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시스

일부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진보진영 일각의 담론은 도덕적 엘리트주의자를 ‘자처’하는 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현실에서 유리된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방향을 잃고 다수의 지지와 사회적 연대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사회적 추동력을 상실했다.

아울러 페미니즘 일각은 취사선택되거나 왜곡된 통계와 사실관계를 유포함으로써 공포를 확산시키는 황색저널리즘과 공포상업주의에 호소해왔다. 나아가 페미니즘 일각은 남성집단 전반에 ‘잠재적 가해자’ ‘혐오성향’ ‘한남’ 등의 낙인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분리주의 성향으로 치달았다. 

물론 이러한 페미니즘 일각의 문제는 페미니즘 자체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유리된 ‘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에 집착하는 진보·좌파 일각의 잘못된 경향은 글로벌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은 이를테면 백인 하층계급 남성 노동자들이 보수반동이 됐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이 왜 이민자와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심에 사로잡히게 됐는지에 대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렇듯 ‘자칭’ 도덕적 엘리트들이 다수의 대중을 차별주의자와 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 관행은 결국 트럼프 당선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졌다. 

여러 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포 상업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언론, 관료, 학자 등 엘리트 집단은 대중의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겁주는 이야기’들을 즐겨 사용하지만, 이는 대중의 정치적 주체화를 낳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전반의 정치적, 도덕적 퇴행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프랭크 푸레디라는 사회학자는 이제 좌파와 우파는 정책과 강령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대해 겁에 질려 있는지’로 구분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는 개혁과 변화를 향한 추동력보다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반동으로 이어졌다. 

<포비아 페미니즘>은 그동안 ‘약자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백지수표 아래 양해됐던 페미니즘 일각의 잘못된 관행과 담론에 대한 일련의 비판적 논점을 제기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의 관행을 비판한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문제제기하는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때문에 그들이 문제제기하는 현실, 이를테면 남녀임금격차와 가사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여성대상의 범죄 문제에도 접근한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에 접근할수록 왜 남성과 여성의 대결 프레임이 무의미한 것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불행과 차별을 겪는다. 여성이 더 많은 가사노동을 전가 받는다면 남성은 야근, 잔업 등의 더 많은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다.

「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인간사랑·2017)
「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인간사랑·2017)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녀 모두가 환영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시간당 임금의 상승과 노동시간 줄이기,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정책 등이다. 이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긍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여성대상의 범죄를 환영하는 남성은 아무도 없다. 여성의 복지와 치안활동에 많은 남성이 관련자로 종사하거나 납세자로서 그 재원을 조달한다.

그러나 여성을 일방적인 약자나 피해자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는 포비아 페미니즘의 논의구도로는 절대로 젠더이슈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합의를 이룰 수 없다. 결국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남녀 대결구도보다 더 나은 논의의 양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포비아 페미니즘의 폐단은 단지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학자의 곡학아세 그리고 인터넷의 과열된 논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포비아 페미니즘이 부추기는 타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 그리고 ‘대결구도’와 ‘낙인프레임’은 보통 사람들에 대한 집단 폭력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이는 성소수자와 같은 소외계층과 약자에 대한 괴롭힘으로도 이어졌다. 포비아 페미니즘 집단이 저지르는 사이버 폭력은 그 양상에서 일베가 과거 저질렀던 사이버 폭력 및 집단괴롭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석연치 않은 폭로로 전국적으로 성추행을 일삼는 악덕업주로 보도되어 생활파탄에 이른 한 자영업자의 사례에서부터 시작해서, SNS의 성폭력 폭로 캠페인이었던 ‘해시태그’ 운동 당시 있었던 ‘일부’ 거짓 폭로 때문에 고초를 겪은 사람들에 이어, 성소수자와 여성 자신이 특정 페미니즘 이슈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협박과 신상털이 그리고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는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로 피해자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사연들로 구성된 이 대목은 포비아 페미니즘의 확산이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의 본질이 어쩌면 젠더갈등 이전에 세대갈등 내지는 계층갈등의 문제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페미니스트와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논쟁이 성립한다면 다행이지만, 애초에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는 같은 진영의 논자가 아니라면 토론을 하는 것조차 꺼려하기 때문에 논쟁이 성립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책이 상정하고 있는 독자는 이미 페미니즘이나 안티페미니즘 등의 ‘강한’ 신념을 형성한 독자가 아니다. 단지 성별대결구도로는 어떠한 젠더문제도, 그 이면에 잠복한 계층갈등 및 세대갈등도 풀어나갈 수 없다는 원칙론을 이야기하며 사실과 논리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페미니즘이나 안티페미니즘과 같은 주의주장을 떠나 현재 과열되고 있는 젠더논쟁에 혼란감을 느끼는 20~30대 남녀 독자들이 균형감각을 가지고 스스로 혼란한 세태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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