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최초’ 기록 제조기…여성 1호 지점장에서 은행장까지
“달리는 말은 멈추지 않는다”…지주전환 본격화, 글로벌 광폭 행보

작년 11월 17일 취임식에서 수협은행기를 흔드는 강신숙 Sh수협은행장. 수협은행 제공
작년 11월 17일 취임식에서 수협은행기를 흔드는 강신숙 Sh수협은행장. 수협은행 제공

금융회사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별개로 유독 여성들에게 두터운 유리천장이 드리워져 있다. 고객의 자산을 책임지는 일을 여성이 맡는 것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여성이 금융회사 임원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사감’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ESG경영을 외치며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Social) 이슈에 대한 관심 제고의 과정에서 성(Gender)에 무관한 공평한 기회의 장이 열리자 금융권에 C레벨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 선구자들을 따라가본다.<편집자 주>

“1979년 스무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수협에 입사했을 당시, 대출 창구에 앉아 있는 여직원은 없었습니다. 수신(예금과 적금) 업무만 담당해서는 책임자로의 승진 기회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 날부터 여신업무 규정집을 구해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통째로 외웠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대출 업무를 당당하는 남자 선배들이 저에게 관련 규정을 묻기에 이르렀고, 이를 눈여겨본 당시 지점장님이 수협은행 최초로 여성인 저에게 대출업무를 맡기셨습니다. 수협은행 최초 여성 행장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강신숙 수협은행장 회고담)

작년 11월 공적자금 상환을 마치고 새롭게 웅비하려는 Sh수협은행장 자리는 내부 출신 여성인 강신숙 행장에게 돌아갔다. 쟁쟁한 내외부의 후보자들을 뒤로하고 강 행장이 국내 세 번째 여성은행장이자 수협은행 최초의 여성 행장에 오르자 강 행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61년생으로 전북 순창 출신인 강 행장은 전주여상을 졸업하던 79년 수협중앙회에 입회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수협은 신경분리 전이었고, 가뜩이나 보수적인 은행문화에 어업인들의 금융지원과 경제사업을 함께하는 공적 기능을 담당했던 수협의 문화는 더욱 그러했다.

2013년 국내 1호 은행장이 된 IBK기업은행 권선주 행장은 경기여고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20년 2호 은행장이자 최초의 여성 민간은행장이 된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나왔다. 그 나이 또래 엘리트 여성들이 거쳤음직한 경력이다.

강 행장은 그런 혜택(Head Start)을 안고 시작하지 않았다. 여상을 졸업한 젊음을 무기로 은행일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학사를 마쳤고, 일하면서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으며 문무의 균형을 맞췄다. 다만 앞선 두 행장과 강 행장의 공통점을 찾자면 권선주 행장과 같은 전북 출신이라는 점과 유명순 행장과 마찬가지로 기업심사부장을 거쳤다는 점이다.

2001년 준비된 행원 강신숙에게 또다시 도약의 기회가 찾아온다. 실적부진으로 폐쇄 직전이던 오금동 지점장으로 이제 갓 40살이 된 강 행장이 발탁 임명되며 수협은행 1호 여성지점장 타이틀이 주어진다. 어찌보면 패전투수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지만 강 행장은 특유의 뚝심과 차별화된 영업전략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오금동 지점을 전국 1위로 올려놓는다.

IMF구제금융을 겪으며 강 행장이 오금동지점장이 되던 그해, 수협은행은 정부로부터 1조1581억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는다. 당시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이었다는게 강 행장의 회고다.

“은행을 찾는 분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 분은 그저 왔다가는 손님에 불과합니다. 담당자가 조금만 관심있게 보면 ‘고객’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적극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고객 1:1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 저희 지점의 전략이었습니다. 저희는 ‘스스로 우리 지점을 방문한 고객은 절대 그냥 보내지 않는다’는 명제 아래 직원 개인별로 ‘고객관리노트’를 만들고 고객과 고객 가족의 대소사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한편, 자금흐름이나 투자성향, 관리목표 등을 정리해 맞춤형 금융정보와 서비스를 수시로 제공해 드렸습니다.”

직원들의 긍정적인 영업자세 변화로 고객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 결과 오금동 지점은 강 행장이 지점장을 맡은 2년 동안 8분기 연속 실적 1위 영업점에 오른다. 자리를 옮겨 서초동지점장이 된 강 행장은 다시 7분기 연속 지점을 전국 1위로 만들며 오금동지점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렇게 강 행장은 최초의 여성 부장, 최초의 여성부행장, 최초의 여성 상임이사 등을 거쳐 수협은행 두 번째 내부출신 은행장이자 최초의 여성 행장이 됐다.

