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엄주성 대표, 리스크관리·수익증대 ‘두마리 토끼’ 쫓아
2023년 라덕연·영풍제지 휘청…브로커리지 왕의 IB도전

지난 8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에 오른 엄주성 사장. 키움증권 제공.
지난 8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에 오른 엄주성 사장. 키움증권 제공.

리스크가 상존하는 금융업계에선 2024년을 맞으며 다수의 CEO가 바뀌었다. 세대교체와 새로운 비전제시를 통한 조직 정비의 일환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각 금융권 대표 기업들의 새로운 수장을 통해 각 조직이 그리고자 하는 미래를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금융투자업계에게 2023년은 잊지 못할 해로 기억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금리인하와 투자시장 성장으로 호황을 누리던 증권사들이 수익이 급감하고 성장동력을 의심받았던 해다. 특히 지난 해 4월 이른바 라덕연 사태로 통칭되는 CFD(차액결제거래)발 주가조작 사태 여파로 김익래 회장의 퇴진, 뒤이어 10월 영풍제지 주가급락 리스크관리 실패로 황현순 전 사장의 사퇴까지 2023년은 승승장구하던 키움증권에게 뼈아픈 상흔을 남긴 해였다.

대한민국 증권사 중 키움증권은 여느 대형사와는 또 다른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회사다. 2000년 문을 연 이후 지점을 두지 않는 ‘온라인증권사’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종합증권사임에도 개인고객 중심의 주식중개(브로커리지) 업무에 집중해 오늘날 기존 대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국내 개인고객 주식거래중개 점유율(M/S)이 약 30%로 60개 증권사가 경쟁하는 금투업계에서 난공불락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영풍제지 사태 이후 11월부터 신용비율을 상향해 점유율이 내려간 것이 연말 기준 28% 수준이다. 이나마도 최근 한도 완화 조치로 곧 다시 30%로 복귀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국내 뿐 아니라 수수료가 비싼 해외 주식거래 서비스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미래에셋증권, 두터운 고액자산가 층을 자랑하는 삼성증권과 함께 빅3 증권사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한 증권사 전략기획본부장은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지점도 없고 IB도 약한 키움증권의 미래가 밝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오랜 시간 이어져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키움증권은 오히려 수익성을 키워왔다”며, “디지털전환이 금융업계의 화두가 되고 코로나19를 거치며 유튜브로 투자공부에 나선 개인들이 시장의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자 오프라인 지점 운영의 부담이 없는 키움증권에겐 오히려 퀀텀점프(대약진)가 가능한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의 핵심 비즈니스는 주식중계서비스지만, 브로커리지 수수료(commission)가 핵심 수익원은 아니다. 오히려 거래를 하다가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줘 지렛대(leverage) 투자를 할 수 있게 돕는 ‘대출’이 더 큰 사업이다. 계열사인 키움YES저축은행은 키움증권 고객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고금리 대출을 해주며 키움증권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 현재 개인별 최대 8억원까지 연 8.9%로 대출을 해준다.

기본적으로 고객 중심의 거래시스템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체방송 등을 통해 정보를 공급하는 일 등이 키움이 잘해온 일이다. SNS를 활용하고, 키움의 고객인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키움히어로즈 야구단 메인 스폰서가 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확실한 장기를 가진 키움증권이 주가조작이라는 이슈에 휘말리게 된 것은 이러한 사업 포트폴리오의 단순함과 그 단순한 성공방정식을 적절하게 리스크관리 하지 못한 시스템 부재의 결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키움증권이 선택한 ‘해결사’가 엄주성 대표다. 엄 대표의 CEO 등극은 장기근속자가 많은 키움증권 직원들에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키움증권은 타사가 개인이나 팀 단위 능력에 기반한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에 비해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회사”라며, “보통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타 부서로의 전환이 꺼려지지만 키움에선 아주 특화된 일부 분야 빼고는 순환보직이 매우 자유롭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회사를 이끄는 경영진은 회사 초창기부터 벤처 정신을 가지고 함께해왔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자리”였다며, “알게 모르게 이른바 성골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직원들이 느끼는 정서”라고 덧붙였다.

