이 없다고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혹 제기를 하는 야당을 향해 ‘내로남불’이라며 총력 엄호를 하고 있다. 여론은 들끓는다.

여론의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건 의외로 외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그의 해외 출장에서 불거졌다. “정책담당 비서와 동행했다”던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그녀의 신분은 인턴 사원이었다. 그는 출장 후 인턴에서 9급으로 8개월 후 7급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6년 5월 독일·네덜란드·스웨덴 등 일주일간 출장에는 단 둘이 갔다.  
   
공시족이 넘쳐나는 공시공화국이 청년들이 발끈한 건 당연지사다. 아니 공무원 생활 10년이 돼도 7급 승진을 못한 이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청와대는 “위법하지 않다”고 말한다. 검찰의 외유성 출장 의혹 수사의 결말을 보는 듯하다. 수사 가이드라인이 뭐 별건가? 

그의 해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치보다 투명성과 도덕성이 필요한 자리가 금융 수장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흙탕물이니 언제쯤 맑아질까 가늠조차 어렵다. 대한민국 금융 수장에 걸맞는 인물은 과연 논란의 중심, 내로남불의 표적이 된 그밖에 없을까? 그가 아니면 대한민국 금융의 미래는 없는 걸까?

청와대의 방패가 강하면 강할수록 창은 예리해 진다. 여당의 옹호가 강하면 강할수록 부메랑이 된다. 때로는 읍참마속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은 사람이 남에게 엄격을 요구하는 것이 내로남불이다. 남의 이중잣대를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내재된 이중성이 바로 내로남불이다.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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