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 임종윤·종훈 형제 사장직 해임
신동국 회장 형제편에.. 국민연금 등 관건

한미약품그룹 본사 전경. 한미약품그룹 제공
한미약품그룹 본사 전경. 한미약품그룹 제공

오는 28일 열리는 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표 행방이 승자를 가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놓고 모녀와 장·차남간 신경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25일 한미약품그룹이 장남 임종윤·차남 임종훈 형제를 각각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한미약품 사장직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한미그룹은 "두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중요 결의 사항에 대해 분쟁을 초래하고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했다"며 "회사 명예나 신용을 손상하는 행위를 지속해 두 사장을 해임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임종윤 사장은 오랜 기간 개인 사업과 타 회사인 '디엑스앤브이엑스'를 운영하면서 그룹 업무에 소홀히 한 점도 해임에 영향을 줬다고 한미약품 측은 말했다.

단 두 형제가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부분은 유지된다. 현재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에서, 임종훈 사장은 한미정밀화학에서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대신 장남 임종윤 사장의 경우 한미약품 등기이사 임기가 이번에 만료되는데 오는 27일 진행될 주주총회에 재선임 안건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한미약품 측에서 거세게 장·차남을 압박하는 가운데 28일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치열한 경영권 분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한미사이언스 지분 12.54%를 보유하고 있어 캐스팅 보트로 꼽히던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이 장·차남의 손을 들어준 것이 큰 요인이다.

신동국 회장은 임종윤·종훈 형제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2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장남 연대 지분은 기존 25.86%에서 38.4%로 확대되면서 모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 측의 32.95%를 앞서게 됐다. 모녀 측은 신 회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양측의 경영권 분쟁의 키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으로 떠오른 상태다. 지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표 행방이 이사회 구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민연금의 표심이 가장 중요한데, 국민연금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7.91%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모녀 편을 든다면 지분율이 40.86%로 올라 장·차남(38.4%)을 앞서게 된다.

모녀와 장·차남은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연일 성명문을 내는 모습이다. 앞서 장·차남은 지닌 21일 국민연금에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모녀 측도 더욱 적극적인 공세에 돌입했다. 지난 24일 임주현 사장이 "OCI와 통합 이후 (OCI와 자신 등 회사 측) 대주주 지분을 3년간 처분하지 않게 하겠다"고 보호예수를 제안하며 임종윤·종훈 사장을 향해 "지분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매각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공격한 것이다.

이에 이날 임종윤·종훈 사장 측은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한 번도 팔 생각을 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어떤 주식 매도 계획도 없다"며 반박했다.

또 임주현 사장의 보호예수 제안에 대해서는 "경영권을 통째로 넘기고 본인 것도 아닌 주식(OCI 측 지분)을 보호예수 하겠다는 것"이라며 "맥락 없는 제안을 갑자기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저의가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날 오후 한미그룹과 OCI그룹은 서울 송파구 한미약푼 본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예수 방안에 대해 동의 의사를 밝혔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제안한 통합 후 한미사이언스 대주주 지분 3년간 보호예수 방안에 동의한 것이다.

지난 1월 한미그룹과 OCI그룹이 통합 결정을 발표한 이후 두 회사 경영진이 한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은 "(지분을) 팔려고 (한미에) 투자하려는 것 아니다"라며 OCI홀딩스가 가질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3년간 처분금지하는 방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호 예수 방안으로는 "자진해서 예탁원에 맡기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어 "OCI는 예전에 없던 사업을 일으켜 세계적 사업으로 키워가는 DNA가 있다"며 "이번 투자는 몇 년간 상당 부분 리턴(투자회수)으로 안 돌아올 것을 각오하더라도 더 큰 미래를 위해 좋은 사업으로 만들었을 경우 궁극적으로 주주 가치가 증대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표 행방에 영향을 미칠 주요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판단은 엇갈리고 있어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서스틴베스트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추천 후보 6인(임주현·이우현 사내이사, 최인영 기타비상무이사, 박경진·서정모·김하일 사외이사)에 찬성을 권고하고 임종윤 사장 측 추천 후보 5인(임종윤·종훈 사내이사, 권규찬·배보경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사외이사)에는 반대 의견을 냈다.

반면 ISS는 한미사이언스 측 후보 중 이우현·박경진·김하일 이사 선임에만 찬성 의견을, 임종윤 사장 측 후보 중에서는 임종윤·사봉관 이사 선임에만 찬성을 권고했다. 한국ESG기준원은 임종윤 사장 측 후보 중 사봉관 사외이사를 뺀 4인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내고 한미사이언스 측 이사 후보에는 의결권 불행사를 권고했다.

한편 한미그룹 임직원 3000명 및 9명의 책임리더들은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에 찬성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미 사우회가 최근 개최한 사우회 운영 회의에서 'OCI그룹과의 통합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결정하고 오는 28일 주총에서 통합 찬성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임종윤·종훈 형제는 "사우회 투표가 9명의 사우회 임원 회의에서 진행됐으며 사우회 투표 이전부터 한미사이언스 경영진이 여러 경로를 통해 통합에 동의하라는 지침을 전달해 왔다"며 이번 결의안은 경영진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