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원인은 한국경제가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

어릴 때는 한창 자라다가 어른이 되면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개도국은 성장률이 높고 경제가 성숙 단계에 이른 선진국은 성장률이 낮다.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성장 동력이 자연히 약화되기 때문이다. 전후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한 일본의 성장률이 낮아진 것이나,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던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조금씩 하락하여 이제는 7%대 성장도 버겁게 된 것도 모두 그런 현상이다.

이렇게 경제가 발전하고 성숙함에 따라 성장률이 하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증가율의 감소와 인구구조의 노령화에 따른 노동력 증가의 쇠퇴다. 우리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 개도국은 인구성장률이 높기 때문에 인구피라미드에서 젊은 인구가 노인인구에 비해 많다. 생산인구는 많고 부양인구는 적은 인구구조는 경제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그런데 선진국이 될수록 사망률과 출산율이 감소하여 인구성장률이 떨어지고 노인인구가 젊은 인구에 비해 많아지는 쪽으로 인구구조가 변한다. 노동력의 양적 증가가 쇠퇴하더라도 이를 질적인 증가에 의해 만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교육수준이 낮을 때는 교육을 급격하게 확대하여 인적 자본을 빠르게 축적할 수 있지만, 이미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더 이상의 인적자본 축적은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도 상당부분 위와 같은 현상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이다. 저출산·노령화는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이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고, 노령화의 속도는 가장 빠르다. 과거 인구증가의 영향으로 아직 전체인구수는 줄지 않고 있지만, 금년부터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인구, 즉 생산가능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몇 년 후면 전체인구수도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이후 갈수록 인구감소에 가속이 붙고 노령화는 더욱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한국경제가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모형의 ‘성공 신화’ 때문에, 여건과 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하지 못하는 ‘성공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박정희 모형의 핵심은 정부주도의 급속한 산업화 전략이다.

정부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고 대통령이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는 등 정부가 경제를 주도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시중은행을 소유하고 금융자원을 통제하여 정책목표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소위 ‘관치금융’이 만연했다. 그리고 자본에게는 특혜를 주고 노동운동은 탄압하여 저임금 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이윤을 확대하고 투자율을 제고하고자 하였다. 즉 자본축적의 극대화를 통한 급속한 산업화를 추구했다.

박정희식 추격형 성장체제는 위와 같은 성장 전략을 통하여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일구어냈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여건에 부합하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는 인구과잉의 시대였다. 당시 노동력은 풍부했고 인구는 빠르게 성장했다. 게다가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교육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반면 자본은 거의 축적되지 않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따라서 자본축적에 따른 성장효과는 매우 컸다. 그러나 1980년대 말 한국경제가 ‘3저호황’을 누리는 시점이 되었을 때 인구과잉의 시대는 끝났다. 이후로는 오히려 자본과잉의 시대가 시작되어 상황은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정책기조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 자본축적 극대화를 위해 실시했던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을 자본과잉 시대에도 유지한 까닭에 실효노동력은 갈수록 감소하고 자본과잉의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극단적인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의 문제는 자본우대·노동하대 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노동을 하대하니 아이를 낳아 기를 능력도 떨어지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진입 이전에 학력경쟁과 스펙경쟁은 치열하게 하지만, 일단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는 선진국 노동자들에 비해 교육훈련과 자기계발을 소홀히 하여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노동을 하대하는 정책의 부작용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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