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보 대의원 수 고려하면 힐러리와 근본적 격차 좁히기에는 한계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경선에서 압승하며 희망의 불꽃을 지폈다. 샌더스는 이날 치러진 워싱턴·알래스카·하와이주 경선에서 승리해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대의원 수 격차를 줄였다.
샌더스는 워싱턴주에서 81.6%를 득표해 18.4%에 그친 클린턴을 크게 앞섰다. 알래스카주에서도 72.7%로 27.1%의 클린턴에 압승했다. 개표가 시작되지 않은 하와이주에서도 샌더스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어 지난 1일 ‘수퍼 화요일(11개주 동시 경선)’ 이후 승승장구하던 클린턴의 기세에도 제동이 걸렸다.
특히 산업이 발달해있는 워싱턴 주에서는 청년·진보층이 몰려있는 도시와 백인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등록당원만이 참여하는 코커스(당원대회) 방식이 열성 지지자들이 많은 샌더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또한 반(反) 무역협정과 경제 개혁을 전면에 앞세운 '샌더스 돌풍'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턴턴의 대세 굳히기 흐름을 뒤집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까지 클린턴이 확보한 대의원 수는 모두 1천234명으로, 샌더스(956명)를 크게 앞선다. 슈퍼 대의원을 포함하면 1천703명 대 985명으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클린턴의 대의원 수는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 수를 뜻하는 '매직넘버'인 2천383명의 70%에 이르지만, 샌더스는 40%에 그치고 있다.
샌더스는 워싱턴·알래스카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우리는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 이제 누구도 우리가 모멘텀을 얻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본선 경쟁력에서 자신이 클린턴에 앞서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주 폭스뉴스가 실시한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 샌더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가상 맞대결에서 14%포인트 차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은 같은 조사에서 11%포인트 차 우위를 보였다. CNN·ORC 여론조사에선 트럼프에 20%포인트 차 승리가 점쳐져 12%포인트를 앞선 클린턴보다 본선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미국 대선이 중반으로 접어드는 요즈음 "버니가 불타버렸다"(Bern has burned out)는 비슷한 표현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의 애칭 '번(Bern)'과 '불타 없어지다(burn out)'를 조합한 말이다. 여기에는 샌더스 돌풍은 이미 '끝장났다'는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민주적 사회주의', '99%의 혁명'을 말하는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은 74세의 고령에도 미국을 바꿀 차세대 대통령 후보로 주목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며 2008년 대선 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러나 샌더스는 오바마가 아니었다.
오바마와 샌더스의 차이는 '실용주의'와 '이상주의'로도 구분할 수 있다. 오바마가 테크노크라시(기술 관료주의)를 통한 실용정치를 추구한다면 샌더스 의원은 이상으로만 여겨지던 개념을 이제는 현실로 만들자고 얘기한다.
이런 특징은 두 사람의 유세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샌더스 의원은 그가 종종 사용하는 '혁명'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미국 정치경제 시스템의 본질 자체를 뒤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비해 오바마의 캠페인은 훨씬 '덜' 이념적이면서 타협적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등을 논할 때 민주당 진보세력 외에도 무소속, 보수주의자들을 최대한 끌어들여 지지층을 넓히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거전문가들은 샌더스가 자유무역협정에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월가와 대형기업에 유리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의 흐름 속에서 클린턴으로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무역·산업·통상 분야의 공약을 재점검하고 월가 개혁과 같은 진보적 어젠더를 놓고 선명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가다듬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샌더스-힐러리 "겉은 웃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