그런 관점에서 대우증권 PI팀장 출신으로 2007년 키움증권에 경력 입사한 엄주성 대표의 지난 8일 대표이사 등극은 안팎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출신인 엄 대표는 당시 국내 1위 증권사였던 대우증권 주식인수부에 93년 입사해 약 15년간 근무한 후 2007년 키움증권 PI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회사가 설립 8년차로 개인고객 주식위탁거래에서 어느정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할 때 쯤이다. IB부문으로의 확장을 꿈꾸는 비교적 신생 회사로 1등 회사에서 이동한 사례다.

PI(자기자본투자)란 회사의 여윳돈, 즉 고유계정에 있는 자금을 굴리는 일이다. 증권회사 스스로가 투자전문가인 만큼 각종 수수료 비즈니스와는 별도로 운용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자리다. 대우증권시절부터 주식시장에 진입할 만한 성장기업들을 고르는 일을 했던 엄 대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의 고유자금을 굴리는 일은 회사 전체의 자금 사정, 회사가 투자하고 있는 포트폴리오에 대해 시시각각 그 변화를 쫓아야 하는 일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기민해야 한다.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작은 팀을 본부로 격상시키며 팀장, 이사, 상무, 전무까지 오른 엄 대표에게 2022년 전임 황현순 대표의 사장 발탁과 함께 전략기획본부장 자리가 주어진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가 회사 업무 전체를 조망하는 임원(Generalist)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전략기획본부장 1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은 엄 대표는 지난해 부사장 자리에 오르지만 CEO 등극까지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키움증권을 할퀴고 간 일련의 사태는 조직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관리 전문가를 CEO자리에 앉혔다.

증권업계에서 리스크관리란 단순히 위험한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관리를 통해 위험을 극복하고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위기가 곧 기회이기 때문에 그 기회비용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냐에 승부가 난다. 엄 대표가 늘 해오던 일이다.

리스크관리를 위해 키움증권은 엄대표의 주도 하에 현업 각팀-리스크관리부서-감사실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핵심은 각 단위별 분절된 리스크관리가 아니라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유기적 시스템의 구축이다. 특히 영업부서 각 팀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그 리스크를 염두에 둔 진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벗어날 경우 즉각 경보가 울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는 입장이다.

리스크관리를 강화하면 필연적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

이미 키움증권은 지난 4분기 영풍제지 관련 미수금으로 4300억원을 손실로 반영, 분기 적자전환 한 상태다. 변동성이 커진 위탁매매 부분을 보완할 IB부분의 성장이 요구된다.

키움증권은 코로나19 시기 연간 조단위의 이익을 올리며 유보된 자금을 모아 초대형IB(투자은행) 인가가 기준인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을 충족하고 있다. 이미 인가에 대비해 각 부문별로 타사에서 실력있는 IB인력들을 다수 확보한 상황이다. 다만 지난해 4월 CFD사태로 인해 인가 작업이 멈춘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고금리 시절 대형사들이 발행어음을 통해 경쟁력있는 금리를 제시하며 고객 자금을 흡수, 이를 활용한 투자재원으로 더 큰 수익을 냈던 기회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증권사들은 지난해 부동산PF, 해외부동산 투자 등으로 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인가가 뒤늦어진 것이 키움증권 입장에서 행운일 수도 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권투자 인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잡은 온라인 채권매매, 펀드 등 자산관리 부문의 약세를 보여왔지만 ETF중심의 패시브 시장이 열려 주식처럼 펀드를 거래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키움 입장에선 긍정적이다. 고객들을 활용해 다소 열위한 상태인 키움자산운용의 ETF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메리츠증권 금융담당 조아해 연구원은 “키움증권은 현재 업계 최대 화두인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노출)가 업계 평균인 자기자본 대비 48%보다 현저히 낮은 20%로 가장 낮고,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에도 불구 70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이행하고 있다”며 키움증권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했다.

한 증권사 대표는 “덩치는 대형사지만 대형사 같지 않은 시스템을 가졌던 키움이 지난해 내홍을 겪으며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안다”며, “여러 부정적 이벤트로 손상된 고객 신뢰만 되찾는다면 오히려 깔끔한 비즈니스 구조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더해 리스크관리 강화와 수익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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