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해진공-하림 컨소 협상 불발
재매각 모색 속 불확실성 최고조

산은·해진공과 하림 컨소시엄의 매각 협상이 불발되면서 HMM의 주인 찾기가 새로 진행될 전망이다. HMM 제공
산은·해진공과 하림 컨소시엄의 매각 협상이 불발되면서 HMM의 주인 찾기가 새로 진행될 전망이다. HMM 제공

국내 유일 국적선사인 HMM의 새주인 찾기 여정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팬오션)·JKL파트너스 컨소시엄과 7주동안 협상을 벌였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이에 산은과 해진공 등 매각 측이 언제 재매각에 나설지 이목이 집중된다.

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산은과 해진공은 하림 컨소시엄에 HMM 인수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HMM은 당분간 채권단 관리체제로 유지된다. 향후 산은과 해진공이 적정한 시기에 HMM 재매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우선 협상 대상자였던 하림이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지만, 정책 금융 당국은 이 사건을 교훈 삼아 제대로 된 매각을 위한 입찰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해운업황 침체와 HMM 수익성 악화로 기업가치 하락이 예상되면서 재매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HMM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탓에 단기간에는 재매각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최근 물동량 기준으로 각각 세계 2위와 세계 5위 해운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와 독일 하팍로이드가 손을 잡고 '제미니 협력'이라는 새로운 해운 동맹을 결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기존 HMM이 소속된 해운 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는 하팍로이드가 빠져나가면서 아시아권 선사만 남은 상황으로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동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운임이 조정되고 과거 출혈 경쟁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홍해지역에서 일고 있는 전쟁 국면과 선사 공급 과잉 등 문제가 산적해 해운산업에 미칠 시황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업황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HMM의 지난해 연결기준 실적 전망치는 매출 8조4305억원, 영업이익 5703억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년(2022년) 대비 매출은 반토막 수준, 영업이익은 94.3%나 쪼그라든 수치다.

이에 적절한 인수자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HMM의 기업가치가 낮아지는 상황에 가격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운 탓이다. 하림 측이 제시했던 6조4000억원 이상을 써낼 기업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도 산은과 해진공이 매각 이후에도 경영에 참여하는 등의 이유로 협상이 결렬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연합뉴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연합뉴스

 

하림 측 주장에 따르면 인수자에게 최대주주 지위는 주지만 경영 주도권을 담보해주지 않으면서 사실상 산은과 해진공이 계속해서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는데, 이 같은 조건은 다시 인수자가 나타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하림 측은 "HMM의 안정적인 경영 여건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건설적인 의견들을 제시하며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최종적으로 거래 협상이 무산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간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 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가운데 HMM의 새로운 인수후보들로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했었던 동원산업을 비롯해 LX그룹 등이 거론되는 한편 대기업 등판설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앞서 중견기업인 하림의 자금 조달 계획에 의문이 이어졌던 탓에 대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디.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자금 조달 계획이 본래 대규모 유상증자가 필요한 무리한 계획이었다"라며 "HMM 지분 57.9%를 인수하지만 결국 HMM의 잔여 영구채가 전환되며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로부터 HMM의 독립 경영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인수 가능성이 있는 대기업으로는 현대글로비스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화물 수요량이 높은 포스코그룹 등이 거론된다. 또 최근 해운사 설립을 공식화한 한화그룹도 HMM의 새로운 인수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HMM의 기업가치 하락과 해운 환경이 불확실해 인수 후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 등 매각 측은 이번 매각 무산에 따른 후속 절차와 관련해 입장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도 이날 중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산은의 공식적인 플랜B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거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기업결합 심사를 받았던 때를 고려하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해놨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산은은 국회에 플랜B는 없다고 강조했었지만 EU의 불허 결정이 나자 곧바로 새 주인 찾기에 나섰고 한화그룹과 M&A 협상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지금의 한화오션이 됐다.

한편 HMM 해원연합노조(선원 노조)와 전국사무금융노조 HMM지부(육상 노조) 등 내부에서는 매각 무산을 반기는 분위기다. 양측은 이날 공동으로 입장문을 내고 "해운산업계의 절실한 목소리가 반영된 오늘의 결정은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명운을 바꾼 것"이라고 반색을 표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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