지난 9월 말 마지막 순회지 경북금융본부를 찾아 현장경영을 실천한 강신숙 행장. 수협은행 제공.
지난 9월 말 마지막 순회지 경북금융본부를 찾아 현장경영을 실천한 강신숙 행장. 수협은행 제공.

작년 11월 은행장에 오른 직후 산적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강 행장은 전국 영업본부 순회에 돌입했다. 몸에 밴 현장경영을 통해 직원과의 스킨십을 중요하게 여긴 탓이다.

매달 전국을 누빈 끝에 지난 9월 말 19개 지역본부 순회를 마친 강 행장은 해당 지역 주요 고객사 방문을 통해 본부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가 하면, 지역본부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마케팅 노하우인 ‘3방·5통·10사’ 실천을 강조했다. 3방·5통·10사란 ‘하루에 고객사 3곳 이상 방문, 5명 이상의 고객과 통화, 고객의 상황과 니즈를 분석해 최적의 지원방안을 10번 이상 생각한다’는 뜻으로 강행장이 고안한 마케팅 기법이다.

발로 뛴 결과는 올해 상반기 결산 결과 숫자로 증명됐다.

지난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876억원으로 전년 동기(1707억원) 대비 9.9% 증가했다. 반기 말 기준 총 자산(신탁 포함)도 66조8276억원으로 1년 사이 5조2940억원(+8.6%) 늘었다. 자산과 수익이 늘면서도 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됐다. 심사부장 출신 답게 강 행장은 항상 연체율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직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1분기 0.4%까지 올랐던 연체율은 2분기 말 0.3%로 다시 안정화됐고, 동 기간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0.52%에서 0.46%로 내려왔다.

강 행장은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산을 키우며 내실을 기하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공적자금 조기상환 뒤에 자신에게 내려진 수협은행 금융지주 전환을 목표로 외형 확대를 위한 실탄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수협은행은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3조7000억원으로 불렸다. 2016년 신경분리로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이 분리된 이후 빠르게 규모를 키워야 했지만 예보와의 공적자금상환합의 때문에 공격적인 확장에 제약이 있었다. 그 결과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의 유상증자에 그쳤다.

하지만 7574억원 상당의 공적자금을 국채 매입 후 현물로 상환하는 안이 받아들여지면서 예보는 조기 상환효과를 수협중앙회는 이자 지급 부담을 덜게 됐고, 배당금을 공적자금 상환에 써왔던 수협은행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금융지주로의 전환에는 여전히 수협은행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데다 자회사로 점쳐지는 캐피탈과 자산운용사 M&A를 위한 자금 동원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비은행 자회사로 증권사를 인수하면 좋겠지만 현재 업황이나 자금 동원 규모를 고려할 때 적합하지 않다는 게 안팎의 판단이다.

대신 AAA(무보증사채) 등급을 받고 있는 높은 신용도를 가진 수협은행이 저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인수할 자회사인 캐피탈사에 공급해 공격적인 예대마진 수취가 가능하다. 또 수협중앙회와 수협은행의 자금을 운용할 자산운용사를 내부에 둘 경우 현재 외부로 지급하는 위탁운용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외형을 키우고 안정적인 자금 수혈을 위해 강 행장은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싱가포르로 날아간 강 행장은 수협은행의 비전과 경영현황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9월 MUFG 아시아지역그룹 본부를 방문해 마크 헨더슨 아시아지역그룹대표와 다양한 글로벌 IB사업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강신숙 행장. 상호 협력에 노력한 것에 대한 감사패를 받았다. 수협은행 제공.
지난 9월 MUFG 아시아지역그룹 본부를 방문해 마크 헨더슨 아시아지역그룹대표와 다양한 글로벌 IB사업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강신숙 행장. 상호 협력에 노력한 것에 대한 감사패를 받았다. 수협은행 제공.

지난 일정에서 일본 미즈호은행과 ESG연계 외화 신디케이티드론 2억 달러 유치 약정을 체결하는가 하면 독일 코메르츠은행과 일본 MUFG은행 아시아지역그룹 본부를 방문해 상호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강 행장은 “수협은행은 앞으로도 마부정제(馬不停蹄)의 자세로 다양한 글로벌 투자은행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해 나아갈 것”이라며 “아울러, 외화 조달처 다변화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고객들의 금리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마부정제’란 “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으로 강 행장의 실천경영 철학을 담은 고사성어다.

SH수협은행 관계자는 “강 행장께서는 한글날 연휴에도 9일부터 15일까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리는 IMF 및 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차 해외일정에 나선다”며, “수협은행의 경쟁력을 알리고 장재적 해외투자자 발굴을 이어가 현장경영을 해외로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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