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중국에서 대대적인 전략 수정과 인적 쇄신을 진행 중이다. 곤두박질친 현대차·기아 점유율을 되돌리기 위함이다. 내년 중국의 자동차산업 외국자본 지분 제한 철폐를 앞둔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대차그룹 중국 법인의 현지 고위 임원의 이탈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차와 중국 베이징자동차 합자 회사 베이징현대의 판징타오 판매부본부장이 사임한 데 이어 이달 리훙펑 전략 담당 부사장이 회사를 떠났다.

앞서 지난 3월 샹둥핑 베이징현대 판매본부장도 회사를 그만뒀으며, 비슷한 시기 기아의 중국 현지 합자 법인 둥펑웨다기아의 리펑 총경리(대표이사)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015년 6월 한국을 국빈 방문한 장더장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과 만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의 새로운 전략

현대차 중국 법인의 고위직 이탈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정의선 회장에게 물려줄 즈음 시작됐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0월 회장직에 오른 직후 중국 출시 제품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대신 강도 높은 인적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회장 시절의 전략과 전술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차는 중국 진출 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시장을 점유하는 방식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업체의 성장과 소비 수준 향상으로 이 같은 전략이 더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이징현대의 올해 1~10월 누적 판매는 약 29만대로, 올해 목표의 52%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줄어든 수준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 전체 글로벌 판매가 8.1%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소 폭이 두드러진다. 

중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국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전략이 수립되면 팀을 다시 짜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했다. 정의선 회장이 중국 전략을 새로 짜면서 기존 임원을 내보내고 새로운 전략에 맞는 조직을 다시 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표적인 사례가 리펑 총경리의 사퇴"라며 "그는 정몽구식 '현대속도' 실현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했다. '현대속도'란 글로벌 완성차업체 가운데 가장 늦게 중국에 진출한 현대차가 눈부신 속도로 중국 5대 자동차 업체로 성장한 성공 신화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2019년 중국을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넷째)이 중국 파트너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 첫째가 최근 인사에서 중국사업총괄 사장에 오른 이혁준 전무. /사진=중국 뉴스 갈무리

고급차·친환경차 시장 공략

현대차·기아가 성공 신화를 버리고 중국 전략을 새로 짜는 이유는 시장 상황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져서다. 현대차가 처음 중국에 진출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주요 경쟁상대가 일본차였다. 당시 중국 현지 자동차 업체는 무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 현대차를 중국 시장에서 밀어내는 것은 중국 자동차 업체다.

또한, 중국 자동차 시장은 빠르게 친환경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 중국이다. 하지만 현대차나 기아는 중국에서 여전히 내연기관차, 그것도 중저가 시장에서 경쟁했다. 한때 100만대를 훌쩍 넘던 중국 판매량이 50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5월 기아 중국법인 총경리에 오른 류창승 전무는 "앞으로 10만위안(약 1861만원) 이하 차량은 생산하지 않겠다"며 "매출 증대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업체가 득세하는 중저가 시장에서 벗어나 고급차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도 지난 5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 브랜드를 중국에서 출범시켰다. 고급차와 전기차, 수소차 등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와 중국 베이징차의 합작 법인인 베이징현대 공장. /사진=베이징현대

베이징차와 결별 준비하나

내년부터 중국에서 외국자본에 대한 자동차산업 지분 제한이 완전히 철폐되는 점도 정의선 시대가 정몽구 시대와 다른 점이다. 정몽구 회장 시절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할 때는 무조건 현지 기업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베이징차다. 현대차는 합작 이후에도 자동차 부품 조달 권한을 이용해 베이징차로의 기술 유출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이 독자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되면 베이징차와의 결별은 예정된 순서다. 중국에서는 현대차가 베이징차와의 결별을 위해 일부러 회사의 실적 악화를 내버려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징차가 가진 50%의 합작사 지분을 인수할 때 가치를 최대한 적게 유지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기아는 이미 합작 상대였던 둥펑차와 결별했다. 기아는 둥펑차를 소유한 위에다그룹이 보유한 둥펑위에다기아의 잔여 지분 25% 매입 협상도 진행 중이다. 기아가 잔여 지분을 사들이면 100% 현지 법인으로 사업을 운영하게 된다.

[스트레이트뉴스 유희석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